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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궁, 나의 것’ 그녀들의 검은 반란

기사승인 2017.01.07  02: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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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옷걸이를 든 여성들

“몸 상하는 것도 비난받는 것도 모두 나~ 나도 사람이란다~”
지난 10월 15일 오후 2시, 검은 옷을 입은 300여 명의 사람들이 부른 노래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을 가득 메웠다.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는 무리 중에는 입술에 검은 립스틱을 바른 사람들도, 손에 검은 옷걸이를 든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이 여성이었지만 삼십여 명의 남성도 그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모두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이하 검은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이었다. 여성 생식권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검은 옷을 입은 참가자들은 낙태죄 폐지 구호를 외치며 보신각에서부터 종로 일대를 한 바퀴 행진했다.

▲10월 15일 검은 시위 현장

“인공임신중절(이하 낙태) 경험이 있다. 앞으로 내가 하지 않더라도 낙태를 하게 될 여성이 생기고, 내가 경험했던 힘든 시간을 겪을 여성들이 생길 텐데 그들을 위해서라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A(25)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시위에 참석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지난 9월 23일, 보건복지부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임신중절수술 처벌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안에는 불법 낙태시술을 한 의사에 대해 의사 면허 정지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12개월로 늘려 낙태죄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반발한 대한산부인과 의사회에서 불법 낙태 시술을 전면 중지하겠다는 의견을 발표하자, 여성들도 대항하여 ‘검은 시위’를 일으킨 것이었다. 이 날 시위를 주최한 곳은 ‘불꽃페미액션’, ‘강남역 10번 출구’, ‘페미당당’ 등의 여성 커뮤니티 연합이었다. 노동당 여성위원회에서도 깃발을 들고 함께 참여했다.

참가자들이 든 검은 옷걸이는 낙태 불법 국가에서 여성들이 옷걸이로 스스로 낙태를 시도하다 사망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자, 폴란드에서 낙태 합법화 시위의 상징물로 사용했던 것이다. 폴란드는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의 시발점이 된 국가이다. 지난 10월 3일, 폴란드에서는 전국적으로 수만 명의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정부의 ‘전면적인 낙태 금지법’을 반대하는 검은 시위를 벌인 바가 있다. 대규모 항의 시위에 밀린 폴란드 정부는 현재 낙태 전면 금지 법안을 폐기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의 시위는 사그라지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퍼져 한국까지 그 검은 물을 들였다.

2011년 낙태 17만 건 추정, 그 중 처벌받는 사람은 채 100명도 안 돼

“남자친구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임신을 해 낙태를 결심했었다. 병원을 알아보려고 포털 사이트에 ‘낙태’ 검색을 했었는데, 임신한 미혼여성은 그들이 무책임하고 문란했기 때문이라며 욕하는 글이 대부분이라 전부 내 잘못인 양 죄책감이 느껴졌다.” A 씨는 담담하게 그 간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가 낙태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경로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인터넷밖에 없었다. 대형 포털사이트 정보의 대부분이 허위거나 과장된 광고였기 때문에 여성전용 커뮤니티에서 다른 회원들과 익명으로 쪽지를 주고받으며 겨우 병원에 대한 정보를 구했다. 수술비는 병원에서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보험조차 적용되지 않는 위험한 수술이었지만 김 씨에게는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은 한국에서 낙태가 엄연히 불법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1953년 9월에 제정된 대한민국 최초 형법에서부터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형법 제269조 제1항에 따르면 낙태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는 범죄에 해당한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는 낙태 허용 범위를 더 한정적으로 규정짓고 있다. 위 조항에 따르면 ▲산모와 배우자의 유전적 정신장애, 신체질환 ▲산모와 배우자의 전염성 질환 ▲강간에 의한 임신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산모의 건강이 우려되는 경우에 속할 때에만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수술을 받을 수 있다.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혼여성만 낙태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술 대상은 매우 한정적이다.
 

