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날












 24. 귀녀 : 눈이 오면 꽃도 피리라

 

 

 

  “도망가유! 도망가, 어무이!”
  느닷없는 내 외침에, 운과 린은 서로 마주보며 싱긋거리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애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지금 내가 어무이와 걷던 피란길, 어느 모퉁이를 헤매고 있으리라 믿고 있다. 아무렴, 그래야지. 이틀 전 운이 가방을 훔쳐 와 봉지를 화단에 묻으면서부터 오늘까지 일어난 일을 마저 들어야 하며, 왕따를 당하던 린의 학교생활이 나아졌는지도 알아야 하고 말고.

  1년 전… 피투성이가 된 영감과 자식들을 본 그날, 나는 처음으로 정신을 잃었다. 충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증세라 가볍게 여겼지만 그 뒤로도 쓰러졌고 결국은 치매에 걸리고 말았다. 어린 손주들을 생각하면, 사고에 따른 피해 보상이나 상속처럼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버틴 게 다행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죽은 영감이 보살핀 덕이리라. 
  그러고 나서 내 정신은 차츰차츰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애들 밥을 하다가 가스 불을 킨 채로, 시장의 단골 가게 앞에서 생선을 고르다가, 목욕탕에서 불린 때를 밀다가, 피란을 떠난 1950년 6월의 7살 어린애로 돌아가기가 여러 번이었다. 집을 태우거나, 은행에 다녀오다 날치기를 당하거나, 애들의 학교에 갔다가 아이가 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났다. 날이 갈수록, 나는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끊임없이 시계를 쳐다봤다. 몇 시, 몇 분쯤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으면 머리를 싸매고 밤새 자신을 괴롭혔다. 스스로를 그토록 몰아붙인 이유는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끝난다는, 가장으로서의 고독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내가 없으면 피도 눈물도 없는 세상은 아직 어리기만 한 애들을 인정사정없이 꿀꺽 삼켜 버리리라. 차라리… 그날 아침, 사고가 난 트럭에 아들이나 며느리 말고 내가 탔다면, 그래서 내가 대신 죽었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안타까움에 피멍이 들도록 얼마나 가슴을 쳤던가. 허나 바라고 또 바라더라도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아예 제대로 치매가 와서 내가 누구인지도 잊고 말던가, 몸이 문드러져 먼지처럼 흩어졌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허나 더없이 한스러웠던 어무이의 선택을 내가 할 수는 없더라. 손주들을 위해, 나는 최소한 살아서 이 세상에 머물러야 했다. 

  무기력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몸을 가두는 일이리라. 밖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치매가 내 정신을 가출시킨다는 사실을 이웃에게 감추기 위해서, 결국 내팽개칠 거면서 온정을 앞세워 나와 손주들을 떨어뜨리려 달려들 법치 국가의 그물망을 피하기 위해서, 나는 죄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내 감방은 바로 이 의자로, 신기한 점은 요놈의 감옥이 예상외로 쏠쏠한 선물을 준다는 사실이다. 바로 지금처럼. 

  운이… 내 손자는 어려서부터 남의 것에는 손도 안 댈 만큼 정직한 아이였다. 중학생인 운에게 생활비 통장을 주고 매달 내야 할 가스비, 전기세 같은 공과금을 알려준 뒤로, 나는 운을 믿고 맨드라미 앞에만 머물 수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을 때 통장 내역을 꼬박꼬박 확인해 왔지만, 지금까지 운은 동생에게 용돈을 좀 넘치게 주는 것 말고는 옷도 안 사 입을 정도로 알뜰하고 자제력이 있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얼토당토않게 도둑질을 하고 들어왔으니, 얼마나 놀랐던가! 
  내가 여느 할머니였다면 만족스런 대답을 들을 때까지 꼬치꼬치 캐물었을 테고, 운인 또래 사내애들이 그렇듯 어떻게든 거짓말을 둘러댔으리라. 내가 정신이 나간 할머니였기에 운은 내 눈앞에서 비료라고 속이면서 훔친 옷가지를 넣은 봉지를 묻었으니… 땅속 깊이 들어가는 보따리를 보며,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만약 경찰이 들이닥친다면, 그곳만은 뒤지지 못하도록 어떻게든 막았으리라. 내가 드러누워 버티는 통에 누구도, 맨드라미의 이파리 한쪽도 건드리지 못했으리라. 
  운의 귀를 잡아끌며 가방을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닦달할 수도 있었다. 허나 만에 하나, 사람을 다치게 한 일이라면 운은 어떻게 되고 마는 것인가. 내 그런 경솔한 행동이 우리 가족을 무너뜨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변덕스러운 인생을 살아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가만히 지켜보는 게 가장 현명하더라. 도대체 어디다 쓰려고 가지고 온 가방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날 밤, 가방은 손녀에게 전해졌다. 어떠한 티도 낼 수 없었기에 나는 더욱 탄식을 금치 못했다. 운의 통장을 확인하듯이 린의 일기도 가끔 들춰 보았기에, 내 황금 같은 손녀가 귀범이처럼 지뢰를 밟은 사람을 괴롭히는 말인 ‘찐따’라 불리며 온갖 몹쓸 짓을 당하느라 저런 가방만 생기면 동유럽 어딘가에 붙은 ‘프라하’란 도시로 떠날 계획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운은 도망갈 궁리를 하는 포로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문을 열어 준 격이었다. 린 역시 운이 가방을 훔쳤으리란 의심은 하지도 못하더라. 우리는 서로를 안다고 얼마나 큰 착각에 빠져 살아가는가. 맑은 정신으로 대화를 나누는 의좋은 남매가 서로의 진심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를 안 나누는 나만큼도 모르지 않는가. 
  그날 밤에 몇 번인가 기억이 비긴 하지만, 그 외의 시간을 나는 뜬눈으로 방을 오가며 불안하게 지새웠다. 일기장을 봤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고는, 손녀의 가출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반대로 린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온전한 정신이 있으면서도 나간 척 운이 훔친 물건을 묻는 모습을 봤다고 하면, 배신감과 반발심에 애들이 더 비뚜로 나가지는 않을지…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처럼 서성이기만 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옛말은, 믿음의 경우에는 안 맞으리라. 팍삭 깨진 도자기처럼, 한번 금이 간 신뢰는 겨우겨우 붙여도 절대로 본디처럼은 안 된다. 실금을 따라 새겨진 쓰라린 기억은 쉽사리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니… 기어코 린이 몰래 떠나려 한다면 어떻게든 운을 깨워 잡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어렵지 않으리라. 린을 부여잡고 한마디만 계속해서 시끄럽게 외치면 된다. 
  “도망가유! 도망가!”

