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16. 하수 :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다 


 

 



 

 

  내가 딱 그랬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쐈다. 스스로 날아든 건지 뭐에 떠밀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 그저 얼떨떨하다. 조금 전까지 나는 낮은 담벼락에 몸을 숨기고, 작은 마당에서 소곤소곤 새어 나오는 비밀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도대체 내게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았을까?


  내 남자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나는 그곳을 향해 대학로를 천천히 걸었다. 운의 집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10분 거리인 낙산 중턱에 있다고 친절한 민우 씨가 말했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아르코미술관 옆길로 나가 간판이 우아한 모차르트 카페를 지나 골목 끝까지 쭉 직진하다가 갈림길에서 우회전, 조금 걷다가 마로니에 소극장을 끼고 좌회전해서 낙산공원 쪽으로 슬슬 오르기만 하면 됐다. 가는 길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어 덤으로 눈까지 정화했다는 말씀! ‘이화동 벽화마을’이란 표지판을 보자, 한국의 ‘몽마르트르’라며 이곳을 소개한 인터넷 뉴스가 어렴풋이 기억났다. 낙산은 낙타 등을 닮아서 ‘낙타산’이라고도 불린다고. 에휴, 가방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혁과 함께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기자기한 골목 분위기에 빠져 이끌리듯 언덕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노을이 느릿느릿 번지기 시작했다. 노르스름한 자연의 물감이 더해진, 저녁 향이 감도는 동네는 내게 집을 생각나게 했다. 엄마표 얼큰한 김칫국이 기다리는 우리집, 그래도 아직 돌아가고 싶단 마음은 안 드는 곳.


  운의 집은 낙산전시관 아래 첫 집이었다. 회색 콘크리트로 대충 마무리된 그 집은, 친절한 민우 씨의 설명대로 대문 쪽 벽에만 초록빛 풀밭 위로 분홍과 보라가 어우러진 맨드라미가 그려져 있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맨드라미 사이로 나비까지 날고 있었다. 그려진 지 오래돼서인지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을 타서인지 4마리는 뭉개지고 이지러져서 몸통만 겨우 남았지만, 검은 테두리에 밝은 파랑 점이 찍힌 노란 나비 2마리만은 고흐가 막 붓을 뗀 듯 꿈틀거렸다.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며, 나비가 내게 속삭였다. 이제 모두 다 잘될 거라고.
  나비의 속삭임에 취해 아무 생각 없이 운의 집 초인종을 누르려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운이 나를 눈치채고 가방을 들고 내빼면 안 되니까. 나는 대문 말고 다른 출구가 또 있는지 살피려고 전시관 계단 위로 올라가 집 주변을 훑어봤다. 작은 마당 옆으로 방 3칸이 일직선으로 붙어 있고, 담이 따로 없이 집이 뒷집에 바로 붙은 단순한 구조라서 운이 달아날 구멍은 없었다. 마당 역시 높다란 시멘트 벽에 막혔고. 좋아! 나는 다시 맨드라미집으로 살그머니 다가갔다. 도둑놈의 집이니, 무턱대고 들이닥치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다니까? 그래서 먼저 우편함부터 살며시 열어 봤다. 고지서가 2장 들어 있는데, 받는 사람은 하나같이 ‘황귀녀’였다. 누굴까? 부모님의 이름치고는 촌티가 풀풀 났다. 살그머니 제자리에 넣고 까치발을 들어 대문 너머로 마당을 살피려다, 조각상처럼 굳고 말았다. 마당에 누가 있어! 헐떡이는 가슴에 손을 대고 대문 틈 사이로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한 사람은 소꿉장난에나 쓰일 것 같은 작은 의자에, 다른 사람은 네모난 상자 위에 앉았다. 어딘지 익숙한 느낌에 상자를 찬찬히 뜯어보니, 세상에! 내 가방이다! 잃어버린 알프스가 거기 있었다. 찾았다!
  
