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교실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다. 다른 아이는 캐릭터 인형 모자를 쓰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짝꿍에게 씌워준다. 또 다른 아이는 그림을 그린다. 1교시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무용 교사는 아이들 머리 위에서 돌아다니는 캐릭터 인형 모자를 잠시 빌려 쓴 채 고등학교 학생 11명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아이가 “선생님! 선생님 그 모자 쓰니까 진짜 엘모 같아요. 너무 웃겨요!”라고 소리치듯 말했다. 교실은 순식간에 초롱초롱한 눈빛과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아들! 이제 잠 깼어? 그럼 다 같이 강당으로 가서 스트레칭부터 하자!”

기자가 찾아간 2016년 11월 18일 오전  9시, 아이들은 발레 수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서울 노원구 예룸예술학교. 경계선 지능 학생을 위해 설립된 예술형 대안학교다. ‘경계선 지능’학생은 K-WISC-IV(한국웩슬러아동지능검사도구) 지능지수 70과 79 사이의 아동과 청소년을 말한다.

▲교내 예예 아트홀에서 발레 수업 중인 무용 교사와 학생들.

신현기 단국대 교수(51‧특수교육학과)는 “경계선 지능 청소년이라는 용어에 지능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데, 지능을 단순히 공부 잘하는 머리라는 등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이들은 학습 능력뿐만 아니라 사회성과 의사소통 능력, 감정 표현이 비장애인 학생에 비해 미숙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애 학생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비장애 학생과 다르다는 점에서 경계선에 놓인 학생들. 이들은 일반 학교의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어 학년이 올라갈수록 비장애 학생과의 격차를 느낀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적절히 대응하는 능력이 부족해 따돌림을 당하는 등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특징을 보인다.

2015년 3월 25일에 더불어민주당의 조정식 의원이 ‘느린학습자 지원법’을 발의했다. 경계선 지능 학생과 학습 부진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업교재의 개발과 교사연수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법안은 2015년 12월 31일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2016년 11월 8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가 개최한 경계선지능 아동·청소년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제자들은 국내 제도적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계선 지능 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미비한 가운데 예룸예술학교는 국내 처음으로 이들만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다. 장애인 문화예술 사단 법인체 DTS 행복들고나 대표인 지우영 교장이 2015년 4월 설립하면서다. 지 교장은 자신의 아들이 경계선 지능 판정을 받자 비슷한 학생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에 관심을 가져왔다.

예룸예술학교의 모집 대상은 K-WISC-Ⅳ(한국웩슬러아동지능검사도구) 지수 70과 79 사이의 경계선 지능 청소년이다. 1차 서류접수 단계에서 지능검사 결과지를 분석하여 경계선 지능임을 확인하고 개별 특징을 파악한다. 2016학년도 기준 입학 정원은 중학생 20명과 고등학생 20명으로 총 40명인데 대기자만 160명에 이른다. 경계선 지능 청소년끼리 모여야 학습 효과가 더 높기 때문에 입학 기준을 엄격히 지키려고 한다.

2차에서는 문장완성검사를 통해 경계선 지능 청소년이 맞는지를 확인한다. 김성아 교사(50)는 “우리 아이들 검사지에는 삐뚤삐뚤한 글씨와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맞지 않는 문장이 많아요. 간혹 경계선이라고 속이고 오는 경우도 있어서 이렇게 확인을 해봐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교사들은 면접을 통해 학생의 성향을 파악한 후 입학 승인 결정을 내린다. 김 교사는 “우리 학교는 서울시 주민참여 예산 사업으로 선정되어 설립됐기 때문에 노원구청의 예산 지원을 받아 소외계층 학생을 우선 선발한다”고 덧붙였다.

예룸예술학교는 통섭예술교육을 통해 학생의 학습의욕과 사회 적응력을 올리려 한다. 통섭예술교육은 음악, 미술, 무용, 연극을 비롯한 순수예술을 통합적으로 배우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방식이다. 오감을 단조롭게 느끼며 표현 및 공감능력이 부족하지만 느리고 순한 학생들은 이런 교육을 통해 감성적으로 풍부해지고 표현능력이 향상된다.

▲창작 미술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2017년 달력을 꾸미는 모습.

지난 학기에는 학생들이 음악극을 직접 만들었다. 김 교사는 “작곡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 직접 작곡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학생은 대본을 만드는 등 각자가 잘하고 좋아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고 통섭예술교육의 효과를 강조했다.

예룸예술학교에 재학 중인 윤모 양(17)은 “처음에는 스트레칭도 잘 못했어요. 그냥 하기 싫었고요. 하다 보니 재미있고 저도 실력이 늘더라고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입학 당시에는 의욕이 없었고 자신감도 부족한 상태였지만 무용 시간에 직접 몸을 쓰고 친구들과 함께 배우며 점점 흥미를 느끼는 모습이었다.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학교에 음악 수업도 많고 다 같이 연극 보러 가는 것도 좋아요.” 박모 군(16)은 일반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냈지만 이곳에서는 서로에게 친구가 되는 과정을 통해 사회성을 기르는 중이다.

▲제2회 예예 페스티벌 ‘천천히 걷는 새들’ 현대 무용 공연.

2016년 12월 27일 서울 노원구 노원어울림극장에서 제2회 예예 페스티벌 ‘천천히 걷는 새들’이 열렸다. 학생들은 연극, 성악, 현대무용 등 다양한 무대를 선보였다. 예룸예술학교의 서모 군(18)은 “1부 사회를 맡았을 때 긴장되고 실수도 있었지만, 진행을 하면서 긴장이 풀렸고 남은 무대들도 재미있게 할 수 있었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 교사는 “예룸예술학교에서의 통섭예술교육과 개개인의 특유의 순수함으로 학생들이 훗날 직업 예술인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높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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