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반인 이수현 씨(24)는 대학 4년 동안 성폭력 예방교육을 3시간밖에 받지 못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때 들은 수업 2시간과 온라인 강의 1시간이 전부다. 그는 이마저도 열심히 듣지 않았다. 이씨는 “교과서에나 실릴 법한 내용을 들어야 해 지루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성폭력 예방교육이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 시간이 짧고, 가르치는 방식에 문제가 있으며, 콘텐츠도 부실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대학생은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을 의무가 없으나 2014년 국민대 남학생들이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성희롱 발언을 한 사건 이후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는 대학이 늘었다. 그러나 지금의 예방교육은 실효성이 없어 보다 내실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세대학교 경영관 건물 앞에 ‘폭력예방교육 의무 이수 시행’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세대학교 학생들은 매년 성폭력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

대학 성폭력 예방교육은 학생들을 한 번에 모을 수 있는 신입생 OT 때 집중되는데 시간도 짧고 획일적이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이 단과대학별로 신입생을 모아 전문강사 혹은 외부강사를 초빙해 두 시간 정도 교육을 한다. 많게는 200명이 함께 수업을 듣다 보니 엎드려 자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지난 2월 15일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았다는 신입생 송모 씨(18)는 “대형 강의실에서 동영상을 봐야 해서 그런지 모두 꾸벅꾸벅 졸았다”고 말했다.

온라인 교육 역시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학생마다 듣는 수업이 다른 대학 특성상 OT 이후엔 학생들을 모으기 어렵다. 이에 상당수 대학이 약 1시간 분량의 온라인 강의를 제공한다. 2016년도 서울대 신입생들과 연세대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를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 하지만 동영상 강의를 켜 놓고 딴짓을 해버리면 그만이다. 연세대 학생 박현우 씨(25)는 “영상을 켜 놓고 카톡을 하거나 잡담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주 관심사는 대처법인데 교육이 예방을 중점적으로 다뤄서 실제 성폭력이 발생하면 무용지물이다. 서울대와 연세대가 각각 제공하는 영상에는 강간만이 아니라 스토킹도 성범죄라는 식의 설명이 영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성폭행이 발생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짧게 설명한다. 성균관대, 서강대도 마찬가지다. 대학생 이모 씨(24)는 “성희롱을 겪은 순간엔 당황하기만 했다.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대처법을 알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인권 감수성을 높여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게 한다는 취지에서 예방교육을 강조하나, 대학 내 성폭력은 줄지 않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2014년 성폭력상담 1405건 중 대학 내 성폭력 건수는 66건(4.6%)으로 초·중·고 성폭력을 합친 54건(3.7%)보다 많았다. 작년엔 성폭력 예방교육을 해야 할 건국대 신입생 OT에서 오히려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성가족부는 교육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성폭력이 왜 문제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가족부 폭력예방교육과 조윤예 사무관은 “성폭력의 본질은 인권침해인 동시에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콘텐츠를 지속해서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