  대문 앞에서 한참이나 서성거렸지만, 나는 여전히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의 세계로 불쑥 뛰어들기가 어쩐지 망설여졌다. 알프스에 엉덩이를 대고 앉은 단발머리 여자애나, 이상하리만치 낮은 목욕탕 의자에 앉아 구불구불한 흰 머리를 풀어 헤친 할머니, 둘 다 그다지 현실적이진 않은 분위기라서. 서늘하게 가라앉는 저녁 공기의 흐름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아직 추워서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일단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가방 위의 여자애는 말끝마다 ‘오빠’를 붙였다. 운의 여동생일까? 동생에게 주려고 운이 가방을 훔쳤던 걸까? 괴짜 마녀처럼 파마가 다 풀려 머리가 하늘로 뻗친 할머니가 우편물의 주인인 황귀녀 씨? 도망쳐요? 그런 알 수 없는 소리를 치면서 운 거 빼곤 워낙에 말이 없어서 운의 할머니가 아닐까 추측만 했을 뿐. 여동생은 어디론가 떠날 사람 같은 분위기와는 안 어울리게 맨드라미 얘기, 어둑한 화단에 빼곡한 꽃도 맨드라미였나 보다, 운이 얘기, 가방 얘기 등을 종알대더니, 어느 순간 목에 가뭄이라도 든 것처럼 잔뜩 마른 목소리로 겨우겨우 한마디씩 힘겹게 이어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고백이었다. 
  쪽지를 돌리고, 노래를 지어 부르고, 욕을 퍼붓고… 고등학교 때 우리 반 왕따가 당하던 것보다 잔인하긴 하지만, 무인도처럼 외톨이로 만들어서 무력감과 자기 비하에 빠지게 만든다는 본질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었다. 내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상처만 남기는 왕따를 만드는 애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하긴 대학이라는 조금 넓은 세계에 나온 지금 돌아보면, 왕따를 시키는 애들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학교’와 ‘공부’라는 좁은 틀에 갇혀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손쉽고도 당연한 비교 대상은 또래 집단이니까. 여자애들에겐 생리, 남자애들에겐 몽정이 일어나면서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넘치는 성적 호기심과 변화무쌍한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불끈불끈 치밀어 사람을 못 견디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이유 없이 울기도 하고, 구르는 낙엽을 보고 깔깔거리기도 하고, 누가 뭐라고 한마디라도 참견하면 화부터 치밀어 오른다니까?
  그야말로 불안한 청춘이다. 부글부글 끓는 마그마가 따로 없다. 불을 줄인답시고 무턱대고 장작을 빼면 금세 차갑게 굳어 버리니 그럴 수도 없고, 제때 재까닥재까닥 젓지 않으면 끓어 넘치거나 눌어붙으니 눈을 뗄 수도 없다. 본인도, 지켜보는 사람도 당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태라고나 할까? 괜스레 질풍노도, 미친 듯이 빠르게 부는 바람과 겁나게 소용돌이치는 물결의 시기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생각할수록 더 까마득하다. 이런 폭풍우 같은 변화와 그에 따라오는 혼란이 매일 부대끼는 또래들과의 동질감을 추구하게 만든다. 내가 친구들과 같지 않으면 견딜 수 없고, 반대로 누군가 우리와 달라도 참을 수가 없다. 뭔가 튀는 애가 주변에 있으면 이유 없이도 짜증이 난다. 그 애가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다름의 존재 자체가 안 그래도 흔들리는 내 정체성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사춘기가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누가 봐도 분명한 가해자인데도, 도대체 그때 왜 그렇게 누군가를 미워했는지, 얼마나 끔찍하게 괴롭혔는지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가끔은 기억조차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게 아닐까?


  그 시절에 내가 왕따 문제에 대해, 지금처럼 어른인 체하며 팔짱을 끼고 제3자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는 없었다. 나는 또래와 다르지 않은 보통의 여학생이었고, 무엇보다 그때 그곳은 내가 온전히 속해 있는, 내 하루의 시계가 돌아가는 세상의 전부였으니까. 그저 그때의 나는, 사람을 샌드백처럼 때리는 애들도 끽소리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답답한 애들도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했다. 괜히 나섰다가 나까지 싸잡아 괴롭힘을 당할까 두려워서가 아니다. 그냥, 관심이 없었다. 다행히도 눈만 뜨면 싸우는 부모님과의 생활에서 익힌 생존 능력 덕에, 나는 무슨 일이든 그림이나 영화를 보듯 거리를 두고 반쯤 귀를 닫고 살 수 있었다. 그래도 눈이 달려 있어 아예 안 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안 그럼 내가 부딪치고 말 테니까, 이따금 심한 꼴을 당하는 왕따를 보며 그 애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해 보긴 했다. 학교 친구 몇몇이, 과연 이런 애들을 친구라고 해야 할까, 빙 둘러서서 나를 때린다면 맞으니 당연히 아플 테지만 더 무서운 건 저 많은 애들 중에서 이 말도 안 되는 폭력을 말리는 내 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일 거라고… 정말 안쓰럽게도, 그렇기 때문에 나의 어떤 부분이 이 모든 불행을 불러온 건 아닌지, 나는 이런 불의를 당해도 싸다는 생각을 서서히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오랫동안 왕따를 당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자체적으로 온기를 내도록 인간의 영혼 속에 저장된, 아주 섬세한 회로가 영원히 고장이 나 버리는 거다. 대학 친구 중에 고등학교 때 당한 왕따 경험으로 여전히 힘겨워 하는 아이가 있었다. 가끔씩 야위고 지친 얼굴로 왼쪽 팔목에 유난히 두꺼운 팔찌를 겹겹이 두르고 강의에 나오던 우리는, 언젠가 술에 잔뜩 취한 채 내게 털어놓았다. 
  “모두가 너는 죄인이라고 돌을 던지는데도, 나는 죄인이 아니라는 믿음을 지킬 사람은 순교한 성인밖에 없을 거야.”
  왕따를 당하던 그때로 돌아간 듯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먹이는 우리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중․고등학교 때 일상적으로 지나치던 왕따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굴은 다 달라도 외로움에 지쳐 슬픔이 가득하던 눈빛은 하나같았다. 칼로 자해한 흔적을 가리려던 팔찌 수가 점점 늘어나다가 연락이 끊어져 버린 우리. 오늘 이 순간까지 나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 그 아이를 왜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가방을 찾으면, 이 일을 해결하고 나면 우리의 소식을 알아봐야겠다.
 
