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14. 린 : 안녕 안녕 안녕…


 

 



 

 

  얼른 가야 하는데, 우물쭈물하다 할머니가 반짝 정신이 들거나 오빠와 마주치면 안되는데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약속을 하고 어디서 만날지는 잊은 사람처럼 머뭇거리고만 있는걸. 누군가 날 잡아 주길 기다리는 건 아냐. 화단을 가득 채운 맨드라미를 오랫동안,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아쉬움 때문이라고 치자. 프라하에도 촛불 맨드라미가 있을지 궁금해서, 나는 손을 내밀어 노랑 맨드라미를 살살 쓰다듬어 본다.


   오늘 나는 ‘우리 반 왕따’에서 ‘전교 왕따’로 굴러떨어졌다. 살인 미수가 거짓말을 꾸며 이른 결과다. 덕분에 날라리라고 소문난 유리에게 끌려가 왕창 깨져야 했다. 난 완전히 끝났어! 지금까지는 반 애들이 따돌리고 다른 반 애들은 ‘2반 왕따’라며 무시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전교생이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매점에서 썩은 고기를 본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조각조각 물어뜯을 거야.
  담임에게 손을 내밀 수는 없다. 말해 봤자 하루 종일 내 옆에서 지켜 줄 수도 없는걸. 오히려 어떤 어른이라도 찾아가는 순간, 고자질쟁이란 꼬리표만 하나 더 달고, 나를 대하는 애들의 태도는 눈에 띄게 사나워질 거야. 그래서 나는 『피쉬 스토리』만 들고 학교를 나왔다. 교과서는 1권도 안 챙겼다. 내 앞에 펼쳐진 문제에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케케묵은 이론 따위는 필요 없어! 앞으로 온몸으로 부딪쳐야 할 진짜 세상에선 어차피 호신용으로도 못 쓸걸? 
  아마 며칠 동안은 내가 사라진 줄도 모를 거야. 어차피 나는 유령이거든. 혹시나 담임이 빈자리를 보고 이유를 묻더라도 안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두 눈이 똥그래진 애들이, 우리 반에 ‘기린’이란 이름을 가진 애가 있기는 했냐고 되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개를 들어 맨드라미 화단을 바라본다. 분홍, 하양, 노랑이 어우러져 예쁘게 춤을 춘다. ‘불꽃 맨드라미’라고도 불리는 ‘촛불 맨드라미’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자라나는 모양이 사랑스럽다. 엄마가 살아 있을 때 참 좋아했는데… 그래서 가게 이름도 ‘맨드라미 꽃집’이라고 지었는걸. 엄마… 속으로 부르기만 해도 목이 멘다. 할머니 대신 엄마가 살았어야 했어! 우리 엄마였다면, 할머니처럼 저렇게 힘없이 무너졌을 리 없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에 매달려 봤자 시간 낭비일 뿐이다. 걸핏하면 출생의 비밀, 기억 상실, 불륜과 재벌 3세를 버무려서 회오리 감자처럼 배배 꼬아 놓은 막장 드라마는 다 가짜다. 분명히 돌아가신 줄 알았던 부모님이 알고 보면 기억만 잃은 채 어딘가에 살고 있다가 다시 돌아오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은 현실에서 거의 안 일어난다. 우리 아빠가 피곤해서 졸음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기 때문에, 음모나 배신이 발붙일 구석도 없다. 복수도 마찬가지다. 아빠가 들이받은 버스에서 다친 사람들에게 사과할 사람은 우리인걸. 안타깝지만, 우리가 겪은 일은 세상의 수많은 가족에게 매일 일어나는 평범한 불행 중 하나일 뿐이다. 슬프게도, 어쩌면 그것도 사소한 축에 낄지도 모른다. 알아, 나도 충분히 잘 알거든? 그래도 나는 엄청나게 불행한걸. 숨쉬기조차 힘이 들고, 이 상황이 질리도록 싫어! 눈앞의 세상을 다 지우고만 싶은 나는, 언젠가 ‘뿅’하고 UFO가 나타나 날 데려가 주길 기다린다. 아니면 SF 영화에서처럼 빨간불이 깜빡이는 비상 탈출 버튼이 내 팔뚝에 생겨나거나. 그럼 1초도 고민 없이 바로 누를 거야!
  이제 보니 내가 미적거리는 이유가 그거다. 지금이 정말 떠날 때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 오후에 유리에게서 가까스로 풀려났을 때는 ‘오늘이 그날’이라는 느낌이 하늘의 뜻처럼 분명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맨드라미 앞에 넋을 놓고 앉은 할머니를 보자 갖가지 생각이 뒤엉키면서 차마 발길이 안 떨어지는걸. 폭발하는 화산처럼 목으로 울컥 치미는 뜨거운 숨을 꿀꺽 삼켜 보지만, 나도 모르게 할머니 옆에 가방을 세우고 그 위에 앉고 만다.
  튼튼하고 각이 져서인지 가방은 의자로 쓰기로도 괜찮은 편이다. 발을 모으고 다리를 쭉 펴면서 후드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두툼한 지갑에 손가락이 닿자 배시시 웃음이 나고 마음이 든든하다. 체코로 가는 비행기 값에 더해, 프라하에서 1주일 정도 생활하기에 충분한 돈이 내 품에 있다. 그 사이에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찾을 수 있을 거야. 체코는 한국보다 물가가 싸니까, 일을 구하는데 혹시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 아껴 쓰면 좀 더 버틸 수 있을 거야. 고마워, 오빠. 덕분이야! 오빠는 자기를 위해서는 옷 한 벌을 살 돈도 아끼면서 내게는 넘칠 정도로 넉넉하게 용돈을 주거든.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새로 좀 사 입으라고 못되게 말을 해도, 체격이 비슷하다며 아빠의 청남방과 청바지를 입고 나서며 환하게 웃는걸. 자기 손 안에 우리 전 재산이 있는데도 잔머리조차 굴릴 줄 모르니, 사람만 좋아서 탈이다. 아빠도 그랬는데… 탄탄한 어깨 위로 나를 번쩍 들어올리던, 우리 아빠가 보고 싶다.
 
