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저 고양이 아니에요?” 그의 뒤편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와 빠르게 담을 넘었다. “아, 걔는 아니에요. 쥐색 걔. 그 동선은 그 쥐색 껍니다. 우리가 찾는 고양이랑 색깔도 다르고 덩치도 훨씬 큽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대화를 하는 순간에도 그의 ‘고양이 레이더’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고양이 탐정. 사람들은 김봉규(45) 씨를 그렇게 부른다. 사라진 고양이를 찾아주는 탐정이라는 뜻이다. 탐정생활은 올해로 17년째다. 1월 23일 오후 5시 30분, 상계동 현대아파트에서 고양이를 찾고 있던 그를 만났다.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얼굴에 요즘 유행하는 투블럭 헤어스타일을 했다. 헤진 청바지를 입고 낡은 운동화를 신었다. 군데군데 상처 딱지가 앉은 오른손에는 큰 비닐봉지를 들었다. 등에는 낡은 검정색 배낭을 멨다. 비닐봉지와 배낭에는 고양이 사료, 참치 캔, 비상 상황에 고양이 덫으로 쓰기 위한 포대자루가 가득 들어있었다. 말투는 빠르고 발음은 부정확했다. 흥분할 때면 말을 더듬기도 했다.

유년시절,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또래 친구들보다 좋았다. 소심한 성격 탓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하루 종일 마당에 쪼그려 앉아 고양이를 지켜봤다. “고양이를 보면 꼭 저를 보는 것 같아요. 사회 속에 있으면서도 늘 혼자잖아요. 그래서 점점 빠져든 것 같아요.”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성인이 돼서도 이어졌다. 하루 종일 길고양이들을 따라다니곤 했다. 꼬리의 모양, 머리와 눈동자의 움직임, 보폭, 자세 등을 관찰했다. 틈틈이 고양이 관련 서적이나 자료도 사 읽었다.

그가 처음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준 것은 1995년이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고양이를 잃어버렸다는 전단을 봤다. “‘내가 고양이라면...’하고 생각해보니까 어디 숨었을지 짐작이 가더라구요.” 이후로도 종종 주변에서 고양이 실종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나서서 찾아줬다. 주변 동네로 입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전문적인 ‘고양이 탐정’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길 잃은 고양이를 돕는 것이 좋았다.

1999년 개설된 다음카페 ‘냥이네’를 통해 그는 전국구 탐정이 됐다. 부산과 해남에서도 의뢰가 들어왔다. 2005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계기로 ‘고양이 탐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처음엔 60% 정도였던 고양이 찾는 확률이 지금은 80%가 넘는다. 잃어버린 당일이면 90%에 달한다. 고양이의 품종, 성별, 키우던 환경, 잃어버린 시간대, 날씨 등을 알면 ‘고양이보다 더 고양이답게’ 생각할 수 있게 됐다. 20년 동안 직접 집으로 돌려보낸 고양이만 약 2000 마리에 이른다. 전화나 문자를 통해 도운 경우까지 하면 5000마리가 넘는다.

고양이 탐정이 본업은 아니다. 김 씨는 프리랜서 무역 중개업자다. 처음에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고양이를 찾아줬다. 비용은 안 받았다. 그러나 점차 의뢰가 늘어나면서 본업에 집중할 수 없게 됐다. 수입이 줄어들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서울을 기준으로 기본 출장비 18만원과 고양이를 잡을 경우 사례금 20만원을 받는다. 그렇게 고양이 탐정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한 달에 약 200에서 300만원. 이마저도 집에서 기르는 40마리의 고양이를 위해 쓰고 나면 적자다. 그가 고양이에게 쓰는 돈은 한 달에 최소 250만원이다. 본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도 있지만 여유롭지는 않다. “항상 고민입니다. 본업에 집중하면 훨씬 여유롭기는 할 텐데. 근데 고양이를 찾아주는 일, 이게 꼭 마약 같아서 그만두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었다. 한 여름, 고양이 한 마리 찾기 위해 산에서 3일간 먹고 잔적도 있다. 굴다리나 아파트 지하 좁은 공간에 숨은 고양이를 찾을 때는 하얀 석면 가루와 새카만 먼지를 먹는 일도 감수했다. 운동화는 한 달을 못 버텼다. 고양이의 예상경로를 지킬 때면 용변도 마음대로 보지 못했다. 끼니를 거르는 일도 허다했다. 그래도 좋았다. 한 쪽 다리가 불편한 고양이를 찾을 때는 꼬박 나흘이 걸렸다. 길에서 죽었을지도 모를 고양이를 살렸다는 뿌듯함에 벅찼다. 자가용도 없이 고양이를 찾겠다며 전국으로 출장을 다녔다.

스위스에서도 의뢰가 왔다. 인터넷의 힘이었다. 직접 갈 수는 없어 의뢰인이 살고 있는 지역을 구글 위성지도로 분석했다. 주인에게 얻어낸 정보를 토대로 고양이가 숨어있을 만한 장소를 추측했다. 고양이는 김 씨가 말한 장소와 멀지 않은 곳에 숨어있었다. 짜릿한 순간이었다.