  여동생의 울음 섞인 목소리는 조금씩 훌쩍거림으로 변하더니, 곧 처음의 차분한 음빛깔로 돌아왔다. 애써 담담해지려는 노력이 온몸에서 광선처럼 뿜어져 나왔다. 굳센 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부터 바위였던 게 아니라, 작은 나뭇가지가 세월이 흐르면서 흙에 눌리고 열을 받아 화석이 되어 가는 단단함이랄까? 그래 봤자 고작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데도 그랬다. 지하철에서 운을 처음 봤을 때 받았던 특별함과 비슷했다. 이 남매는 얼마나 많은 비와 눈과 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걸까.
  여전히, 운의 할머니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침묵은 금’이라는 옛말을 따르며 말을 아낀다고 보기에도 조금 지나쳤다. 상처받은 손녀를 다독이거나 애처롭게 쳐다보기는커녕 앉은 자세 그대로 맨드라미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보통의 어른들은,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을 예로 들자면, 언제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끝없이 하려고 대화를 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알겠냐고, 왜 대답이 없냐고,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아니 생각이란 걸 하기는 하느냐며 묻고 따지는데, 그럴 땐 재봉틀을 가져와 입술에 꼼꼼하게 박음질해 주고 싶을 정도로 열을 받는다. 홈질이나 시침질로는 어림없다! 그 정도로는 내가 굳은 혀를 풀고 속마음을 나누고 싶어질 때까지 결코 기다리지도, 진심으로 들어 주지도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귀녀 씨는, 내 할머니도 아니니 이제부턴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할머니들도 할머니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말 말고 자기 이름이란 게 있는 사람이니까, 내내 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숨소리조차 죽였다. 그러다 문득, 함께 울어 주었다. 누군가를 위로하기에는,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녀는 의자가 낮은 탓에 땅바닥에 붙다시피 불편하게 앉아서, 흙장난에나 어울릴 법한 작은 화단에 심긴 꽃들과 슬픔이라도 나누듯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등이 약간 오르내린 게 야트막한 한숨을 내쉰 듯도 하고, 퀭한 눈가에 물기가 어려 번들거리는 듯도 했다. 내가 나도 모르게 숨을 쉬어서 그녀가 움직인다고 느꼈거나, 껌뻑거리지도 않고 멍하게 뜨인 그녀의 눈에 찬 습기를 눈물로 착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때쯤 나는 이미 간절히 찾던 알프스가 작은 대문 너머에 있다는 사실도 잊고, 그들의 이야기를 방해할 엄두도 안 났다. 그때, 일이 벌어졌다!
  잠시 침묵에 잠겼던 여동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내가 있는 쪽으로 바삐 걸어오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달아나려 했지만 다리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애가 대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 나는 봤다. 귀녀 씨가 소리도 없이 일어나 손녀의 뒤로 쏜살같이 다가서는 모습을! 지금까지 꼼짝 않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동시에 누가 슬그머니 떠밀기라도 한 듯 자연스레 내 몸이 움직였다. 나는 그야말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여동생의 앞을 내가 막아서고 있었다. 그 애는 나의 느닷없는 등장에 깜짝 놀라 한 발짝 물러서다가, 뒤에 바짝 다가서 있던 귀녀 씨에게 부딪쳐 잠시 휘청거렸다. 우리 셋 다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던 어색한 순간이 지나고, 지금 운의 여동생이 나에게 묻고 있다.
  “누구, 세요?”

