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외모, 독특한 성격, 독특한 스타일, 독특한 상상력, 세상 유일무이한 당신만의 특징’

국어사전에서 ‘틈’을 검색해 보면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 어떤 행동을 할 만한 기회 등 다양한 뜻이 나온다. 그 중 ‘사람 사이에 생기는 거리’인 세상의 ‘틈’을 인식하고 소통의 장이 되고자 하는 잡지가 있다. 장애인전문민간공익재단 한국장애인재단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이해를 돕고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발간하는 간행물 <세상을 여는 틈>(이하 틈)이다. 틈이 지향하는 소통의 장이 무엇일지 알기 위해 재단 모금홍보팀에서 틈의 기획·취재를 담당하는 김민혜 씨(26)를 만났다.

국내 최초 ‘인식 개선지’
장애인의 삶과 문화를 다양한 주제로 조명하는 틈은 국내 최초 ‘인식 개선지’로 2009년부터 3권의 창간 준비호를 거쳐 2011년 여름에 정식으로 창간됐다. 틈은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인식 개선을 목표로 할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장애인 간의 인식도 개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비장애인이 막연하게 알고 있는 장애를 설명하거나 거동이 불편하면 도전하기 어려운 장애인의 해외연수기를 소개해 다른 장애인에게 용기를 주기도 한다. 장애계의 다른 발행물은 대부분 일상에서 장애인이 겪는 고충을 호소하기 때문에 비장애인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틈은 주로 ‘장애 감수성’(장애인의 상황과 장애인이 겪는 문제에 보다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비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때문에 김 씨는 “비장애인들이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장애인 역시 비장애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어 틈은 소통의 공간이 돼요”라고 말했다.

표지에 적힌 ‘세상을 여는 틈’이란 서체는 독자에게 익숙한 느낌을 준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작가이자 대중들에게는 소주 ‘처음처럼’의 서체로 유명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재단의 뜻을 듣고 직접 제호(題號)를 썼기 때문이다. 틈은 현재 연 2회 무료로 발간·배포되며 7년째인 올해 여름 12호를 맞이했다. 분량은 약 90쪽 정도이며 온라인 구독 신청을 통해 인쇄본을 받거나 홈페이지(https://www.herbnanum.org/)를 통해 E-BOOK으로도 볼 수 있다.

▲ 구독 신청을 할 수 있고 E-BOOK을 볼 수 있게 돼 있는 홈페이지.(사진=한국 장애인재단 홈페이지)

틈은 한국 장애인재단에서 매호 주제를 선정하고 적합한 인물을 섭외한다. 교정과 인터뷰 섭외, 사진 연출 등 전체적인 부분은 김 씨가 담당하지만 내용은 전문 포토그래퍼와 오랜 경력을 갖춘 필진이 구성한다. 또한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전지혜 교수를 포함한 4명의 외부 기획 편집 위원과 담당자들이 회의를 통해 틈을 평가하고 기획한다.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완본에 대한 평가를 받아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다채로운 내용과 구성
12호를 기준으로 틈은 크게 9가지 범주로 나뉜다. 그 중 ‘수다공간 틈’, ‘인터뷰 공간 짬’, ‘우리 안의 소수’는 1호부터 계속된 틈만의 독특한 구성 부분이다. 앞부분에 실린 ‘수다공간 틈’은 하나의 주제와 관련해 5-7명의 참가자가 자유롭게 나눈 ‘수다’를 담고 있다. 참가자는 주로 장애인과 같이 주제에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당사자, 전문가, 현장 경험자 등이다.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기 위해 주제에 따라 참가자는 유동적으로 바뀐다. 12호의 경우 ‘통합교육’을 주제로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현장에서 이를 경험한 교사, 장애 아동의 학부모와 대상자인 장애 학생 등이 나눈 수다가 실렸다.

평택대학교에 재학 중인 오현경 씨(21)는 올해 한국 장애인재단의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틈을 읽게 됐다. 오 씨는 틈의 모든 범주 중 ‘수다공간 틈’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고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주제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씨는 “읽다보면 어느새 단순한 잡지가 아니라 토론회나 중요한 회의를 참관하는 기분이 들어 ‘아!’ 라고 감탄을 여러 번 하게 돼요”라고 그 이유를 말했다.

‘인터뷰 공간 짬’은 배우, 개그맨, 사진가 등 인물의 답변 속에 ‘장애’를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보통 한두 명의 인터뷰가 실리는데, 섭외 대상을 장애인에 한정하지 않는다. ‘장애 감수성’을 갖추고 재단의 사업에 참여한 연예인이나 장애 관련 독특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취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인터뷰 질문 역시 모두 ‘장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다른 상업 잡지처럼 취재 대상의 근황 역시 다루는데 이는 장애 여부와 무관히 모든 사람들 간의 ‘소통의 장’이 되고자 하는 틈의 이상을 잘 보여준다. 비장애인 인터뷰어의 질문과 답변을 통해 장애인 역시 비장애인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단의 사업과 관련된 인터뷰 대상으로는 개그맨 안영미와 윤정수가 있다. 두 사람은 각각 과거에 재단의 홍보대사였고 최근에는 재단의 인식 개선 라디오 캠페인에 참여했다. 재단의 사업과 무관히 12호에는 사진작가 나종민 대표와 11호에는 배우 배수빈의 인터뷰가 실렸다. 김 씨는 “배수빈씨의 경우 장애와 성, 죽음을 다룬 연극 ‘킬 미 나우’에 출연하셨고 윤정수씨는 어머니가 청각장애인이셨기 때문에 ‘장애 감수성’을 갖춘 인물이라 생각 했어요”라며 이들의 섭외 이유를 밝혔다.

