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격 훈련 중인 한 군인의 모습. 기사 중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출처: 픽사베이)

“탈북민은 군 장교 후보생 선발에 지원할 엄두조차 못 냈어요. 성적과 체력 등 선발기준이 높아 심사를 통과하기 힘들 거란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죠. 탈북민이 장교 후보생으로 뽑힌 건 모든 것을 극복한 역사적인 사례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탈북민 오모 씨(27)는 한껏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말했다.  

탈북민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화여대 학군단(ROTC)이 탈북민 출신 장교 후보생을 사상 처음으로 선발했기 때문이다.

탈북민 주원석 씨(24)는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탈북민을 떠올릴 때 독재, 핵, 빨갱이 등 부정적인 부분을 먼저 생각한다”며 “이런 엄혹한 현실에서 장교후보생으로 뽑힌 친구가 정말 잘해줬으면 한다”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탈북민 공철진 씨(24)도 비슷한 바람을 이야기했다. 공 씨는 “처음인 만큼 시선을 한꺼번에 받아 부담이 클 것 같다”며 “힘들겠지만 군복무를 잘 해내서 탈북민을 향한 남한 사람들의 적대적인 시선이 사라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탈북민 하태일 씨(24)는 앞으로 좋은 선례가 하나둘 생겨 장교 지원에 머뭇거렸던 탈북민들이 점차 장교에 많이 지원할 거라 내다봤다. 탈북민 박모 씨(27)는 “대한민국에선 남자라면 웬만한 병이 없고서야 군대에 간다”며 “군대에 다녀온 친구들은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럴 때마다 소외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씨는 “앞으로 탈북민의 군입대가 활발해져 탈북민이 진정으로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민간인 신분의 탈북민이 장교 후보생이 된 전례는 없다. 1996년 직접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철수 대위는 대한민국 공군에 소령으로 입대한 뒤 대령까지 진급했다. 전직 북한 조종사가 한국 공군의 대령이 된 것은 이 씨와 1960년 8월 귀순한 정낙현(전 공군대학 부총장)씨, 1983년 2월 귀순한 이웅평(2002년 간암으로 사망)씨를 비롯해 7명이다.
민간인 신분 탈북민의 한국군 입대는 사병 복무의 형태로도 드문 일이다. 사병으로 군에 입대한 경우는 3년 전 공군에 사병으로 입대해 작년 2월 만기 제대한 1명과 현재 해병대에서 복무중인 1명을 포함해 단 2명에 그친다. 거의 전원이 병역을 면제 받기 때문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실이 공개한 ‘북한이탈주민 병역면제 현황’ 자료에 따르면, 병역을 면제 받은 탈북민의 수는 2016년 7월말 기준으로 총 3,012명이다. 매년 300여 명에 달하는 탈북민이 꾸준하게 병역면제를 받아왔다. 

▲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이 작년 9월 27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북한이탈주민 병역면제 현황’ 통계


탈북민의 군 복무 제도는?
대한민국 병역법 64조는 탈북민의 병역을 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북한 주민이 탈북해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하면 18세 이상 35세 이하 남성의 경우 병역의무가 생기지만, 본인이 희망하면 지방병무청장이 병역을 면제하도록 하고 있다. 병역법 시행령 134조에 따라 병역면제 신청서를 작성한 후 병역을 면제 받는다.

