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로비와 광화문 등에서 파업 집회를 이어가던 KBS, MBC 언론노조가 대학가를 찾았다. 이화여대와 고려대 등 일부 대학에서 영화 <공범자들>을 무료 상영하고 영화가 끝난 후엔 방송사 직원과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다. 상영회를 통해 두 노조는 그들이 파업한 이유를 설명하며 공영방송 사태에 학생들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 고려대 게시판에 붙은 영화 <공범자들> 무료 상영회 홍보 포스터

지난 9월 27일 수요일 저녁 4시, 고려대학교 미디어관에 있는 KU시네마트랩에서 영화 <공범자들>이 상영됐다. 이날 상영회는 MBC 허일후 아나운서가 고려대 출신 MBC 직원 20명을 모아 기획했다. 90년대 학번으로 이뤄진 21명의 노조원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영화관을 대관했다. "후배들에게 우리 학교 출신 MBC 사장들이 그동안 회사와 직원들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를 알리고 싶었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00학번인 허 아나운서는 스토리오브서울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김재철, 김종국, 안광한, 현 김장겸 사장까지 전현직 4명의 MBC사장이 모두 고려대 출신”이라 강조했다. 이날 상영회엔 120여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영화가 끝난 저녁 6시엔 ‘MBC 직원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허 아나운서 외에 김민식 MBC PD와 박성호 MBC 해직기자가 참석했다. 학생들이 질문하고 직원들이 답했다. 질문은 크게 두 갈래였다. 지난 9년간의 MBC 직원들의 투쟁과 현재 MBC 파업 진행상황에 관한 내용이었다. 2012년 파업이 노조원들에게 무엇을 남겼느냐는 물음에 허 아나운서는 “생활고를 남겼다”고 말했다. “9개월 동안 총 13만원을 받았다. 당시 한 시중은행에 실적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우리가 모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웃음)” 허 아나운서는 언론노조의 파업이 임금 인상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덧붙였다. “MBC 언론노조는 과거에도, 지금도 민주적인 공정방송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는 노동법 상의 근로조건과 맞지 않는다며 우리들의 2012년 총파업을 불법파업이라 규정했지만 2013년에 고등법원이 이렇게 판결했다. ‘방송 근로자들에겐 공정방송 요구는 근로조건 중 하나다’고.”

▲ 영화 상영 후 방송사 직원과의 대화를 갖는 학생들

방송사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장기적인 대안을 묻는 학생도 있었다. 박도형(철학과 11학번) 씨는 “비난의 화살이 꼭 특정인에게 돌아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제도를 개선해서 풀어야 할 문제인데 방송법 같은 제도가 바뀔 가능성이 있는지” 직원들에게 물었다. 박성호 기자는 “사장을 퇴진시키고 나면 새로운 제도를 위해 시민사회, 학계, 정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번 파업의 목적은 크게 언론 적폐 청산, 제작 관행 개선, 그리고 법적 개선이다. 선진국의 제도나 관행을 그대로 가져오는 게 꼭 바람직한 건 아니다. 영국 BBC의 사장 선출 제도가 방송사의 독립성을 특별히 더 잘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업 이후에 우리나라에 맞는 방송사 운영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여러 사회단체가 반드시 함께 논의해야 한다.” 

