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책을 쓴 작가, 즉 한 명의 사람과 세계를 만나는 것입니다.”

- <지금은 책과 연애중> p.53

8월 13일 저녁, 작가의 세계를 더 알아보기 위해 북티크 서교동점에서 그를 만났다. 작가의 단골 서점인 서교동 북티크는 책 읽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별도로 마련된 세미나실에선 독서모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리딩소년’이라는 필명과 감성적인 문체에 어울리게, 천성호 작가(28)는 편안하고 선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독서에세이 <지금은 책과 연애중>의 저자 천성호 씨는 1인 출판사의 대표이기도 하다. 2012년부터 북 리뷰 블로그를 운영해온 그는 6년간 써온 글을 엮어 책을 출판했다. 출판은 우리가 흔히 아는 대형출판사가 아닌, ‘리딩소년’이라는 자신의 1인 출판사를 통했다. 1인 출판물인 만큼 그의 책은 ‘독서’를 주제로 한 여타 책들과 사뭇 다르다. 그럼 작가이자 출판사 대표인 ‘책 읽는 소년’ 천성호의 세계를 살펴보자.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책과 연애중일 리딩소년
<지금은 책과 연애중>은 20대 청년의 독서경험을 담은 감성에세이(수필)다. 천 작가는 스물세 살에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군 제대 후 배움에 목말라 있던 그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독서 후에는 ‘리딩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에 서평을 남겼다. 당시 하루 12시간씩 일했던 그는 유일한 배움의 원천이 책이었다고 한다. 그는 출퇴근할 때, 업무 중 쉬는 시간에 짬짬이 독서를 했던 이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때라고 말한다. 꾸준히 책을 읽다보니 블로그에 쓴 서평만 300편이 훌쩍 넘었다. “글이 모이니 내 책을 출판하고 싶었어요. 집필을 결심하고 지난 해 12월 31일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습니다. 그리고 스물아홉이 되는 올해 1월 1일 공식적인 백수, 아니 1인 출판사 대표가 됐죠.(웃음)”

▲ 올해 6월 26일 출간된 천성호 작가의 <지금은 책과 연애중>
천 작가의 1인 출판사인 ‘리딩소년’을 통해 책을 발행했다. (사진=인터넷 교보문고)

누구나 한번쯤 신년 다이어리에 1년 목표로 ‘독서’를 썼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천 작가는 독서에 대한 사람들의 막연한 두려움을 자신감으로 바꿔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은 책과 연애중>을 통해 뒤늦게 책에 눈을 뜬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한다. 작가 특유의 시적인 문체와 경어체는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며 읽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독자 분들이 제 책을 읽고 난 다음 곧바로 다음 책을 펼 용기를 가졌으면 했어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책읽기에 대한 동기부여를 주고 싶었다는 천 작가다.

원하는 대로 1인 출판
일반 작가는 완성된 글을 출판사에 넘기고 몇 번의 교정·교열 과정만 거치면 일이 끝난다. 하지만 천 작가는 다르다. 원고 파일이 종이책이 되기까지 모든 단계를 혼자 책임져야 한다. 1인 출판사 대표이기 때문이다. 출판은 보통 기획출판과 독립출판으로 나뉜다. 출판사의 기획방향과 시장성에 맞는 도서를 생산하는 것이 기획출판이고, 개인 또는 소수 인원이 상대적으로 비주류에 속하는 책을 생산하는 것이 독립출판이다. 책을 소량만 인쇄하거나 작가가 출판사의 간섭 없이 출간을 원할 때 독립출판을 주로 이용한다. 1인 출판사는 독립출판의 범주에 속한 것으로, 말 그대로 책 출판의 모든 과정을 개인이 총괄하는 출판사를 말한다. 

