토요일 오후 서울 마포구 어느 빌딩에 청년 2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졸업, 취업, 친구 관계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내용이 조금 달랐다.

누군가 같은 이야기를 10분 넘게 계속하자, 다른 청년이 “이 얘기 그만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됐다. 다른 청년은 대학에 합격한 이야기를 반복했고, 또 다른 청년은 ‘내 생일이 곧 다가오는데 나이를 먹어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5분마다 되풀이했다.

이들은 느린학습자시민회에서 주최하는 3월 청년 모임 참가자. 모두 ‘경계성 지능인’이다. 대부분 지능 지수(IQ)가 71에서 84 사이다.

IQ 검사로만 진단하지 않고, 지능검사인 웩슬러 검사와 사회 성숙도, 부모의 양육 태도 등 종합 심리검사를 통해 판단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3년 기준으로 국내 경계선 지능인을 약 699만 명으로 추정했다. 전체 인구의 약 13.6%다.

경계선 지능인은 또래보다 인지능력이 늦아 범죄 대상이 되기도 한다. 친구 부탁에 대출을 받았다고 법정에 서거나, 중고 거래를 하다가 성범죄에 노출되기도 한다. 경계선지능인지원센터 느린소리 최수진 대표는 “경계성지능인 청년은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 보호조치를 받지 못한다”며 “이들은 학창 시절부터 어려움을 겪는다”라고 말했다.

최 대표의 아이도 경계성 지능인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이는 토할 정도로 학교에 가기를 싫어했다. 공개 수업에 가보니 이유가 보였다. 아이는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고 모둠활동에서도 배제됐다. “지옥 같겠다”라고 생각하며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이해했다.

경계선 지능인은 장애 판정을 받지 못해 특수학급에 갈 수 없다. 일반 학급에서 생활하면 오해를 받는다.

이루다학교 기주현 대표는 “나한테 말을 시켜서 틀릴까 봐 대꾸를 안 하는 건데 버릇없는 아이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꽤 많다”고 말했다. 학생은 불안감에 대답하지 못한건데 주변에서는 “쟤는 왜 불렀는데 대답도 안 해?”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경계선 지능인이 자기 어려움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학교생활을 어려워한다.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껴 학교를 그만두기도 한다.

이루다학교를 졸업한 청년(21)은 일반 학교를 다니면서 또래 친구와 소통하기 힘들었다. “친구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저는 다가가지 못하고….혼자 그냥 외롭게 있었어요.” 담임 교사가 도와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중학교 3학년 때, 대안학교로 옮겼다.

▲ 서울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지원센터
▲ 서울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지원센터

경계성지능인은 조기 발견이 중요하지만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학교에서의 부적응은 ‘능력 문제가 아닌 태도의 문제’로 치부되기 쉽기 때문이다.

서울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지원센터의 이교봉 센터장은 “부모들이 좀 늦는가보다 놔두고 있다가 군대 갈 때 검사에서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부모가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를 2022년 개관했다. 민간단체도 생겼다. 관심이 높아졌지만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지난해 4월 경계선 지능인 지원 근거를 담은 법안이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취지에 적극 공감하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며 “충분한 논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느린학습자시민회 홍세영 활동가는 국어 수업은 이해하지만 수학은 아예 안 되는 사람, 어려운 수학 문제는 풀지만 자신의 신발끈은 못 묶는 사람 등 스펙트럼이 넓다며 “개별화된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느린소리 최수진 대표는 “경계선 지능인은 보완하고 훈련하고 지속해서 지원된다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능력이 충분하다”라며 “기능이 조금 느린 친구들이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더 조금 힘써줬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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