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5일 오전 10시 ‘제24차 세월호특별조사전원위원회’가 열리는 서울 중구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9층 회의실을 찾았다. 이 회의에서 세월호 사건 유가족이나 피해자의 조사요청 사안에 대해 ‘조사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여당과 야당 측 위원이 참석한 회의장은 긴장감이 팽팽했다. 전날인 24일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해수부직원이 자신들에게 세월호유가족을 고발하라고 종용했다는 주장에 대한 보도가 나왔다. 회의 시작 전 이석태위원장은 "해수부 공무원이 적법하게 선출된 위원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가족을 고발하라고 사주한 사실이 보도됐다"며 "해수부 공무원이 특조위를 부정하는 행동을 하는 유감스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전날 언론보도가 쏟아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날 사건 당사자인 특조위를 직접 취재하러 온 매체는 인터넷방송인 팩트TV와 통신사 뉴스1 두 곳 뿐이었다.

 

회의가 시작된 지 15분이 지나 ‘백발’의 남성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와 방청석 앞쪽에 카메라 한 대와 삼각대를 설치했다. 세월호희생자 단원고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다. 지성아빠는 촬영 장비를 싣고 직접 안산에서 서울까지 운전해서 오는데 차가 막혀 늦었다고 기자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빨간 녹화표시등이 들어온 8mm카메라는 특조위 위원들의 발언과 표정을 놓치지 않고 담는다. 카메라에는 ‘416TV’ 스티커가 선명하게 붙어있다. 각종 촬영장비가 담긴 가방무게는 20Kg이 넘는다. 매일같이 안산, 광화문농성장, 진도 팽목항 등 전국을 다니다 보니 가방끈은 다 해어져 청테이프로 감쌌다. 이날 416TV가 촬영한 영상은 25분 52초 분량으로 편집되어 <16.01.08 특조위와 신년인사 및 24차 전원회의>라는 제목으로 유튜브페이지에 업로드됐다. 이날 특조위를 참관한 세월호 희생자 동혁이 엄마는 "지성 아빠같은 사람이 없으면 기록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방송이 재난 이후 꾸준히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한데, 사건이 터질 때 그 뿐이지 이후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방송 416TV는 세월호사건 발생일인 2014년 4월 16일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방송은 세월호와 관련된 진상규명소식과 유가족 활동에 관한 뉴스를 주로 다룬다. 대형 참사나 범죄 관련 보도 이후 언론보도로 인한 2차 피해를 호소한 사례는 있었지만, 피해당사자들이 직접 방송을 만든 경우는 처음이다. 이 방송의 송출통로는 유튜브(Yutube) 페이지다. “416TV.net”으로 접속하면 상단에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모양에 ‘진실’ 두 글자가 들어있는 416TV 마크가 보인다. 페이지 구독자 수는 7,046명(2016.3.13.기준), 누적 조회수는 536,026회다. 영상은 1주일에 1건에서 많게는 3건도 업로드된다. 20개월간 업로드 된 총 318개 영상의 조회수는 각각 다르지만 적게는 100건에서 많게는 16,902건을 기록했다.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은 <[특집]대한민국에서 세월호 유가족으로 산다는 것>이다.(2015.05.05.) 페이스북 페이지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공유된 영상 링크를 타고 접속하는 경우도 있다.

‘416TV’는 2014년 8월 8일 국회 본관 앞 생중계 방송을 하며 시작했다. 이날은 유가족 대표단 15명이 각각 광화문광장 5명, 국회 본관 앞 10명으로 나눠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27일 째 되던 날이다. 단식 중인 부모들에게 '이벤트성 단식농성'아니냐는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의 발언이 나온 날이기도 하다. 지성아빠는 카메라가 있을 때만 고개를 숙이던 일부 정치인들을 보고 난 뒤 방송을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원고희생자 박성호 군의 누나 박보나 씨가 홈페이지 제작을 도왔고 세월호 가족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가족대책위 시민기록위원회 김종천 사무국장의 지원을 받았다. 초기에는 고발뉴스, 팩트TV, 미디어몽구 등 인터넷방송 전문가의 도움도 받았다. 송출기가 따로 없어 노트북과 카메라만 가지고 리포트현장에서 생중계했다. 이렇게 방송하다 보니 누가 전선이라도 밟으면 음성이 나오지 않거나 영상이 끊어지는 ‘방송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정해진 앵커가 없이 유가족들이 돌아가며 리포트를 맡았다.