  다행히 린은 그날 밤에 집을 나서지는 않았다. 다음날 아침, 손녀가 학교에 간 뒤에도 가방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노곤한 눈을 비비며 린의 일기장을 펴자 끔찍한 말이 적힌 꾸깃꾸깃한 쪽지들이 새로 붙어 있었다. 다들 내 손녀 같은 아이들이, 서로 얼굴만 쳐다봐도 까르르 웃을 나이의 소녀들이 어찌 공중에서 고엽제라도 뿌리듯 억척스레 내 손녀를 말려 죽이려 드는지… 린의 일기를 읽고도 그런 지독함은 쉽사리 상상할 수 없더라. 이제 손녀는 손자가 훔친 가방을 인공 호흡기로 삼아, 힘겹게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날 내내 맨드라미를 보며 고민에 잠겼다. 가방 하나에 훈훈해지던 전날 밤을 떠올리자 짓무른 눈을 비집고 맑은 눈물이 나오려 했다. 저 가여운 애들을 위해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남편과 자식을 잃은 슬픔에 겨워, 따라 죽지 않고 이렇게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내 어무이보다는 낫다는, 딱한 노인네 행세를 하며 손놓고 있는 건 아닌가? 실로 오랜만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 계속 이렇게 앉아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구 헝클어진 모습으로 린이 마당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리곤 밀려오는 쓰나미라도 본 사람처럼 가방을 싸서 뛰쳐나오는데, 운이도 없으니 그야말로 핵폭풍이 불어닥치는 언덕에 맨몸으로 서 있는 심정이었다. 내가 손주들을 보살핀다는 그동안의 엄살은, 나이든 할망구의 터무니없는 착각이었으리라. 내가 아이들에게 이토록 기대고 있었던가… 미처 알지 못했다. 이럴 때야말로 나를 구원할 치매라는 병으로 도망가, 피란길에서 어무이를 잃은 천애고아가 되어 꾀죄죄한 눈물을 쏟고만 싶은 심정이더라.
  혹시 내 마음을 읽은 맨드라미가 잡아 주었는가. 마당으로 나온 손녀는 갑자기 뭔가 망설이는 듯했다. 태풍 같던 처음의 기세와는 달리 가방에 걸터앉더니,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왕따 이야기를 가슴이 미어지도록 한참이나 털어놓았다. 말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더라. 이대로 안 떠날지도 모른다고 마음을 놓는 순간, 린이 벌떡 일어서더니 부리나케 작별 인사를 하고 대문으로 달려갔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내 모든 부끄러움을 들키더라도 비겁함의 껍질을 찢고 나와야 하리라! 헐레벌떡 쫓아가 린을 잡으려는 순간, 가방의 주인이 안 막아섰다면, 분명히 입을 열어 소리쳤으리라. 
  “도망가유!”
  가 아닌, 
  “도망가지 마!”