▲ 왼쪽부터 <틈>에 실린 배우 이수빈과 개그맨 윤정수의 인터뷰 사진.(출처= 왼쪽부터 세상을 여는 틈 11호 47쪽, 12호 43쪽)

틈을 넘기다 보면 장애와 연관성이 적어 보이는 이름의 범주를 볼 수 있다. 바로 ‘우리 안의 소수’다. 우리 안의 소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낯설 수 있는 프래더윌리증후군(15번 염색체 이상으로 먹어도 배부름을 느끼지 못하는 선천적 식이장애, 출처=질병관리본부 국가건강정보포털), 호흡기 장애 등을 다루며 형식은 비교적 자유롭다. 최근 11, 12호에는 이주 장애 여성과 자폐가 있는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 옥주씨의 인터뷰가 각각 실렸다. 인물의 인터뷰가 작성됐다는 점이 ‘인터뷰 공간 짬’과 유사하나 내용을 다루는 형식이 다르다. 우리 안의 소수는 한 편의 일기처럼 인터뷰 대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연구 결과와 같은 전문 지식이 첨가되는 형식이다.

또 다른 재단 서포터즈 활동가인 명지대학교 재학생 장예지 씨(23)는 ‘우리 안의 소수’가 가장 감동적이며 유익했다고 말했다. 장 씨는 “장애는 유형이 다양하고 같은 질환을 앓고 같은 부위에 장애가 있어도 그 경중은 다르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장애인 중에서 또 다시 소수가 돼야 하는 이들의 장애에 대해 소개하는 것은 정말 좋은 취지라고 생각해요”라며 ‘우리 안의 소수’의 장점을 말했다.

섬세한 ‘틈’
다른 상업 잡지와 다르게 틈은 두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본문 내용을 시각장애인이 인쇄된 정보를 접하도록 도와주는 서비스 ‘보이스 아이’로 제공하며 12호부터 제목을 점자로 표시하는 점이다. 틈의 모든 페이지 오른쪽 상단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글을 읽을 수 없는 시각장애인은 틈의 내용을 들을 수 있다. 제목을 점자로 표기한 것은 김 씨의 아이디어다. 김 씨는 “표지에 글이 많아서 모든 것을 점자로 표기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제목만이라도 점자로 표기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 점자로 제목이 표기된 틈 12호(위)와 오른쪽 상단에 보이스아이 QR코드가 표기된 12호 3쪽(아래)
(사진=세상을 여는 틈 12호 E-BOOK)

‘틈’이 꿈꾸는 미래
무료로 배포되는 틈은 현재 재단에서 배정하는 예산에 부가적으로 네이버 해피빈이나 나눔 계좌를 통해 들어오는 후원금을 합쳐 평균 2,000부 정도 발간된다. 이중 1,000부 정도는 정기 구독자에게 발송되고 나머지는 재단의 후원자와 구독을 신청한 장애인 관련 단체에 주로 보내진다. 틈은 장애 여부와 무관히 모두가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되고자 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앞으로 정기 구독자 이외의 많은 사람이 틈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발행 부수를 늘려 다양한 곳에 틈을 배치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틈의 발행 비용이 재단의 한정된 예산과 고정적이지 않은 후원금에서 비롯돼 부수를 늘리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또한 김 씨는 “요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많은 정보를 접해요. 그런데 E-BOOK은 확대나 축소가 일반 게시물에 비해 불편하다는 피드백이 많아서 장기적으로는 E-BOOK을 대체할 수 있는 ‘틈’만을 위한 페이지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현재 틈은 연간 두 번 발행돼 일부 글은 취재 이후 공개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 ‘틈’만을 위한 페이지가 생기면 취재 이후 즉각적으로 독자들과 내용 공유가 가능해져 더욱 시의성 높은 간행물이 될 것이다.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점자 표시된 제목과 본문 내용을 보이스아이 서비스로 제공하는 ‘틈’은 소수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간행물이다. 대부분 인쇄물이 비장애인만을 고려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조사한 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2017년 6월 기준 대한민국 등록 장애인 수는 약 251만 1,000명이다. 행정안전부에서 조사한 주민등록 인구 및 세대 현황에 따르면 주민등록이 된 인구는 5,175만 3,820명으로 장애인은 그 중 약 5% 정도이다. 다수는 아니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소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필수다. 김민혜 씨를 포함해 틈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회를 꿈꾼다. “점자 표시, 보이스아이 서비스 등이 배려가 아니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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