  여동생도 귀녀 씨도 눈이 접시꽃처럼 휘둥그레졌지만, 둘은 앞으로도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지금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나라고! 그래도 일을 저지른 이상, 무슨 말인가는 해야 하니까.
  “나, 나는, 운이 여자친구예요. 할머니, 처음 뵙겠습니다.”
  이틀 동안의 가출이 내 안에 고이 잠들어 있던 여배우라도 흔들어 깨운 걸까? 거짓말은 그저 처음이 어려울 뿐이고, 이제는 뚫린 입이라고 즉석에서 이야기가 술술 터져 나온다. 
  “여자친구? 오빠한테 그런 말 못 들었는데, 요?”
  “운이 여동생이죠? 난 얘기 많이 들었어요.”
  친절한 민우 씨에게서 정보를 얻는데 한몫한 살인 미소를 날리지만, 여동생도 할머니도 녀석처럼 속을지는 의문이다. 얼른 치고 빠지는 수밖에 없다고!
  “참, 내가 어제 운이한테 가방을 빌려줬는데, 갑자기 여행을 가게 돼서 다시 받으러 왔어요. 아, 지금 들고 있는 그 가방 말이에요.”
  괜히 두 사람에게 내 말에 대해 생각이란 걸 하거나, 이것저것 물어볼 기회를 줄 필요는 없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모든 의문형을 무시하고 내가 할 말만 쏙쏙 골라서 한다. 나는 알프스를 되찾으면 되고, 저 아이는 가방이 없으면 지금 당장 집을 나갈 수는 없을 테니, 어쩌면 운에게도 은혜를 베푸는 셈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니까? 저 여자애가 굳이 집을 나갈 작정이라면 여행 가방이 아니라 책가방이나 쓰레기봉투에라도 짐을 싸서 나가겠지만, 이 자리를 떠난 다음에야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니 상관없다는 말씀!
  둘 다 놀란 토끼처럼 눈만 깜빡일 뿐 대답이 없다. 다만 가방을 쥔 여동생의 손에 핏줄이 도드라지며, 빼앗기기 싫다는 듯 잔뜩 힘을 주는 게 보인다. 반대로 귀녀 씨는 갑자기 해결사라도 만난 사람처럼 고마운 눈빛으로 내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찾는 듯하다. 손녀의 가출을 막아준 일에 대한 감사 인사라면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속으로 혼자 상상하고 대답하면서, 나는 더 과감하게 나가기로 한다.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니까?
  “저기, 미안한데요, 내가 짐을 싸려면 좀 바빠서요. 지금 당장 가방을 돌려받았으면 좋겠어요.”
  “아, 네. 가방 비워서 가져다 드릴게요.”
  깔끔한 말과는 달리 여자애는 여전히 자리에 서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미적거린다. 금방이라도 운이 들이닥쳐 나를 가로막을까 조마조마한데다, 이 사람들이 나를 의심하는 건 아닌가 싶어 재빨리 한마디를 덧붙여 본다. 이래서 범인이 현장에 다시 가고, 도둑이 제 발 저리나 보다. 죄지은 자가 시달리는, 끊임없는 불안의 원인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자신의 양심이 아닐까?
  “거기 가방 손잡이에 S자 있잖아요, 봤어요? 내 이름이 은하수에요. 가방 산 날, 기념으로 이니셜을 새겼거든요. 이 가방, 참 예쁘지 않아요?”
  심장은 사시나무 떨 듯 후들후들하지만, 대담하게도 나는 앙큼한 미소까지 지어 보인다. 다시 생각하니 쓸데없이 이름을 말해 버렸다 싶기도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어쩌겠어. 
  “아, 네… 은하수의 S였구나.”
  동생은 쌀국수에 딸려 나오는 고수풀이라도 씹은 듯 여전히 떨떠름해 보이지만, 여자친구란 사람이 집까지 알고 찾아와서 자기 이니셜이 새겨진 가방을 달라고 하니 안 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 고민하는 얼굴이다. 결국 무거운 걸음으로 가방을 끌고 집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뒤에 나온다. 아마 들어가자마자 손잡이의 S자부터 확인했을 거고. 인간이란 그런 존재니까. 내 품으로 돌아온 알프스는 속이 텅 비었는지 눈물이 날 정도로 가볍다. 도대체 이 안에 있던 화장품과 겨울 코트는 모조리 어디로 사라진 거야! 전부 경찰서로 끌고 가기 전에 내 물건을 도로 채워 놓으라고 악다구니라도 치고 싶다. 하지만 그래 봤자 찾을 수 없을 테니까, 알프스라도 온전히 돌아온 게 불행 중 다행이니까, 혀에 힘을 주고 참는다. 게다가 여동생은 가방이 훔친 물건이란 사실을 전혀 모르는 눈치야. 애꿎은 사람까지 잡지는 말자고, 하. 근데… 내 착각일까? 운의 여동생은 가출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데도, 어쩐지 한결 속시원한 표정이다?

  “다음에 운이랑 같이 한번 봐요. 귀, 아니 할머니! 행복하세요.”
  하마터면 귀녀 씨라고 할 뻔했다. 이 가족을 보고 나니, 나의 귀녀 씨인 우리 할머니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나는 재빨리 가방을 들고 뒤돌아서 앞만 보며 죽어라 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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