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오브서울의 대선취재팀은 지난해 12월 1일 출범했습니다. 초겨울의 쌀쌀함 속에서 발대식을 가졌는데, 초여름 분위기가 완연한 시간에 마무리 원고를 씁니다. 그 사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14명이 이화여대의 SK텔레콤관 508호에 처음 모였습니다. 모두의 얼굴을 사진에 담아서 첫 기사에 넣기로 했습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이었습니다.

제가 썼던 안내문은 2017년 2월 1일 홈페이지에 올라왔습니다. 발대식 2개월 뒤였습니다. 학생들의 기사는 2월 13일에 한 건, 3월 6일에 한 건 나왔습니다. 보름에 한 번이네요.

작업이 더딘 이유는 기획안이 머리를 떠나, 눈과 발을 거쳐, 손을 통해 구체화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기획, 메모, 원고, 에디팅, 팩트체크. 하나의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바로 넘어간 적이 없습니다. 숫자를 통해 설명하겠습니다.

대선폴더를 보니 기획안이 49건과 메모가 138건입니다. 이 중에서 메모는 취재결과를 풀어놓은 자료입니다. 후보의 출마선언식과 북콘서트를 찾아가고, 후보의 부인과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직접 또는 이메일을 통해 확인한 내용, 책이나 기사 등 원자료(raw data)를 모은 겁니다.

취재2팀을 예로 들면, 후보 1명당 메모의 분량이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105~460장이었습니다. 이걸 20~25장으로 줄였습니다. 나중에 보도된 현직기자들의 기사 못지않게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의 후보 스토리가 충실한 비결은 실력이 아니라 노력에 있었습니다.

초고가 그냥 넘어간 사례는 하나도 없습니다. 보완이 필요하면 다시 취재하고, 다시 쓰도록 했습니다. 청소나 내부수리가 아니라 재건축 또는 리모델링이었습니다. 모두 28건이 게재됐는데 초고와 수정본과 최종본을 합치면 96건입니다. 메모는 5회, 기사는 3~4회 고쳤다는 뜻입니다.

▲표. 글 실은 순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대선정국이 빨라지면서 변수가 생겼습니다. 지지율 1, 2위이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하차했습니다. 두 주자를 맡았던 학생들은 취재결과를 활용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는 순간부터 여권의 유력후보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취재가 거의 끝난 시점에서 그가 불출마 결정을 내렸지만 스토리오브서울 편집진은 출마여부 또는 경선결과 못지않게 정치 지도자의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취재팀은 모두 대학생이었습니다. 11개 대학에서 42명이 참여했습니다. 수업을 듣고 취업을 준비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기획에 전념하기 힘들었고, 정식기자가 아니어서 어려움을 겼었습니다. 이 중에서 6명은 중간에 언론사나 일반기업에 입사하면서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습니다.

▲ 시어도어 화이트 기자의 미국 대선취재 저서

시사주간지 ‘타임’ 출신의 시어도어 화이트(Theodore H. White)는 미국 대통령선거를 취재해 ‘The Making of the President 1960’을 썼습니다. 퓰리처상의 논픽션 수상작(1962년)입니다. 그는 1964년, 1968년, 1972년의 대선까지 시리즈로 출간했고, 결산 성격의 책(America in search of Itself: The Making of the President 1956-1980)을 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후대의 역사가는 권력을 향한 1960년의 쟁투를 더 풍부하면서도 검증된 사실을 활용해 더 정밀한 표현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기자가 하는 노력에도 어느 정도는 영원한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시대의 분위기, 그리고 1960년대의 미국을 이끌려고 했던 정치인들의 긴장, 피로, 흥분 및 불확실성을 포착하려 했으니까.”

시대 분위기를 포착하지는 못했어도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은 신선한 눈과 부지런한 발로 역사의 한 순간을 기록하려고 했습니다. 6개월간 함께 했던 학생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대학과 사회생활이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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