  감상은 그만. 긴장한 탓인지 빳빳이 굳은 목을 돌리면서 대문을 쳐다본다. 페인트가 잔뜩 벗겨진 손잡이까지, 평소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대문이 오늘따라 낯설고 멀어 보인다. 엄마, 아빠… 앞날이 가려진, 새로운 세계로 건너가는 순간엔 원래 이렇게 설레면서도 두려운 거예요? 이제 저 문을 열면 나,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요. 머릿속에서 수천 번이나 그려 봤지만, 지금 이 순간은 상상 속 어느 때와도 다르다. 아, 이러다간 이대로 다시 눌러앉을지도 몰라. 이젠 정말 가야 해. 점퍼에서 손을 빼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담을 넘어가는 도둑이라도 본 것처럼 새된 소리를 지른다.
  “도망가유, 도망가!”
  앙상한 목소리가 맨드라미 화단을 휘저으며 내 귓가로 파고든다. 순간, 할머니가 자기를 두고 도망친다며 나를 탓하는 줄 알았다. 한두 번 듣는 말도 아닌데, 오늘따라 다르게 느껴지는걸. 변명할 필요도 하나 없는데, 딱히 할머니한테 들으란 것도 아니면서 나는 도로 주저앉아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나는 도망치는 게 아니야. 오빠를 버리고, 오빠한테 할머니를 빚처럼 떠넘기고 도망가는 게 아니거든?”
  말을 하고 나니, 오히려 기분이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다. 눈동자를 살펴봐도 맞춘 지 오래된 안경처럼 흐리멍덩할 뿐이다. 아마 우연의 일치겠지. 나는 그런 나쁜 년이 아니거든? 저희들끼리 마구 시소를 타는 좌심방과 우심방을 토닥토닥하며 일어서 걸음을 뗀다. 그러자 엉뚱하게도 할머니가 이번에는 내 두 다리를 붙들더니 엉엉 울어 버린다.
  “어무이, 도망가유, 도망가! 어무이, 어무이!”
  정체 모를 벌레가 등을 기어갈 때처럼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가방을 쥔 손아귀에 별안간 힘이 풀려서, 할 수 없이 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가방에 앉아 본다. 할머니의 쭈글쭈글하고 거친 볼살을 타고 꾀죄죄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왜 나한테 엄마라는 거야? 이러면 꼭 내가 아이를 두고 떠나는 몹쓸 여자 같거든? 할머니야말로 우리는 내버리고 혼자만 편하자고 정신을 놓았으면서 이제 와서 왜 그러는 거야!” 
  꺼이꺼이, 한풀이라도 하듯 갈수록 높아지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니, 까닭 없는 슬픔이 밀려들면서 새삼스레 할머니가 미워져 눈물이 우박처럼 떨어진다. 할머니, 도대체 지금 어떤 기억 속을 헤매고 있는 거야? 