  앳된 기운이 돌지만 제법 인생의 쓴맛도 알아 보이던 여자애는, 운의 여자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니라는 걸 한눈에도 척 알 수 있었다. 운은 그런 빼빼 마른 여자애보다는 제 엄마처럼 튼실한 여자를 좋아하고 말고! 내게 무엇보다 확신을 준 건 가방을 찾으러 왔다는 말이었다. 여자친구의 가방을 빌려서 그 속에 든 속옷이며 화장품을 땅에 묻는 미친놈이 어디 있겠는가. 아가씨도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운이 사람을 해치진 않았다는 걸 알려 줘서 고맙네. 제 물건이 바로 옆에 묻힌 걸 꿈에도 모르고 거짓말까지 하며 빈 가방만 조용히 가져가서, 또 마침 그때 나타나 내 손녀의 가출까지 막아 줘서 고마울 따름이네. 가방을 주고 멍하니 대문 앞에 선 린의 뒤에서 맨드라미를 어루만지며, 나는 누군가의 딸이자 손녀일 처녀의 앞길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빌고 또 빌었다. 가방을 빼앗기고 크게 실망했을 린인 곧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 버렸다. 내 아픔에만 실컷 파묻혀 살던 내게 ‘상실’이란 벌을 내리려던 하늘이,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돌려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리라.
  두방망이질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을 다진다. 요 맨드라미처럼 식물인간으로 그저 숨만 쉬며 바라보기엔, 존재만으로 위로하기엔 아이들이 뿌리부터 위험천만하게 흔들리고 있잖은가. 그동안 지나치게 길었던 내 침묵을 오늘 깨리라! 분명히 다짐했는데, 오히려 이렇게 정신을 잃고 말았으니…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인생이 부리는 기상천외한 요술에서 벗어날 순 없으리라.

  여전히 운과 린은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정신이 나간 줄 아는 내 옆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길 나누고 있다. 다시 적당한 시점을 기다리며 흐뭇하게 듣는다. 아이들이 얼마나 잘 자라 주었는지, 그저 하늘에 감사드릴 뿐이다. 나는 이 의자 위에 머무르기만 했을 뿐인데, 그게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제는 둘 다 한고비를 넘겼는지 한결 편안해 보인다. 린에겐 드디어 진심을 알아보는 친구가 생겼단다. 새로 사귄 유리와 선아라는 아이는 매일 학교가 끝나면 홍대나 강남, 이태원으로 쏘다녀 날라리로 오해했는데, 알고 보니 둘 다 디자인고등학교를 준비하느라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고 그린다는 모양이다. 내일은 우리 린이도 같이 가 보기로 했다니 드디어 손녀가 학교에서 외롭지 않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운이는 같이 춤추자는 형들이 있어 고민이란다. 아직 결정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함께하면서 래퍼라는 꿈을 제대로 키워 보고 싶단다. 그 말을 하는 손주의 목소리가 한결 밝고 가벼워서 좋다.
  그럴수록 이제는 양심선언을 해야 한다. 손주들이 나누어 진 짐을 찾아와, 내 몫은 내가 짊어져야 하리라. 어떤 말로 다가가면 좋을지 아까부터 고민하는 중이다. 옳지! 몇 달 만에 갑자기 말을 걸면 놀랄 테니, 노래로 시작해 보면 어떤가? 영감을 만나기 전, 어찌 살았는가 싶을 정도로 고달프던 피란민의 삶, 그 고비마다 부르던 노래가 기억난다. 구불구불하면서도 매끈하게 남실대던 우리 아부지의 목소리처럼 구성진 박재홍의 〈유정천리〉.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못살아도 외로워도 좋으니 내 고향으로 가련다는, 어느 늙은 아비의 노래.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우리 아부지가 반갑게 마중 나온 고향집 사립문으로 들어가는 어무이와 귀범이의 다정한 뒷모습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나는 늘 훌쩍거렸다. 스스로도 웬 청승인가 싶었지만, 뒤돌아보면 더는 견디기 어려운 인생살이의 고비마다 어느새 나는 그 찰진 가락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건 까마득히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기약 없는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려는 나만의 응원가는 아니었을지… 가을밤이 선선하게 깊어 가고 운과 린이 차츰 말이 없어질 무렵, 기억의 저편에 묻어 둔 노래 한 자락을 꺼내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고운 목소리로 슬며시 불러 본다.

  그야말로 인생은 눈길과 꽃길이 굽이굽이 엇갈려 놓인, 끝없는 나그네 길이 아니겠는가. 별안간, 이 길을 함께 걸어갈 내 어린 두 나그네가 나를 뜨겁게 껴안는다. 치매를 ‘기나긴 작별’이라고 했던가. 그러니 아직은,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헤어질 시간이 남아 있다. 머지않아 우리에겐 시린 겨울바람이 불어닥치겠지만, 그러고 나면 또 살랑거리며 봄바람이 불어오리니… 눈이 오면 꽃도 피리라. 그러니 지금은, 지금은 이대로도 충분하리라.

 

 


*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관리하는 음악이라 저작권을 존중하기 위해 박재홍의 〈유정천리〉 가사를 싣지 않았습니다. 혹시 노래가 궁금하신 분은 인터넷에서 가사를 검색해서 보시거나 음원 사이트에서 앨범 「할아버지 산에 갈 때 듣는 음악」에 실린 곡으로 들어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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