천 작가도 기획출판을 생각지 않은 건 아니다. 출판사에 투고도 하고 담당자도 만났지만 출판사가 요구하는 책의 방향은 그의 생각과 맞지 않았다. 천 작가가 원한 장르는 독서에세이였다. 독자를 가르치는 투의 상업적인 책과 달리 그의 책은 특정 독서법을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과장도 없이 본인의 독서경험을 담백하게 풀어낸다. 총 3부로 나눠지는 그의 책은 독서방법에 대한 생각, 독서 후 감상을 기록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 그리고 ‘책’을 주제로 한 여러 편의 수필을 담았다. 독서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보다 사람들이 책을 읽으며 접할 만한 여러 가지 고민에 대해 친구처럼 조언해준다.

“책 읽기에 앞서 독서법에 대해 지나치게 고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책 읽기 방식 모두가 독서법이 될 수 있으니까요.” 
- <지금은 책과 연애중> p.85

▲8월 13일 저녁, 서울 서교동 북티크에서 만난 리딩소년 천성호 작가 (사진=김성신)

한 권의 책이 탄생하기까지
1인 출판, 이름은 낭만적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 일반 출판사에서 수십-수백여 명이 하는 일을 혼자 도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책이 출판되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초고가 완성되면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 여러 차례 교정·교열을 거치고 책 표지와 내지를 장식한다. 그 다음 인쇄소에서 제작이 완료되면 서점과 계약을 맺는다. 동시에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전달하거나 서점 관계자를 만나는 등 책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서점 매대와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빼곡히 선점하고 있는 대형출판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다. 출판사 수익과 직결된 정산업무와 세금신고도 빼놓을 수 없다. 출판 단계별로 분업이 돼 있는 대형출판사와 달리 1인 출판사 대표는 이 모든 일을 혼자 담당해야 한다. 

“처음엔 막막했죠. 뭘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 이번에도 그의 길을 밝혀준 건 바로 책이었다. 그는 가장 먼저 <내 작은 출판사 시작하기>라는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니 출판사 창업에 대한 큰 윤곽이 그려졌다. 다음으로 활용한 것이 블로그였다. 먼저 창업한 독립출판사의 포스팅을 참고해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1인 출판사 대표이자 저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기주 작가를 만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정말 감사한 분들이 많아요. 저한테도 이제 1인 출판에 관해 물어보시면 아는 만큼 다 알려드리죠. 안 알려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글쎄요. 이거 안 알려준다고 저한테 득 되는 게 있나요?”

항상 긍정적인 천 작가도 나름의 고충이 있지 않을까.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영업’이라고 답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에 책이 입고된 후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을 방문했다. 책을 확인하러 진열대에 간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서점에 입고된 수십 권의 책 중 매대에 진열된 것은 한 권뿐이었고, 그마저도 다른 책 밑에 깔려 반쯤 가려져 있었다. 다른 출판사의 책은 열 권씩 매대에 쌓여 있었고 옆에는 배너광고까지 세워져 있었다. 마케팅 비용이 들어간 덕이다. “그래도 서점 매니저님께 잘 말씀드리면 보기 좋게 진열해주세요. 다만 책이 입고된 전국의 서점을 혼자 돌아다녀야 하니까 힘든 거죠. 비용을 들여 할 수 있는 일을 못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독립출판사는 신생인 경우가 많고 도서를 주로 소량인쇄하기 때문에 초기자본으로 드는 비용과 제작단가가 높다. 일반적으로 초판을 2-3천 부 인쇄하는데, 초판이 완판돼야 손익분기점(한 기간의 매출액이 당해 기간의 총비용과 일치하는 점. 비용을 회수하기 위하여 필요한 매출액을 의미한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넘긴다고 한다. 게다가 종이책의 수요는 나날이 줄고 있어 소규모 출판사가 살아남기에 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대형출판사와 독립출판사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천 작가는 서점에서 독립출판 부스를 만들어주는 방법을 제안했다. 독립출판물을 따로 모아 판매하면 대형출판사와의 경쟁이 줄어 판매량도 늘고 독립출판사 간 선의의 경쟁도 유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국가 차원에서 독립출판물을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립·국영 도서관에서 책을 사들여 초판 판매율만 높여줘도 출판사 운영이 훨씬 수월하다고 한다.