끝내 찾지 못한 고양이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녀석들이 꿈에 나타났다. 죄책감은 스트레스가 되어 그를 괴롭혔다. 우울증도 생겼다. 고양이를 잃어버린 주인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는 “고양이를 잃어버린 경우는 100% 주인의 부주의가 원인입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저는 의뢰를 받으면 가장 먼저 1시간에서 1시간 30분 동안 주인한테 열변을 토합니다.” 또 다시 잃어버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몇몇 의뢰인과는 갈등을 빚기도 했다. “제가 잔소리를 할 때면 말도 좀 빠르고 목소리도 크고 해서 충분히 화낼 만도 합니다.” 돌려 말하는데 서툰 그의 성격도 한몫했다. 스스로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말할 정도다. 이따금 거친 말이 오가기도 했다. 잔소리하는 그가 무섭다며 한 의뢰인은 경찰을 부르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용자 수가 40만 명이 넘는 네이버 카페 ‘고양이라서 다행이야’에는 불만의 글이 많다. 경력도 경력이지만 괴팍한 성격으로도 유명한 그다. “찾아보셨다니 그런 글들 있는 거 다 아시죠? 어떤 사람들은 고양이만 찾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친절하기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다시 안 잃어버리는게 중요한 거거든요.” 그의 말이 더 빨라졌다.

그래도 꾸준히 의뢰가 들어온다. 소문난 실력 때문이다.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기적 같았다.” 성진선 씨의 말이다. 2012년 12월 24일 밤, 그녀의 고양이 ‘마중이’가 사라졌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여주고 싶어 밖으로 데리고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14시간을 찾아 헤맸지만 ‘마중이’는 보이지 않았다. 네이버 카페 ‘고양이라서 다행이야’에서 본 고양이 탐정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렵게 김봉규 씨와 연락이 닿았다. 다음날인 크리스마스 오후, 김봉규 씨는 수색 20분 만에 ‘마중이’를 그녀의 품에 안겨줬다. “‘고양이보다 돈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걸 보니 상업적인 것 같다’라든가, ‘욕지거리를 하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고객을 대하는 무뢰한이다’라는 경험담이 눈에 밟히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아이를 생각하니 탐정님께 연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만나서 헤어지는 순간까지 김 씨는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성 씨는 “비록 험한 소리를 하실지언정, 진심에서 우러난 걱정이기에 마음 깊이 새겨두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홍보활동을 하지 않는다. 본업과 탐정 일을 같이 하느라 홍보를 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 잘 할 자신도 없다. 최근에는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고양이 탐정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의뢰가 많이 줄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탐정은 그를 포함해 대략 8명이다. 비용은 비슷하다. “고양이 탐정이 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의 경험이 있어야 됩니다. 대한민국에 그 자격을 갖춘 사람은 아마 저뿐일겁니다.” 다른 탐정들이 못미더운 눈치였다. 수입의 감소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고양이를 찾는데도 골든타임이 있기 때문이란다. “뒤늦게 연락 왔을 때는 ‘바로 나한테 연락했더라면...’하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정말.” 고양이 탐정이라는 말은 자신만의 별명일 뿐, 직업명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20년 째 해오는 일이지만 주변 사람에게는 잘 이야기 하지 않는다. 김 씨는 “고양이 탐정이라고 하면 대부분 시선이 곱지 않다”고 말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을 고양이 탐정이라 소개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 먹고 왜 그런 일을 하느냐’는 어머니의 말을 들은 후로는 그러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들도 이해시키지 못하는데 남한테 뭘 바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 고양이를 찾는 이유는 하나다. 고양이가 좋기 때문이다. 그는 고양이 찾는 기쁨을 ‘마약같다’고 표현한다. “제가 생각한 위치에 고양이가 있을 때, 그리고 잃어버린 고양이를 다시 만난 주인들의 표정을 볼 때면 정말 짜릿합니다.” 재빠르고 유연한 고양이 뒤를 쫓아다니다 보니 무릎과 허리는 날씨에 민감해졌다.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의뢰전화에 숙면은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이 모든 불편함보다 그는 고양이가 좋다.

1월 23일, 그는 집나간 고양이를 또 한 마리 찾아냈다. 집 나간 지 1주일이 넘은 녀석이었지만 위치를 파악하는 데는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도로 맞은편 아파트 단지에서 녀석을 발견했다. 성인 어깨 높이의 담을 두 번 넘어 도착한 곳이었다. 섣불리 잡으려 들지는 않았다. 놀란 고양이를 자극할 수는 없었다. 영영 은신처를 떠날 수도 있다. 기다림이 시작됐다. 두 시간 가량이 지났다. 주변이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고양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주머니에서 작은 랜턴을 꺼냈다. “하나, 둘, 셋!” 순간적으로 아파트 외벽과 흙바닥 사이의 공간을 비췄다. “여전히 잘 있네요.” 두 시간을 더 지켜봤다. 고양이의 경계심은 여전했다. 그날은 고양이를 찾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좌)김봉규 씨가 담 너머로 고양이를 관찰하고 있다./ (우)고양이의 안전을 위해 가급적 맨손으로 포획한다는 김봉규 씨의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 고양이 이빨자국이 선명하다.
 

다음날인 1월 24일 오전. 그에게서 두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급한 일인가 싶어 바로 전화를 걸었다. 부정확한 발음은 그대로였지만 속도는 한 층 더 빨랐다. “어제 그...그...고양이 있잖아요, 그 노란색 걔. 걔 오늘 제가 잡았습니다, 제가. 매...맨손으로요. 하하.” 웃음이 나왔다. 자세를 낮추고 살금살금 고양이에게 다가가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향해 뻗은 오른손에는 고양이 송곳니 자국이 선명했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할 말을 마친 그가 이내 “예, 그럼”하고 전화를 끊었기 때문이다. 또 다시 웃음이 나왔다. 살갑게 굴다가 이내 휙 돌아서버리는 그는 마치 고양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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