 

첫 방송은 2년 전 ‘흑발’이었던 지성아빠의 앵커멘트로 시작한다. “저희 416TV는 유가족들이 만드는 방송입니다.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사실 그대로가 전해지는 방송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끝까지 응원해주세요.” 잡음도 많고 화질도 엉망이지만 지성아빠는 그 모습이 열악한 416TV 제작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소중하다고말했다. 416TV의 영상은 롱테이크 기법(1~2분 이상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촬영)으로 찍힌 장면이 많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할 것 같은 친구들의 모습이 나올 때는 편집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를 영상에 담았다. 유난히 도로 바닥을 비추는 장면이 많은데, 그 속에 담긴 부모들의 눈물 자국이 때문이다. 같은 처지의 유가족이 우는 장면은 찍기 어려웠다.

 

안산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 양쪽으로 유가족 쉼터, 세월호 자료실 컨테이너가 줄지어있다. 오른쪽 제일 끝 컨테이너 한 동이 416TV의 작업실 겸 편집실이다. 컨테이너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벽면 가득 환하게 웃고 있는 지성이 반 친구들의 단체사진이다. 작년에는 제천 간디학교 학생이 와서 편집 일을 함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내와 둘이서 방송 일을 전담하고 있다.

“언제든지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배터리를 충전하고 카메라를 세팅해야합니다.” 촬영장비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82cook’에서 후원받아 한둘씩 갖췄다. 보통 컴퓨터 본체보다 3배 정도 큰 대용량 저장용 컴퓨터를 편집용으로 사용한다. 모니터 앞에는 대용량 외장하드들이 쌓여있다. 현재 운영비용은 지성아빠 사비로 충당한다. 하던 일을 관두고 방송 일에 매진하고 있다. 작업실 한편에는 접이식 침대가 접혀있다. 지성아빠는 이곳에서 먹고 자면서 자막편집과 배경음악 삽입도 배웠다. 그가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물은 20테라바이트, 8000시간 분량 가까이 된다. 얼마 전 바이러스 때문에 1년가량의 기록영상이 손실되어 복구 작업도 병행하는 중이다. 편집실에서 기자에게 작업한 영상을 보여주던 중 지성아빠 핸드폰 알람이 오후 4시 16분에 맞춰 울린다. 지성아빠는 사진 속 딸에게 V자 손을 흔들며 쓴웃음을 지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알음알음 ‘416TV’의 존재가 알려졌다. 서울신문 조용철 기자는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하지 않으니 본인들이 직접 알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된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는 “416TV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취재현장에서 본 적이 있고 기존매체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실제로 416TV는 아마추어가 만드는 방송이지만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구독하는 독자가 늘고 있다.

지성아빠의 가장 큰 바람은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이 지켜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유가족들은 (배상금 같은) 물질을 원하는 것도 아니었고, 명예 같은 명분을 원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 구할 수 있었던 시간에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는지 답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떤 방송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카메라를 든 것입니다.” 그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방송을 이어간 것은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방송이 필요하다는 무거운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방송'에 맞서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겠다는 초심을 지키는 것이 지금의 바람이다.

이제 가슴에 묻고 가라는 이들이 많지만, 아직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기에 태평양에 모래를 집어던지는 심정으로 방송을 제작한다는 지성아빠. 자려고 누우면 천장 위로 사랑하는 딸의 얼굴이 떠올라 수도 없이 많은 베갯잇을 눈물로 적셨다. “힘없는 모래와 같은 가족들이지만, 손잡아주는 국민이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지금 던지는 모래들이 쌓여 거대한 물길을 돌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두 해가 다되어 가는 지금, 여전히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아있는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유가족들은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가 담긴 방송은 416TV.net으로 접속하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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