▲통계 출처=보건복지부

낙태는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2005년 전국 200여개의 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낙태 실태조사에 따르면, 표본으로부터 추정된 전체 낙태 건수는 총 34.2만 건에 달한다. 그 중 낙태율, 즉 가임기 여성(15~44세) 1000명 당 시행되는 낙태시술 건수는 29.8건이었다. 반면 2010년 낙태 추정 건수는 총 16.9만 건으로, 15.8건이라는 낙태율과 함께 2005년에 비해 확연히 낮아진 수치를 보였다. 이러한 낙태율의 저하는 최근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면서 2009년 불법 낙태 단속이 심해진 것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문제는 이 실태조사가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추정치라는 점이다. 낙태 자체가 불법인 현실에서 전반적인 낙태 실태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자료가 2005년과 2010년 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위 통계 중 합법적인 낙태시술은 전체의 5%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나머지 95%에 대해서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 정확한 실상을 알 수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2010년의 통계가 불법 낙태 단속 강화로 인해 훨씬 과소평가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위와 같은 낙태 수치에도 불구하고, 매년 낙태죄로 처벌받는 인원은 100명 미만에 불과하다. 대검찰청 2014 범죄분석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낙태로 범죄자가 된 사람은 66명이며, 이 중 처분이 내려진 59명 중 15명만이 기소되었다. 연간 17만 건 이상의 낙태가 추정되는 상황에서 기소자 수가 15명이라는 것은, 낙태죄가 사실상 사문화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아무리 불법이라고 해도 한국의 낙태는 이미 사회적으로 만연해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자, 불편한 진실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낙태 허용, 낙태율은 한국보다 낮아

한국뿐만 아닌 해외에서도 낙태죄는 오랜 기간 논쟁거리였다. 해외의 경우는 어떠할까. 미국,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 많은 선진국에서는 사실상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과거 미국에서는 낙태를 엄격히 금지시켰으나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텍사스 주법의 낙태죄를 위헌으로 판단하면서 이를 기점으로 임신 3개월 내의 낙태가 전면 허용되었다. 주마다 그 기간 제한에 있어 다양한 낙태 제한법이 운영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위 판례를 준용하여 임신 초기, 중기, 말기에 따라 그 허용범위를 달리 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1969년 정부가 불법적 ‘뒷골목 낙태’로 인한 임부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 세계 최초로 산모의 생명이 위독하거나 정신‧신체적 장애가 있는 경우에 한해 낙태를 비범죄화 하였다. 프랑스는 만 12주 미만의 태아는 낙태가 가능하다는 점이 다른 국가들과 비슷하지만 2013년부터는 낙태 비용 전액이 보험으로 지원된다는 점에서 그 차별성이 두드러진다. 가까운 나라인 일본도 정당한 사유 없는 낙태를 형법으로 처벌하고는 있지만 낙태 허용 사유 중 ‘사회경제적 사유’를 인정하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낙태가 자유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낙태를 허용한 국가들은 한국보다 낙태율이 높을까. 경기연구원에서는 낙태를 허용한 국가의 낙태율이 현재 한국의 낙태율인 28.9건보다는 낮고, 과소평가된 16.9건보다는 높은 20 초중반 건일 것이라 추측했다. 이에 반해 보건복지부에서 공개한 2011년 OECD 국가의 낙태율의 경우, 미국은 18.9건, 프랑스는 17.6건, 영국은 16.8건, 일본은 10.3건이라 한다. 모두 낙태가 가능한 국가이지만 한국의 추정 낙태율보다 훨씬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낙태죄의 실효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자궁은 공공재가 아니다, 기한 내 낙태허용 도입이 필요해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그러나 2012년,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70조 제1항 동의낙태죄 위헌소원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리면서 낙태는 불법이라고 다시 한 번 못 박았다. 헌법재판소는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우지를 위해 모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와의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그에 대한 낙태허용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판결문에서 볼 수 있듯 낙태죄의 합헌 주장의 주된 근거는 바로 태아의 생명권이다. 생명권은 그 어떠한 상황에서든 시민이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문 중에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위 조항을 통하여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는 구절 또한 포함되어 있다. 태아의 생명권이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더 큰 법익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그 생명권이 태아에 대해 친권자로서 의무를 지게 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더 큰 보호법익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위 판결을 보면 형법상에서 태아의 생명권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것 같으나 실제 법체계에서는 사람, 영아, 태아 순으로 그 형량이 다르게 책정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 장명선 교수는 태아의 생명권 못지않게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더 중요하다며 낙태죄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태아의 생명권을 공익, 여성의 결정권을 사익으로 치부하는 것 자체가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보는 남성중심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여성이 자신의 출산력을 조절할 수 있는 권리는 여성의 힘의 증진에 있어 기본적인 것이며, 이 권리가 태아의 생명권보다 결코 낮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장 교수가 가장 우선적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12주 기한 내의 자율적 낙태 허용’이다. 이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 및 독일, 스페인,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많은 낙태 허용 국가의 규정을 준용한 것이다. 보건복지부 실태조사 중 낙태 시술의 96%가 임신 12주 미만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낙태의 사실상 전면 허용을 의미한다.

