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집밥 먹고 빨래까지?

이화여대 후문과 연세대 동문 사이에 위치한 위드미 편의점. 저녁 6시가 되자 “화학조미료(M·S·G)를 사용하지 않은 건강한 집밥”이라고 적힌 팻말이 계산대 앞에 세워졌다. 이 편의점은 저녁시간에 백반을 판다. 일반 편의점에서 파는 인스턴트 도시락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보통 편의점 도시락은 전자레인지에 돌려 해동해 먹는 반면, 이 편의점의 백반은 주방에서 요리사가 직접 만든다. 또 편의점 도시락은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돼 있지만, 이 백반은 가정용 그릇과 뚝배기에 담겨 나온다.

기본백반은 밥, 국, 세 가지 반찬으로 구성된다. 가격은 4500원이다. 1000원을 더 내면 특식이 추가되고, 김치를 먹으려면 500원을 더 내야 한다. 인스턴트 도시락과 인근 식당의 가격대를 생각해보면 저렴한 편이다. 편의점 GS25의 ‘김혜자 명가바싹 불고기 도시락’과 세븐일레븐의 ‘혜리 11찬 도시락’은 인스턴트 도시락임에도 각각 4000원과 4500원이다. 또 이화여대 후문 일대의 식당들은 1인분 식사비가 대략 6000~8000원이다.

백반의 메뉴는 매일 바뀐다. 지난 11월 28일의 메뉴는 차조밥, 북어국, 짜장볶음, 해파리냉채, 단무지무침이었다. 특식으로는 코다리강정이 나왔다. 편의점 직원이 음식과 함께 숟가락, 젓가락, 컵과 물통을 앉은 자리까지 가져다주는 모습은 여느 식당과 똑같았다.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다. 대형테이블 4개가 있었고, 최소 25명이 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위드미 편의점의 ‘집밥’ 판매 팻말(왼쪽)과 해당 음식(오른쪽)
▲위드미 편의점 내부

 

 

 

 

 

 


이 매장에서 백반을 판매하는 이유는 대학교와 인접해있어 주위에 원룸촌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드미 이화연대점의 점주 유원종 씨는 “학생들에게 인스턴트 도시락이 아니라 집에서 먹는 것 같은 식사를 팔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백반을 개시한 지 열흘 정도 됐고, 홍보를 아직 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을 타서 하루에 40~50개 정도가 팔린다. 다음주부터 홍보를 하면 매출이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이대부고 2학년인 김하늘 군은 친구들 세 명과 백반을 먹으러 왔다. 김 군은 “밥을 굳이 집에 가서 안 먹어도 되고 여기서 먹어도 될 것 같다”며 “앞으로 주말에 학교에 와서 밥을 먹을 때 여기를 이용할 것 같다”고 했다.

이 편의점은 세탁업무도 시작할 예정이다. 이용자가 편의점에 세탁물을 맡기면 세탁 전문업체인 유니룩스가 수거해 세탁을 한 뒤 다시 가져다준다. 이용자들에게는 세탁물을 가져가라는 문자메시지가 전송된다. 이 매장은 인테리어도 일반 편의점과 많이 다르다. 일반 편의점에는 하얀 형광등이 켜져있는 반면, 위드미 편의점은 주황색 조명으로 인해 카페같은 분위기가 난다. 매장 가운데 있는 나무는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준다. 카페같은 인테리어 때문인지 음료수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손님들도 보였다.

유 씨는 해당 매장의 방향에 대해 ‘편의점의 복합화’를 말했다.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시설을 편의점이라는 한 공간 안에 모두 넣는 것이다. “보통은 수평적 공간을 이용하죠. 밥집에서 밥을 먹고, 그 옆에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세탁소에 가는 식으로요. 이런 동선을 하나의 공간에 넣을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편의점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

현재 한국은 ‘편의점 공화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가 지난 8월 내놓은 ‘2014~2015 편의점산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전국 프랜차이즈 편의점은 총 2만 8천여개였다. 2만 6천여개였던 2014년에 비해 11.4%가 늘었다. 불황 속에서도 편의점의 매출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연간 소매판매 동향'에 따르면 다른 업계에 비해 편의점만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백화점 매출액이 2014년에 비해 0.4% 줄고, 대형마트는 약 2.4% 성장한 데 비해 편의점 매출액은 무려 29.6%나 성장했다.

하지만 개별 편의점들은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편의점당 인구수는 2014년 1,973명에서 2015년 1,777명으로 줄었다. 편의점의 개수가 많아지면서 개별 편의점이 확보할 수 있는 이용자의 범위는 줄어든 것이다. 전국 편의점의 총매출액은 증가하고 있지만 개별 편의점들은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다.