  반년쯤 전부터,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갑자기 저런 소리를 질렀다. 처음에는 오빠도 나도 깜짝 놀라 달려가서 할머니를 붙잡고, 껴안고, 이마도 짚어 봤다. 하지만 아무리 물어도, 달래도 할머니는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와 비밀이라며 새끼손가락이라도 걸었는지 다른 말은 입 밖으로도 안 냈다. 오빠와 머리를 맞댄 결과, 전쟁 중에 돌아가셨다는 할머니의 엄마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했을 뿐이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말인데도, 오늘따라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나를 새록새록 아프게 한다. 기린, 너 정말 도망치는 거 아니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사실은 도망치는 거 맞는걸.
  “아니야, 아니라고! 난 혼자만 잘 살겠다고 도망치는 못된 년이 아니거든?”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믿어 달라며, 나는 있는 힘껏 소리친다. 내 마음은 갓 태어난 아가만큼이나 순수하다는 걸 온몸으로 시위하며 할머니를 노려본다. 어느새 노을이 내리는 저녁 하늘로 메아리치며 날아가는 내 목소리에, 아이처럼 훌쩍거리며 두 손으로 눈을 비비던 할머니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다. 눈물에 잠긴 눈동자가 별똥별처럼 번뜩인 것도 같다. 
  “할머니, 정신 차렸어?”
  “…….”
  “혹시 듣고 있으면서 아닌 척해도 괜찮아… 아니, 어쩌면 그게 나을지도 모르는걸. 누구에게든 한 번은 털어놓고 싶었거든. 들어도 기억 못할 사람이라면, 더 좋아.”
  “…….”
  “날 탓하지 마. 할머니를 버리고 가는 게 아니거든? 난, 정말 가야 해. 지금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거야.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가야 해.”
  “…….”
  “나라도 떠나는 게, 오빠에게도 나을 걸?”
  “…….”
  “차라리 할머니처럼 내가 누구인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면, 200도쯤 확 돌아 버리면 나도 편할 거 같아. 지금 이대로는 딱 죽고만 싶거든.”
  “…….”
  “무슨 말인지 모르지? 나 왕따야. 내가 다른 애들과 다르다는 건 나도 알아. 그렇다고 이상한 노래를 듣고, 욕투성이 쪽지를 받고, 책에 낙서를 당해야 할 만큼 잘못한 건 없거든? 그냥 집이 가난한데 책을 좋아하고 다른 친구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게 다 모여서 나란 사람이 그래, 조금 다르다고 해서, 자기들의 눈에 거슬린다고 못살게 괴롭히면 나는 어떡해!”

