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천 교수, 그의 연구실에서.

“안녕하세요.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진화생물학, 사회생물학, 생태학을 전공으로 하는 과학자 최재천(64)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종합과학관 319호에 위치한 행동생태학 연구실. 학생들이 연구하고 있는 방과 행동생태학 교수들의 사무실 옆으로 최재천 교수의 사무실이 있다. 방의 삼면이 책으로 빼곡한 이곳은 사무실이라기보다 책방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학생들이 책을 빌리고 붙여놓은 메모지들이 누구라도 와서 책을 읽을 수 있게 열어놓은 문을 통해 제일 먼저 반겨준다. 비록 최 교수 자신은 한쪽 벽만을 간신히 차지하고 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끝이 뭉툭해진 짙은 초록색 연필을 쥐고서, 연필에서 시작된 글자를 과학으로 완성하기 위해 고민에 잠겨있을 뿐이다.

보통 과학자라고 하면 보안경을 끼고 연구실에서 실험하거나, 숲 속을 돌아다니며 식물과 동물을 관찰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최 교수도 그랬다. 젊은 시절 그는 미국 펜시베니아주립대학교의 연구실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있기도 했고, 스승 에드워드 윌슨 교수를 따라 밀림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대중들에게 과학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알면 사랑한다”는 그의 철학은 사람들에게 과학을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했다.

“과학은 어떻게 보면 인문학보다 돈이 필요한 분야에요. 실험을 해야 하고, 때로는 어마어마한 장비가 필요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떤 학문보다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해요.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하지 못하면 과학을 이해할 수 없고 좋아하지 못하게 되니까요. 과학에 대해 모르는데 도와줄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과학을 열심히 알리는 일이 저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최재천 교수는 책 《개미 제국의 발견》으로 도서 부문에서 제1회 과학문화상을 수상했다. 과학문화상이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TV, 라디오, 신문, 도서 등 대중매체를 통하여 과학 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 온 최 교수만큼 이 상에 적합한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된다.

국립생태원 원장으로 있던 2014년에는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을 초청하여 강연을 열기도 했고,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인터뷰를 진행하여 사람들이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에게 궁금했던 질문들을 대신 던져주기도 했다. 이처럼 해외 저명한 과학자들과 만남뿐만 아니라, 과학과 인문을 주제로 한 강연을 부탁받으면 거절하는 일 없이 어디든 달려가 과학을 알린다. 또 다양한 행사를 열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과학을 주제로 대화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학을 위한 일에서라면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최 교수를 사람들은 치열하게 글 쓰는 과학자라 말한다. 그가 출판한 책은 지금까지 70여 권. 해외 과학 도서를 번역한 책 10권 정도와 그가 집필한 60여 권의 책은 과학을 알리는 활동에 기본이 되고 있다.

“책으로 사람들에게 과학을 이야기하는 건, 저에게 강연과 여러 활동을 하는데 기본적인 스크립트(script)가 돼요. 기본적인 스크립트 없이 무언가를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중요하죠.”

책은 또 다른 의미로 그에게 중요하다. “과학이 딱딱하지만은 않거든요. 책을 통한 과학은 낭만적일 수 있어요. 상대에게 지식이나 정보,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건 시적인 글쓰기뿐만 아니라 과학적 글쓰기를 통해서도 가능하기 때문이죠. 언젠가 그런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과학으로 시를 쓰리라.”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면 과학을 시로 표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최 교수. 그는 자신을 시인의 마음을 가진 과학자라 자처한다. 알면 사랑할 수 있기에 과학적 글쓰기로 사람들에게 낭만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그의 마음은 언제나 열정적이다.

조선일보 칼럼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에서 우리는 그가 말한 과학적 낭만을 엿볼 수 있다. 2009년에 쓴 첫 칼럼 ‘번식을 자제하는 생물, 한국인’을 시작으로 동물들의 행동과 사회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일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물과 다를 바 없는, 때로는 동물보다 못한 인간의 모습을 비판하며 최 교수는 대중과 과학으로 소통한다.

“신문에 글을 쓰시는 분들이 대개 인문, 사회 분야에 해당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의 관점은 자연과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달라요. 우리는 좀 더 사회와 세상의 본질을 보죠. 사회 문제를 물리학적으로 분석한다 던 지, 이런 게 세상을 보는 관점에 새로운 접근이 될 수 있는 거죠. 사회를 과학적인 눈과 글로 봄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합리적인 시각을 제시해 줄 수도 있고요. 독자들이 제 칼럼을 읽고 사회를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 최재천 교수, 그의 연구실 서재에서.

최 교수는 사람들이 과학을 통해 바라본 사회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익숙함을 통해 과학을 대하는 사회의 자세를 바꾸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정부는 지원은 하지 않으면서 노벨상과 같은 걸 참 많이 요구해요. 하지만 과학자들의 현실은 너무나 막막하거든요. 자식들의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연구도 못 하고 돈을 벌러 다녀야 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겠어요.”

과학자가 과학을 연구할 수 있는 일상. 그는 이 일상이 대한민국의 사회에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국가 경쟁력을 위해 과학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과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과학자가 연구할 수 있게 지원해달라고 하는 게 참 조심스러워요. 많은 사람이 힘든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과학은 분명히 우리의 삶에도, 우리나라에도 필요한 학문이고 분야거든요. 그러니 과학자가 과학을 하는 일상을 살 수만 있더라도 좋을 것 같아요.”

사람들을 위해, 과학자를 위해 과학을 대중화하는 일이 자신의 임무라는 최재천 교수. 과학을 통해 사회를 바라봄으로써, 과학을 함께 만드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게 그의 꿈이다. 그리고 꿈을 위해 그는 다시 연필을 잡는다. 과학을 담아낸 글자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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