활자중독이 된 리딩소년
지식을 얻는 방법이나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은 책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오늘날처럼 고도로 디지털화된 시대에 ‘활자중독’을 자처하는 소년에게 활자의 매력을 물었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지식의 원천”이라고 답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단어 하나만 입력해도 무수히 많은 정보가 쏟아지지만 그에겐 모두 얕은 지식으로 보였다. 정보의 양보다 깊이와 질을, 단순지식보다 지적 통찰력을 값지게 여기는 천 작가였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에게는 하나의 숲이 생겨난다.
...
그래서 오늘도 난 독서 나무를 심는다.
그 나무가 쌓이고 쌓여 숲이 되길 바라며.“
- <지금은 책과 연애중> p.261 

그는 독서를 멀리하는 우리 사회에 우려를 표했다. 특히 10-20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출생한 세대.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며 SNS 등 정보기술 활용에 능하다: 네이버 지식백과)가 책을 읽지 않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디지털 시대에 독서와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는 “활자가 사람을 더 능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디지털 기기와 시청각 매체를 통해 손쉽게 정보를 소비할 수 있다. 스스로 글을 읽고, 생각하고, 자신의 견해를 풀어내는 데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그는 청년들이 활자를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책 읽기가 익숙지 않다면 작가나 출판사 강연을 먼저 접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500명이 강연을 들었을 때, 그 중 10명이라도 독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나름 성공 아닌가요?”

▲ 천 작가는 독자와의 소통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책 출간 후 전국 각지에서 독자와의 만남인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위는 8월 19일 인천 검암역에서 8회차 북토크를 마친 후 찍은 단체 사진. 북토크에는 인천 독서모임 ‘잇-다’를 포함한 14명의 독자들이 참여했다. (사진=인천 독서모임 ‘잇-다’)

20대 소년의 멈추지 않는 도전
<지금은 책과 연애중>이 처음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2쇄가 발행됐다. 두 번째 책도 벌써 집필 중이다. 마찬가지로 천 작가 특유의 감성을 담은 에세이다. 책을 새로 찍는 것은 1인 출판사 입장에서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새 책을 만드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권당 제작단가가 높은 1인 출판사는 판매수량에 따라 손익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출판을 위해 직장까지 관둔 천 작가, 불안하진 않을까. “생각했던 만큼 잘 팔리지 않을 수도 있죠.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바늘구멍으로 빛을 보는 게 제 강점이거든요.(웃음)” 두 시간 가량의 인터뷰 내내 ‘리딩소년’이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누군가 그러던군요. ’젊으니까 도전하는 게 아니라, 도전하니까 젊은 것이다‘라고.”
<지금은 책과 연애중> p.259

천성호 작가의 꿈을 물었다. 그는 성공한 작가보다 꾸준히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어도, 다음 책을 계속 출판할 수 있는 작가가 되는 게 그의 바람이다. 닮고 싶은 사람으로는 1인 출판으로 입지를 다진 이기주 작가와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는 소설가 김영하 씨를 꼽았다. 나중엔 글을 쓰면서 자신의 독립책방까지 차리는 게 그의 목표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천 작가지만 그는 놀랄 만큼 여유로웠다. “경제적으로 힘이 들면 다른 일과 병행할 생각도 있어요. 한손은 현실에, 한손은 꿈에 걸쳐놓는 거죠. 꼭 양손으로 이 일을 붙잡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하는 걸 알고 그걸 포기하지만 않으면, 충분히 도전이자 성공 아닐까요?” 포기를 모르는, 때로는 지나치게 낙천적인, 청년 작가 천성호 씨를 응원하며 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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