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전국 석면 지도 (사진=KBS)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이하 데이터팀)의 석면 관련 연속보도는 ‘석면은 위험하다’로 끝나지 않았다.

2012년부터 석면안전관리법이 시행됐다. 이에 따르면 전국 교육청은 모든 학교 건물과 공공건물에 대해 석면 검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알려야 한다. KBS 데이터팀은 ‘그런데 왜 우리가 머무는 건물의 석면 수치를 잘 모를까’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취재를 시작했다. 전국 교육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석면정보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거나 미흡한 경우가 많았다. 있는 데이터들마저도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지역별로 수치 차이가 컸다.

KBS 데이터팀은 2015년 3월부터 현재까지 자료를 모으고 있다.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들을 일일이 정리해 전국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의 석면 지도를 만들었고, 올해 1월에 처음 보도 했다. 이어 ‘석면으로 인해 사망한 교사・강사’, ‘석면 위해성 등급 기준의 문제점’ 등 총 7건의 기사를 시리즈로 보도했다.

보도 이후 네이버에서는 ‘전국 석면 지도’에 대한 개별 링크 서비스를 제공했다. 기사는 각종 SNS에 공유되어 페이스북에서만 약 10만 명에게 도달했다. 타 매체들은 KBS 데이터팀에 후속취재를 위한 자료를 요청했다. 석면 관리법에 대한 학부모 운영위원회와 교사들의 문의 전화도 빗발쳤다.

KBS 데이터팀의 '전국 유·초중고 석면지도 작성 및 석면 정보 관리 문제점 연속 보도'는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2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왼쪽부터 KBS 데이터저널리즘팀 윤지희 씨(데이터 저널리스트), 정한진 씨(개발자, 팀장). 임유나 씨(인포그래픽 디자이너), 라디오 제작국 김양순 씨

KBS 데이터팀을 만나다

11월 4일 오후 KBS 신관 4층에서 데이터팀을 만났다. 김양순 기자(2002년 입사)는 “온다는 소식을 듣고 꽃단장했다”며 반갑게 맞아줬다. 김웅규 기자(1994년 입사)는 “이 시국에 뭐가 그리 즐거워 웃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 겉보기에도 서로 연차가 많이 차이나 보이는 선후배들끼리 서슴없이 농담을 주고받았다. 수줍어하며 웃는 사람,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던 사람, 농담을 던지는 사람 등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이 모였지만 분명 한 팀인 티가 났다. 그것도 아주 화목한 팀이었다.

비어있는 자리에 앉아 팀원들의 컴퓨터를 먼저 살펴봤다. 각자 맡은 일에 따라 컴퓨터의 종류와 화면에 띄워져있는 프로그램이 달랐다. 한 컴퓨터에는 데이터가 빼곡하게 채워진 엑셀 파일이 실행되고 있었다. 또 다른 컴퓨터는 모니터 자체가 다른 팀원들의 것과 달랐다. LG 모니터가 아닌 애플 아이맥에는 디자인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었다. 데이터팀은 전문리서처(데이터 저널리스트) 2명, 인포그래픽 디자이너 1명, 팀장을 맡고 있는 개발자 1명, 기자 1명으로 구성돼 있다.

KBS는 2014년에 데이터저널리즘팀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였다. 데이터 저널리즘에 대한 KBS 기자들의 고민이 한발 빨랐던 탓도 있지만, 일찌감치 KBS는 방송에 관련한 다양한 직종을 채용했기 때문에 사내에서 같이 일할 사람들을 쉽게 모을 수 있었다. 데이터 분석, 디자인, 프로그램 개발, 취재 및 기사 작성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일하니 시너지 효과가 났다. KBS 데이터팀은 2014년 7월 세월호 관련 보도를 시작으로 로드킬, 석면, 총선 후보 등 데이터 활용 보도를 쉴 새 없이 이어왔다.

KBS 데이터팀은 다르다

정한진 팀장(1997년 입사)은 ‘협업’을 KBS 데이터팀의 강점으로 꼽았다. 기존에는 방송 기자가 혼자 취재를 한 후 보도에 필요한 그래프나 인포그래픽을 스케치해 CG팀에 제작을 의뢰했다. 대부분의 방송 기자들은 데이터 시각화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을뿐더러 CG팀에 기획의도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원하는 시각 자료를 얻기 힘들었다. 그러나 KBS 데이터팀은 기획부터 취재, 시각자료 제작까지 한 자리에서 진행한다. 각 구성원들이 서로의 일을 엄격히 구분 짓지 않고 자유롭고 활발하게 의견을 나누기 때문에 기획의도를 정확히 반영한 시각자료가 나온다.

또 다른 강점으로는 기사 조회 수에 대해 자유롭다는 점을 꼽았다. 타 언론사들은 기사 조회 수가 수익과 연관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읽힐’ 기사를 써야한다는 압박감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다. 반면 KBS는 수신료를 받아 운영하기 때문에 여타 언론에 비해 자유롭다. 흥미를 끌 소재를 찾는 데 급급하기 보다는 기자들이 관심 있는 소재들에 집중해 취재할 수 있다.

지난 7월까지 데이터팀에 몸담았던 김양순 기자는 “KBS의 보수적인 이미지가 오히려 질 높은 기사를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KBS 데이터팀은 가볍고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기보다는 조금 지루하더라도 깊이 있는 보도를 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데이터 분석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 분석 기준이 온당한지 등에 대해 팀원들끼리 논의를 거듭한다. 그로인해 가치 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KBS 데이터팀도 어렵다

데이터팀의 상황이 마냥 녹록치만은 않다. 현재 데이터팀에는 데이터 저널리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김웅규 기자만이 기자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7월 인사이동 전에는 기자가 두 명이었고 현재 한 자리가 비어있으나 기자 충원 예정이 없다. 취재를 진두지휘 할 기자가 한 명밖에 없는 상황이니 취재는 더욱 어려워졌다.

국내 데이터 사정이 좋지 않은 것 또한 문제다.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부존재 처리가 되거나 제공받은 데이터가 미흡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자료를 모으는 기간은 최소 2~3주에서 1년까지도 걸린다. 석면 취재 당시 환경부에 요구했던 어린이집 석면 정보는 아직까지도 받지 못했다. 윤지희 데이터 저널리스트(2014년 입사)는 “정보공개 청구를 해도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다. 자료를 받는다 하더라도 데이터가 정제되어있지 않고, 데이터 자체에 오류가 많아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KBS 데이터팀은 바란다

KBS 데이터팀에는 데이터저널리즘에 관심 있는 기자들이 지원한다.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해도 지원하는 기자가 2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명 정도 된다. 김양순 기자는 더 많은 기자들이 데이터저널리즘에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기대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또한 정부 3.0, 서울시 정보소통광장 등 사이트를 통해 공개되는 정보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더 많은 데이터, 더 잘 정제된 데이터가 요구됨에 따라 정부부처에서 데이터 공개 플랫폼을 마련한 것이다. 김 기자는 이러한 추세가 전국으로 확산되면 데이터팀의 취재가 한결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정한진 팀장은 타 매체 언론인들에게서 ‘KBS가 (데이터 저널리즘을) 잘 해줘서 타 언론사들의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듣고 데이터팀 팀장으로서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해 결과물을 내는 우리 팀의 형태가 다른 팀이나 타사에게 벤치마킹할만한 것으로 보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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