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걸 묻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취업준비생 김가영 씨(27)는 가족의 직장과 최종학력, 주택소유 여부를 묻는 이력서를 보고 매우 당황했다. 그는 불이익을 받기 싫어 모두 기입했지만 찝찝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1년간 구직활동을 했던 김상훈 씨(28) 역시 이력서를 쓰며 불쾌했던 적이 많다. 몇몇 기업은 대놓고 요직에 있는 지인을 적으라고 했다. 그는 결국 해당 문항을 비워둔 채 이력서를 제출했다. 송수빈 씨(25)는 이력서에 신장과 몸무게, 주량과 흡연 여부를 써야 했다. 그는 기업이 원하는 조건은 무엇일지 한참을 고민했다.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는 구직자의 모습.
▲한 중소기업의 이력서 문항이다. 주거형태와 가족의 출신학교, 직장 및 직위를 묻고, 지원자의 신체조건도 요구하고 있다.

민감한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기업 이력서가 취업준비생들을 울리고 있다. 지원자의 능력과는 관계없는 가족정보를 요구하는가 하면 신체조건 등 사적인 정보를 쓰게 하기도 한다. 구직자들은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를 작성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고용환경이 열악할수록 불필요한 정보를 묻는 경향은 더 심하다. 서울보다는 지방,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이력서가 더 많은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대구에서 구직 중인 권태영 씨(29)는 이력서를 쓸 때마다 가족관계를 상세히 적어야 했다. 몇몇 기업은 면접에서 이력서에 기재된 부모님의 직업에 대해 캐물었다. 지방대학을 졸업한 정희석 씨(26)는 “수도권 기업 이력서는 간소화되고 있는데, 지방 기업 이력서는 아직도 문항이 많다”고 했다.

중소기업은 불필요한 정보를 요구하는 ‘옛날식 이력서’를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대기업은 인사팀이 이력서 문항을 조정하는 반면, 중소기업은 인사팀이 작거나 없어 이력서 양식 업데이트가 잘 되지 않고 있다. 구직과 이직을 위해 4년째 이력서를 써왔다는 신명섭 씨(30)는 “혈액형, 신체조건 등은 과거 이력서 문항인데, 아직도 중소기업 이력서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윤여진 씨(26)는 본적을 묻는 중소기업의 이력서를 보고 과거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50인~299인 기업이 1,000인 이상 기업보다 불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비율이 더 높다.

계약직은 정규직과 고용 형태가 달라 이력서에 더 많은 개인정보를 쓰기도 한다. 정규직은 기업이 모집하지만, 계약직은 파견업체가 채용을 대행하기도 하는데, 파견업체 이력서가 자세한 신상 정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규 이력서는 최소한의 개인 정보만 수집한다. 그러나 한국콘텐츠진흥원 파견직 이력서는 결혼 여부와 신체조건, 가족사항까지 수집한다.

기업 측은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각기 다른 설명을 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씨(53)는 “환경도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 요소”라고 했다. 하지만 다른 중소기업 대표 조모씨(55)는 “기성 이력서 양식을 따왔을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신상정보가 합격, 불합격을 가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행정자치부는 ‘개인정보 수집 최소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기업은 구직자의 개인정보 중 꼭 필요한 것만 수집해야 한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많은 기업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가이드라인보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고용노동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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