▲ 민간인 신분의 탈북민이 하나원에서 작성하는 병역면제 신청서

탈북민의 병역면제는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일컫는 면제와는 다른 개념이다. 탈북민은 전쟁 중에도 소집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병역법상 18세 이상의 대한민국 남성 국민이 완전한 병역면제 처분을 받으려면 신체적·정신적으로 병역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경우와 탈북민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현행법상 탈북민이 자원해서 군에 입대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탈북민은 면제를 택한다. 하태일 씨(24)는 “3년 전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친한 동기들이 하나둘 군대에 가는 걸 보고 나도 따라가고 싶었다”며 “하지만 그 당시엔 탈북민이 군에 입대 하지 않는 게 당연시 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하 씨는 “탈북민은 하나원에서 일괄적으로 병역면제 신청서를 작성하는데 뭘 모른 채로 일단 썼다가 이후 군대에 다시 가고 싶어도 결정을 번복할 수 없었다”고 얘기했다. 
병무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하나원에서 탈북민들에게 병역면제 대상자임을 알리고 병역면제 신청서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 입대 결정은 전적으로 탈북민의 선택에 맡긴다고 덧붙였다. 탈북민에게 면제를 권유하거나 강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원에서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병역 의무를 이행하려는 탈북민이 하나둘 생기다 보니, 탈북민이 하나원에서 병역면제 신청서를 작성했더라도 사회에 나와 결정을 바꿀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탈북민이 장교로 입대하는 경우는 어떨까. 그동안 민간인 신분의 탈북민이 일반적인 모집과정을 통해 한국군 장교 후보생이 된 사례는 없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학군단에선 탈북민을 장교후보생으로 받아주지 않았다. 탈북민 박모 씨(27)는 “5년 전에 학군단에 지원하려고 학교에 문의했지만 자격이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방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5년 전과 지금의 상황은 아주 많이 다르다”며 “탈북민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며, 탈북민 사회가 점차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탈북민들의 사회적 욕구가 여러 곳에서 분출되는 상황에서 국방부에서도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고자 철저한 심사를 거쳐 탈북민 출신 장교 후보생을 선출했다”고 말했다. 
졸업 후 장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사관학교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탈북민 출신이 사관학교에 입학한 전례가 없다. 사관학교에선 ▲1차 필기시험(국어, 수학, 영어) ▲2차 시험(면접, 체력검정, 신체검사) ▲최종 전형(수능과 학생부, 2차 시험 성적 등을 합산)을 거쳐 합격자를 뽑는다. 탈북민은 상대적으로 모든 전형을 통과하기 쉽지 않다. 탈북민 오모 씨(27)는 “사관학교는 남한 친구들과 똑같이 경쟁하기 때문에 탈북민이 합격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학군후보생(ROTC)은 대학 재학생을 대상으로 학점과 체력평가 및 면접을 거쳐 선발한다. 학군후보생으로 선발되면 대학 내에서 이뤄지는 군사교육을 이수하고 방학기간엔 동·하계 입영훈련을 받는다. 성적, 체력 등의 평가를 통과한 학군후보생은 대학졸업 후 장교로 임관해 2년 4개월 동안 소위와 중위로 복무한다. 연봉은 2200만원에서 2400만원 수준이며 국가공무원 7급에 준하는 각종 혜택을 받는다. 의무 복무 후엔 장기 복무하거나 제대가 가능하다. 장기 복무할 경우 대위는 3700만원, 소령은 5400만원, 중령은 69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이후 일정한 심사를 거쳐 개인의 역량에 따라 군 고위직인 장성급 장교와 합참의장의 지위까지 얻을 수 있다. 

기대vs우려···들끓는 논쟁 중 
탈북민 출신 장교 후보생 탄생을 두고 대한민국 사회는 갑론을박 중이다. 학군단 출신으로 만기 전역한 차창희 씨(27)는 “탈북민을 향한 편견을 깨부수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예비역 군인 신지헌 씨(29)는 “장교로 뽑기 전에 철저히 검증된 사람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미래의 통일된 한국을 가정했을 때 이렇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예비역 군인인 최원철 씨(27)는 “탈북민들이 대한민국 국민인 건 맞지만 예외는 있어야 한다”며 “분단국가에서 굳이 탈북민들을 군에 입대 시켰다가 같은 부대의 전우들이 경계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조직 분위기를 망친다”고 말했다. 학군단 후보생인 이모 씨(24)는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시기이며 아직도 간첩 관련 뉴스가 끊이질 않는다”며 “최근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김정남 암살 사건도 있었다. 탈북민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군대 내부까지 북한 출신을 수용하는 건 무섭다”고 말했다.
한 포털 사이트에 실린 작년 10월 31일자 “탈북 여대생 첫 ROTC 후보생 됐다”라는 제목의 기사엔 (http://news.nate.com/view/20161031n00941) 63개의 댓글이 달렸다(2017년 4월 23일 기준). 대부분은 부정적인 시각을 띠고 있었다. 412명의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이건 정말 아니다. 시기를 고려해서 가능성을 열어줘야지 무조건 다 개방시킨다. 나라가 망조다”라는 내용이었다. “간첩을 군 간부로 심어놓는다”는 댓글도 있었다. 

북한문제전문가들 “탈북 청년들 적극적으로 군에 수용해야” 
전문가들은 탈북민을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군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독일의 경우 통독 전 동독을 탈출해 서독으로 온 사람들은 서독 시민들과 완전히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독일의 기본법에 근거해 동독을 탈출하여 온 독일인은 서독의 국적을 인정받아 병역의무를 가졌다. 김동명 독일문제연구소 소장은 “통일독일 전 동독을 탈출한 민간인이 서독 군에 장교로 입대한 통계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당시 서독에선 동독을 탈출했더라도 모든 시민이 독일인으로서 기본권을 누렸기 때문에 자유롭게 받아들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탈북민의 군 입대를 막는 건 마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테러 발생을 걱정하며 무슬림의 입국을 금지하는 논리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우려의 시각은 개인적인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갖는 국방의 의무를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고 덧붙였다.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탈북민을 군대로 수용하는 건 대한민국 시민들의 인식 전환을 이뤄내는 실질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껏 탈북민의 사회 통합정책은 물질적인 지원에만 그쳐 남한 사람들과의 벽은 여전히 컸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탈북민이 군대에서 남한 청년들과 성공적으로 화합하고 군에 정착한다면 이들은 향후 통일에 매우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하나원보다 체계적으로 탈북민을 교육할 수 있는 정부 주도의 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군간부 양성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탈북민을 군에 받아들이는 것을 불편하다고 여기는 편의주의적인 발상을 버려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군사 통합을 하려면 탈북민 출신의 성공 모델을 지금부터 만들어 가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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