  이야기의 끈을 풀자 말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나는 법정에서 증언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할머니에게 낱낱이 일러바친다. 살인 미수가 얼마나 나쁜 년인지, 오늘 유리에게 끌려가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괜찮은 척하지만 문득문득 심장이 사라져 버릴 것처럼 얼마나 쪼그라드는지, 언제나 모든 상황이 예상보다도 더 무서운지… 아무도 모르는걸. 신들린 사람처럼 계속 떠들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소리 내 울고 있다. 할머니는 내가 아직도 엄마로 보이는지, 거의 통곡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따라서 울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더 이상은 밉지 않다.

  루이스 세풀베다, 이사카 코타로, 빅토르 위고처럼 멋대로 친구로 삼은 작가들 말고 내 옆에서 따끈한 숨을 내쉬는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건, 부모님의 사고 이후 처음이다. 오랫동안 걸어 둔 탓에 잔뜩 녹슬어 버린 자물쇠를 힘껏 후려치자, 내 안에 켜켜이 쌓였던 아픔의 먼지가 흩날리면서 어디선가 후련한 바람이 불어온다. 애타게 찾아 헤매던 오아시스 앞에서, 나는 그만 펑펑 울어 버리고 만다. 빨강 맨드라미가 흐려져 잎의 구분이 사라지고, 하나의 작은 불꽃처럼 보인다. 하양 맨드라미도, 노랑 맨드라미도… 화단에는 어느새 작은 촛불이 수없이 켜져 넘실거린다. 제 몸을 밝혀 나를 위로하는 모습이 기특하고도 정겹다.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한참을 실컷 울고 나니, 차츰 저절로 슬픔이 잦아든다. 
  “할머니가 멀쩡한 어른이라면, 아마 오늘처럼 솔직할 수는 없었을 거야. 들어 줘서 고마워, 할머니.”
  “…….”


  1년 전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나는 뼛속들이 무서웠다.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간 할머니는 엉망이 된 시신들을 확인하자마자 쓰러졌고, 오빠와 나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응급실에 누운 할머니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3일 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할머니가 또다시 쓰러졌을 때, 나는 혼자 남겨졌다. 치명상을 입은 코끼리처럼 상처 입은 얼굴로 병원을 나서던 오빠의 뒷모습을 보고도 차마 따라나서지 못한 이유는,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나를 뿌리칠 것만 같은, 오빠가 스스로 돌아오기 전에는 결코 잡아 둘 수 없을 것만 같은, 슬픈 예감 때문이었다. 그날 내가 제일 두려웠던 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가족의 죽음이 아니라 이대로 할머니마저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오빠가 내게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우리의 ‘현재’였다. 산 사람은 그저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날 나는 본능적으로 깨닫고 말았다.

  그나저나 내가 프라하로 가고 나면 오빠는 어떡해…? 누구에게나 바르게 서기 위해 필요한, 세상에 단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내겐 오빠다. 서글프게도 오빠에겐 그런 사람이 없다. 그래도 이대로 징징거리며 오빠의 다리를 붙들고 늘어지기보다는 내 길을 찾아 떠나는 게 서로를 위해 백 번 나은걸.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얘길 털어놓기라도 한다면, 지금도 170%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오빠에게 짐이 될 뿐이야. 나라도 없다면, 오빠에겐 버겁기만 할 가족이 하나라도 줄어든다면, 지금보단 나을 거야. 할머니만으로도 오빠의 어깨는 충분히 무거운걸.
  가자! 무언가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이 될 때는, 일단 하고 보는 거야!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니까 이만큼 흔들리는 거거든. 
 
  “할머니, 내가 왜 가야 하는지 이제 알겠어? 할머니나 오빠가 싫어서가 아닌걸. 우리 모두를 위해서야. 부디… 건강하세요!”
  터진 소화전처럼 막을 길 없는 감정이 북받쳐서, 나는 할머니를 힘껏 한 번 끌어안고는 가방을 들고 대문으로 달려간다. 그럼 안녕, 할머니! 맨드라미도 안녕! 안녕… 오빠.






 

 

* 촛불 맨드라미 사진의 사용을 허락해 주신 여현교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촛불 맨드라미 화단의 삽화를 그려 주신 이혜승 작가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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