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오락에 대한 욕구만큼 세상을 잘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미국 몰입 저널리즘(immersive journalism)의 개척자, 노니 데라페냐(53)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2015년 4월, 국제 온라인 저널리즘 심포지엄(ISOJ)에 참석한 그녀는 한국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VR 저널리즘의 확장 가능성을 강조했다. VR저널리즘은 디지털 게임, 3D 영화 등에 적용되던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기술을 뉴스에 사용하여 시청자들이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노니 데라페냐의 모습 (사진=구글재사용이미지)

데라페냐는 대중에게 생소하던 VR 저널리즘을 알리기 시작한 미국의 언론인 겸 연구자이다. 그녀는 2009년부터 도시 빈곤, 인종차별, 시리아 내전 등 사회 문제를 VR 영상으로 제작하여 글, 사진보다 훨씬 생생한 뉴스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ISOJ 회의에서 데라페냐의 VR 뉴스를 접한 워싱턴포스트(WP) 디지털 총괄국장 에밀리오 가르시아 루이즈(Emilio Garcia-Ruiz)는 "VR은 놓치지 말아야 할 기술"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VR의 가능성을 실감하다

데라페냐는 하버드 대학에서 시각 예술과 사회학을 전공한 뒤 뉴스위크 특파원, TV 프로그램 작가, 다큐멘터리 감독 등으로 경력을 쌓았다. 지속적으로 기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2007년에 VR 다큐멘터리 제작사인 ‘엠블리매틱 그룹(Emblematic Group)’을 창설했다. 본격적으로 VR 저널리즘 보편화와 다양화의 가능성을 실감하며 연구를 시작한 건 2008년. 데라페냐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USC) 언론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처음에 그녀의 결과물은 기존의 실물 사진, 2D 영상 보도에 익숙한 언론계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VR 저널리즘은 특성 상, 실제 사건을 CG로 재현해서 시청자들의 감정적 이입을 이끌어낸다. 그런데 ‘진짜가 아닌 현실'을 보여줘서 사람들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그녀는 BBC Future에 출연해 “전 존재의 이원성(duality)이라는 특성을 강조하고 싶어요. 사람들은 여기(here)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동시에 그곳(there)에 있는 것처럼 느껴요. 사람들이 VR을 현실과 혼동한다는 주장은 과도한 우려입니다.”라고 말했다.

‘LA에서의 굶주림(Hunger in Los Angeles)’, Sundance Film Festival  

데라페냐가 VR 저널리즘의 대모(代母)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계기는 2012년에 ‘기아’라는 제목으로 Sundance Film Festival에 출품했던 VR 다큐멘터리 ‘로스앤젤레스에서의 굶주림’이다. 2010년 무렵, 그녀는 미국 빈민층의 실태를 알리는 보도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로스앤젤레스의 푸드뱅크(무료급식소)로 현장 취재를 갔다. 거기서 본 참혹한 상황을 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그녀는 활자의 한계 대신, VR 카메라로 촬영하여 360도 가상현실 영상을 만들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의 굶주림’ 중 한 장면 (사진=youtube)

VR 기기를 통해 이 영상을 보면 무료 급식 배급소에 길게 줄 선 사람들이 보인다. 갑자기 한 남자가 저혈당으로 쓰러지고 경련을 일으킨다. 기사로 보면 간단히 지나갈 수 있는 짧은 길이의 내용이지만, VR 기기를 통해 직접 체험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crazy)이었다. 쓰러진 남자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사람들은 울며 안타까워했고, 실제 그 상황에 있는 것처럼 도움을 청했다.

“그 경험은 훨씬 더 강한 감정에 의한(visceral)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전신(whole-body) 경험이며, 기존 매체에 의한 경험에 비해 매우 독특하다.” - 데라페냐, 2014년 BBC Future 인터뷰

‘프로젝트 시리아(Project Syria)’, The World Economic Forum

이후, 그녀의 VR 영상은 2014년 다시 한 번 화제가 된다. 2012년 영상 ‘기아’의 강렬한 공감 효과를 체험한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시리아 내전으로 고통 받고 있는 민간인에 대해 경각심을 일으키고자 영상 제작을 의뢰했다. 데라페냐는 시리아 알레포 지역의 사진, 지도 등을 기반으로 로켓포가 떨어진 현장을 3D영상으로 재현했다.

VR 기기로 보면 안개가 짙은 시리아의 거리에 노랫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큰 폭발음이 울리면, 먼지와 폭발물의 잔재가 사방을 뒤덮고 한 남자가 딸을 품에 안고 다급히 달려간다. ‘프로젝트 시리아’는 2014년 다보스포럼(=WEF)과 런던의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에서 전시되어 강한 공감을 이끌었다.

VR 저널리즘은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이다

VR 영상으로 구현된 뉴스는 기존 매체를 통해 생산된 뉴스와 다른 특징을 가진다. 그리고 그 파급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데라페냐는 가상현실이 언론계의 ‘주류 저널리즘’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함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복잡한 제작, 편집 기술을 필요로 하는 VR 저널리즘은 인력, 속도, 비용에 있어서 한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뉴스의 보도에 있어서 ‘신속성’은 중요한 특징인데, VR 뉴스 제작은 경우에 따라 이틀 ~ 6주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또한, VR 영상을 보는 데 필요한 전문 기기는 약 599달러(한화 72만 원)에 달하기 때문에 상용화, 보편화시키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좋은 소식은, VR 기기의 보급화를 목표로 연구가 지속되면서 크기는 작아지고 가격도 현실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한 후 종이, 플라스틱 렌즈로 된 상자에 넣어서 보는 3차원 기기도 상당히 현실감을 느낄 수 있어서 VR 저널리즘 보편화의 가능성을 보였다. 

VR 저널리즘이 주류 저널리즘으로 대체되기에는 긴 제작 기간, 높은 제작 비용, 기기의 보편화 등 많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접근하기 힘든 재난 현장, 집회 등의 상황을 취재할 때, 시청자는 VR을 통해 현장을 가감 없이 체험할 수 있다. 이렇듯 ‘보완재’로서 VR 저널리즘의 발전 잠재력은 분명해 보인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언론 매체의 빠른 변화를 이끄는 현재. 단순한 관찰자로서 역할이 아닌 매체와 상호작용하는 시청자의 역할을 기대하며 데라페냐는 강조한다.

“당신이 그곳에 있다.(You are there). 길거리에서 폭탄이 터지는 시리아 내전의 한복판으로 여러분을 데려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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