주목할 점은 그 기한모델을 적용할 때 임부에게 ‘상담의무화’가 필수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상담은 태아의 생명권을 고려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장 교수는 상담을 거친 후에도 임부의 의견에 변함이 없다면 자기결정에 따라 자유로이 낙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뿐만 아닌 남성도 그 책임을 질 의무 있어

검은 시위 참가자에 모두 여성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남성들도 그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검은 시위 참가자 유길용(34)씨는 서면 인터뷰에서 여자친구에게 시위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고 그 참가 경로를 전했다. 유 씨는 “‘낙태죄’라는 키워드 자체가 문제다. 이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가 너무 많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단어를 고스란히 여성 혼자 떠안아야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남녀 간 낙태의 책임을 분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형법상에서 처벌 대상은 임부와 그 낙태를 도운 대상으로 한정되어 있다. 임신에 있어 여성과 동등한 책임이 있는 남성에 대해서는 언급되어있지 않다. 부산대 여성연구원 이선순 박사는 논문에서 불법 낙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혼모의 경우, 남성 파트너에 대해 실질적 책임을 규정하고 있지 않는 법 현실 때문에 상황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의 동의낙태죄 합헌판결에서도 재판관들 역시 이 부분을 언급하긴 했지만, 남성들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남성은 피할 수 있지만 여성은 피할 방법이 없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남녀 간 책임분담에 대한 해결방안 제시는 없었다. 어느 방식으로든 남녀의 동등한 책임 분담을 위한 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10월 15일 검은 시위 현장

그들에게 독방에서 나올 권리를 달라

10월 15일 첫 시위 이후에도 검은 시위는 세 차례 더 진행되었다. 시위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관심도와 함께 규모는 더욱 커져갔다. 지난 10월 29일 시위의 경우,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민우회 등 14개의 여성단체가 참여했다. 시위와 함께 지속적인 민원 청구가 이루어지자 지난 11월 11일, 정부는 ‘임신중절수술 처벌강화’ 계획을 철회하고 수정안을 발표했다. 첫 검은 시위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낸 쾌거였다. 유 씨는 “계획안 철회 소식을 들었을 때 ‘뭉치니까 역시 되는구나’ 하는 보람을 느꼈다”며 그래도 깨어있는 시민이 아직 많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아직 낙태죄에 대한 형법 제269조 1항도, 모자보건법 제14조도 변경된 사항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검은 시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성커뮤니티 연합에서는 궁극적 목표였던 ‘임신중절 합법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주기적으로 시위를 이어나가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여성커뮤니티 연합은 다가오는 1월에 또 한 번의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임신중절수술을 했다는 것을 밝힐 수 없어서 숨어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사회 어딘가에는 나와 같은 여성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 여성들도 나와 같이 ‘임신중절수술을 한 여성을 향한 비난’이라는 독방에 갇혀 울었을 것이다. 우리는 숨어있기에 서로를 알아볼 수 없지만 서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나만의 일’이 아님을 알기에 연대한다.” 앞서 인터뷰에서 A 씨가 전한 말이다.

장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낙태가 거의 사문화 되어있는 현재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낙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가 여성을 불법적이고 검증 안 된 시술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궁지에 내모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사회 분위기를 타파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 해결책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수현 기자 elena217@naver.com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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