편의점 업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편의점 체인업체들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GS25, CU와 함께 3대 프랜차이즈 편의점으로 꼽히는 세븐일레븐의 정승인 대표는 지난 4월 20일 비즈니스포스트 기사에서 “편의점은 이제 점포 수가 아니라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로 승부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세븐일레븐은 ‘카페형 편의점’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있다. 서울 회현동에 있는 남대문카페점은 1층의 편의점 공간과 2층의 카페형 공간으로 구성된다. 힐링·여유·감성을 컨셉으로 하는 카페형 공간에서는 간단한 식사나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도 구비되어 있다. 정 대표는 지난 11월 16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편의점은 과거 상품 위주의 점포 환경 구성에서 벗어나 휴식 공간과 편의 시설을 두루 갖추어야 미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편의점에서 ‘웰빙’을 컨셉으로 집밥을 팔거나, ‘힐링’을 내세워 카페형 편의점을 만드는 것은 일종의 프리미엄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인 ‘트렌드코리아 2017’에서 ‘B+프리미엄’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는 평범한 대중제품(B)에 가치, 즉 프리미엄을 추가해 B+등급으로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이전의 편의점이 단순히 상품 판매나 점포 수의 확장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웰빙과 힐링을 컨셉으로 하는 ‘프리미엄 편의점’이 새로운 전략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저서에서 “가성비를 높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가격을 낮추거나, 성능을 높이는 것이다. 전자가 저가격화 전략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가치화 혹은 프리미엄화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제 저가격화가 아니라 프리미엄화가 업계의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대 젊음의 거리에 있는 'CU 럭셔리 수노래연습장점' (사진=BGF리테일)

“편의점 음식과 음료, (노래방) 룸에서 드셔도 됩니다!”

편의점들의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보다 과감한 시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7월 편의점 CU는 ‘노래방 편의점’을 열었다. 홍대 젊음의 거리에 위치한 CU 럭셔리 수노래연습장점이다. 기존의 노래방 건물 1층에 편의점이 입점한 형태로, 편의점에서 구매한 음식과 음료를 노래방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편의점 내에 “룸에서 열창하시고 90점 이상이면 30분 서비스!”와 같은 문구가 곳곳에 보였다. 편의점에서 노래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화살표와 함께 “여기로 들어오시면 서비스 20분!”이라는 문구도 있었다.

일반 노래방이 카운터에서 한정된 종류의 과자와 음료를 판매하는 반면, 노래방 편의점에는 1천여 가지가 넘는 상품이 마련되어 있다. CU를 운영하는 유통업체인 BGF리테일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노래방 편의점에서는 유흥가 입지 편의점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상품 구성과 진열을 차별화했다. 실제로 노래방 이용자들이 많이 찾는 오징어다리나 육포 등이 매장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구비되어 있었다.

이용자는 대부분 청소년이나 이삼십대 청년들이지만 아이들을 동반한 4인 가족도 보였다. BGF리테일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CU 수노래연습장점은 하루 평균 고객수가 일반 매장의 2~3배에 가까운 1000여 명을 넘길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동일 보도자료에서 BGF리테일 탁현욱 개발기획팀장은 “편의점이 생활 속 가장 가까운 소비채널로 자리매김하면서 다양한 업종과 협업하는 만능 플랫폼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입지와 주요 객층에 맞춘 다양한 시도를 통해 고객 편의와 매출 향상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경제미디어인 뉴스핌에 따르면  BGF리테일과 수노래방 측은 CU 수노래연습장점의 성적이 좋다고 판단해 추가 출점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위치는 인근의 수노래연습장 홍대본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편의점의 표준화는 그만···‘차별화’해야 살아남는다

자취생이 많은 원룸촌에 위치해 집밥을 판매하는 위드미 이화연대점, 직장인 고객이 많은 세븐일레븐 남대문카페점, 20대가 즐겨찾는 홍대의 CU 럭셔리 수노래연습장점 모두 고객과 위치의 특성을 반영해 차별화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저서 ‘편의점 사회학’에서 “편의점의 현지화는 단순히 상품의 차원을 넘어서 운영 및 관리 방식 등에 걸쳐 전반적으로 일어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편의점의 “끊임없는 창조적 적응 과정”을 강조했다.

대형마트보다 접근성이 높고 다양한 먹거리를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편의점을 즐겨 찾는다. 하지만 편의점 시장은 이미 과포화 상태이다. 위드미 이화연대점에서 1분 거리에는 4개의 편의점이 더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다른 생존전략이 필요하다. 편의점 3만개 시대가 도래한 지금, 편의점의 진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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