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는 붉은색이 넘실댔다. 참석자들은 점퍼, 스카프, 모자를 붉은 색으로 맞췄고, 같은 색깔의 응원봉을 흔들었다. 4월 8일, 자유한국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 행사의 모습이다. 대부분 중장년층이라서 당기를 흔드는 청년들은 눈에 쉽게 띄었다. 자유한국당의 미래세대위원회 위원들이었다.

미래세대위원회는 자유한국당의 청년조직 중 하나다. 정기적으로 모여 청년에게 필요한 정책을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고위 당직자와 의견을 공유한다. 위원은 40~50명. 청년층 대부분이 자유한국당에 등을 돌린 요즘,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활동할까.

지승호 자유한국당 중앙 미래세대위원회 위원장(23)은 박근혜를 쫓아다니니 좋냐는 식의 비난에 시달렸다. 대선 기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지원유세를 다닐 때는 냉소를 받았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고 했다. 일부 시민은 얼굴을 찌푸렸다. 중고등학생들로부터 ‘친박 쓰레기’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에 남은 이유는 친박이라서가 아니다. 그는 2013년 12월부터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활동했다. 그와 함께했던 청년 당원 상당수는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정에서 당을 떠나거나 바른정당으로 옮겼다. 지 위원장은 국정농단 사태로 당이 힘들어지긴 했지만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보수의 중심’이라고 판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의 잘못을 인정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이 다시 합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굳이 나갔다 들어갔다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유한국당 청년정책자문단 회의에 참석한 안준현 씨(19‧고려대 정치외교학과)도 비슷한 생각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을 지지한다. 바른정당은 세력이 약하지만 자유한국당은 국회의원이나 보좌관 수로 봐도 아직 힘이 있는 정당이다.” 그는 학과에서 자유한국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은 자신이 거의 유일하다면서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힘쓰는 청년이 자유한국당에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 자유한국당 청년당원들이 홍준표 후보를 응원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기간에 열심히 움직였다. 4월 16일, 서울 영등포구의 자유한국당 당사 2층 강당에 미래세대위원회를 비롯한 청년당원들이 모여들었다. 대학 동아리방처럼 꾸민 공간에 ‘홍준표 대통령으로 가자! 홍대(洪大) 캠퍼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열린채용특별법 제정, 불공정 채용 신고센터 설립 등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의 청년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홍 후보의 당시 지지율은 7~8%였다. 승리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지만 행사장 분위기는 위축되지 않았다. 김지원 중앙 미래세대위원회 대변인(19)은 “우리의 신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투표 호소를 넘어 당 이미지 쇄신의 기회로 선거운동을 인식했다. 당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의 마음을 되돌려야 하는데, 청년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봤다.

김 대변인은 올해 대학 신입생이다. 자유한국당의 청년유세단에 참여하려고 휴학을 결정했다. 청년유세단 17명은 전국을 누비며 지지를 호소했다. 선거결과에 대해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패배가 확정된 직후에는 허탈함을 느끼기도 했다. 선거당일 심경에 대해 김 대변인은 “당사에서 개표 방송을 보고는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날 정도였다. 24%나 되는 국민이 지지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데도 처음엔 졌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지승호 위원장은 솔직히 선거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선거 초반에 지지율이 너무 안 나와서 걱정했다.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 받는 기준(득표율 15%)을 못 넘겨서 당이 진짜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는 “얼마 안 되는 선거 기간이었지만 지지율이 막판에 급상승하지 않았느냐. 24%나 되는 국민이 다시 선택했다는 데 감사하다”고 했다.

▲ 미래세대위원회의 지승호 위원장과 김지원 대변인(왼쪽에서부터)이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패배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김지원 대변인은 ‘말’을 꼽았다. 홍 후보의 직설적인 화법이 ‘시원하다’ ‘사이다 같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부적절한 발언이 많아서 국민이 호감과 비호감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평했다. 좌파, 우파 같이 공감을 받기 힘든 용어를 사용한 점도 아쉽다고 했다.

그는 정책만 보면 청년들이 자유한국당에 공감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자유한국당을 꺼리는 건 색안경의 문제지만, 색안경을 씌운 건 소통이 부족했던 자유한국당이다. 당이 국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서 공감을 받으면 언젠가는 청년들이 색안경을 벗어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행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대변인은 “상대 진영의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건 과거 인식이다. 배울 점은 배워서 우리만의 방식을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사상은 보수적이어도 행동은 진보적으로 하겠다는 미래세대위원회. 구체적으로 무엇을 계획하는 중일까.

미래세대위원회는 UCC 제작이나 세미나 개최와 같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에 앞서, 당분간 ‘인풋(Input)’에 집중하기로 했다. 청년당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자유민주주의와 보수주의에 입각한 정책에 대해 연구하는 방식이다. 

시민단체나 전문가 강의를 바탕으로 청년당원이 공부하는 시간. 지승호 위원장은 이런 노력이 “다른 당과의 정책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필수”라고 했다. 당원끼리 정책논리와 토론기법을 가다듬어야 다른 정당의 청년당원을 만나 얘기할 때 설득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정의당의 청년당원들과 정기적으로 만난다. 5개 정당의 청년당원 10여 명은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기자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지 위원장은 “이런 식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끼리 싸우기만 할 것이 아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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