명지대에선 강규형 교수(현 KBS 이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강규형 교수는 현재 명지대에서 학부생에게 ‘역사와 문명’이라는 교양수업을 가르친다. 9월 28일 목요일 밤 9시, 명지대 중앙도서관 소극장에서 영화 상영 후 진행된 KBS 직원과의 대화에서 김현석 KBS 기자는 강규형 교수의 회사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조사한 결과를 학생들에게 알렸다. “강 교수가 애견카페 결제와 애견동호회 회식비 결제 등 업무와 관계없는 일로 법인카드를 사용했다. 여러분들이 낸 KBS 수신료가 강 교수의 사적 활동에 쓰였다.” 진행을 맡은 이광용 KBS 아나운서는 “강 교수가 명지대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조합원 옆에서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리며 사진 찍은 적도 있다”며 조합원에게 어깨동무를 하고는 ‘당신들은 나한테 와서 몸싸움도 하는데 난 이 정도도 못하냐’고 말한 사실을 전했다. 이 자리엔 KBS 김현석 기자와 이광용 아나운서, <공범자들>의 최승호 감독이 참석했다. 소극장을 찾은 60여명의 학생은 영화 <공범자들>과 한국 언론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KBS새노조와 공동으로 행사를 주최한 명지대 강경대열사추모사업회 임재우 대표는 “강규형 교수의 이사직 사퇴 문제는 비단 KBS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스토리오브서울과의 인터뷰에서 “강 교수는 뉴라이트 교수로 그간 친일과 독재를 옹호했다”며 “그런 분이 우리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고 했다. 행사에 참가한 전공자율학부 17학번 이진영 씨는 “영화를 보면서 <공범자들>이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소설 속 내용이길 바랐다”며 “지난 시간을 목격한 만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영방송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명지대를 찾은 최승호 감독, 김현석 KBS 기자, 이광용 KBS 아나운서

KBS, MBC 두 노조의 대학가 선전전은 9월 19일 이화여대에서 처음 시작됐다. MBC 김보슬 PD와 김수진 기자 등 이화여대 출신 MBC 노조원들이 ‘마봉춘 이대로 괜찮니’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행사가 시초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MBC 노조원들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였던 유의선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과 교수에게 방문진 이사 사퇴를 요구했다. 유 교수의 사퇴 이후엔 이화여대 아트하우스모모에서 영화 <공범자들>을 무료상영하고 선배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다. 130명 정도를 수용하는 영화관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김보슬 PD와 김수진 기자 외에 허항(예능), 김선영(예능), 하정민(라디오) PD, 이재은 아나운서 등 이화여대를 졸업한 노조원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 이화여대 공범자들 상영회

“2012년 파업 이후에 뉴스를 제작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회사가 저를 ‘노조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람’이라고 분류했었나보다. 저뿐만 아니라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현업에서 제외된 인력이 100명 정도 된다.” 김수진 기자는 파업이 끝난 후 기자 업무와 연관성이 거의 없는 드라마 마케팅 부서, 뉴미디어 포맷 개발 센터를 전전했다고 말했다. 허항 PD는 MBC 대표 명절 예능으로 꼽히는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이하 아육대)’ 이야기로 운을 뗐다. “9월 4일에 MBC 언론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는데, 그날이 원래 아육대 녹화 날이었다. 이번에 워너원, 방탄소년단 등 섭외하기 어려운 대형 아이돌들을 다 섭외해놓은 터라 꼭 촬영하고 싶었다.” 허 PD는 “그럼에도 녹화를 취소하고 파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영화 <공범자들> 덕분”이라고 밝혔다. “자기 일이 소중하지 않은 노조원은 없을 거다. 다만 회사를 살리겠다는 이유 하나로 다들 용기를 냈다. 이 때 한 마음으로 뜻을 모으지 않으면 이번 싸움에서 이길 수 없겠다고 영화를 보면서 확신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윤해리(언론정보학 13학번) 씨는 “이번 MBC 파업이 작년 본교에서 일어났던 정유라 부정입학 논란 학내 시위와 오버랩 됐다”며 “파업의 성과가 방송사 시스템 재건으로 이어져 훗날 제작 자율성이 침해받지 않는 방송사에서 저도 꼭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KBS, MBC 언론노조는 고려대, 한양대, 덕성여대, 명지대 등에서 비슷한 행사를 주최했다. 명지대에서 만난 KBS 새노조 신봉승 복지국장은 “이 행사를 통해 공영방송이 마주한 정치적, 구조적인 문제를 대학생들이 잘 알게 되길 바란다”며 “KBS 새노조가 기획한 (대학가 행사는) 일단 다 마쳤지만 필요하다면 앞으로 몇몇 다른 대학에서 비슷한 행사를 준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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