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한편에는 플라스틱 통이, 그것도 페브리즈 통만 무더기로 쌓여 있다. 맞은편 방에선 씻은 우유팩이 보인다. 그 옆방에는 상표를 뗀 유리병이 놓여 있다. 거대한 분리수거함 같은 이곳은 ‘서울새활용플라자(새활용플라자)’다. 지난해 9월, 서울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 근처에 문을 열었다.

새활용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재활용이라는 단어를 잘못 쓴 건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영어 ‘업사이클링(upcycling)’을 순화한 우리말이다. 분리수거한 페트병은 녹여서 또 다른 페트병을 만드는 식으로 재활용된다. 하지만 페트병을 녹이면 다량의 환경호르몬과 이산화탄소가 발생해 환경에 좋지 않다.

재활용의 이런 단점을 보완해 새활용 과정에서는 물질에 어떤 화학적 변화도 가하지 않는다. 새활용플라자에서 페트병은 아이들의 블록완구로 바뀐다. 유리병은 납작하게 눌러 시계나 접시로 만들고, 우유팩은 말린 후 다시 접어 동전지갑을 만든다.

새활용이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보니 하루 두 번인 가이드투어에는 20명의 제한인원이 꽉 차곤 한다. 이진경 해설사는 “주로 부모님들이 아이를 데리고 많이 찾아온다. 투어마다 10명은 온다”고 말했다.

가이드투어를 신청하면 평소 개방하지 않는 1, 2층 전시장과 지하 소재은행을 볼 수 있다. 1층 전시장에선 새활용 제품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새활용 브랜드 ‘CONTINEW’는 폐차 과정에서 버려지는 카시트가 쉽게 찢어지지 않는 가죽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카시트를 벗겨내 가방을 만들고, 역시 재활용이 불가능한 안전벨트로 가방끈을 달았다. “이 가방 헌 가방 같아요, 새 가방 같아요?” 이진경 해설사의 질문에 아이들은 하나같이 새 가방 같다고 대답했다.

▲현수막으로 만든 새활용 브랜드 패롬의 가방

하지만 이렇게 새활용할 수 있는 좋은 재료를 찾기란 쉽지 않다. 지하 소재은행은 새활용 업체가 소재를 꾸준히 공급받을 수 있는 전 세계 유일한 공간이다. 새활용플라자 콘텐츠기획팀 조동찬 씨는 “새활용 기업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소재를 사고 파는 일”이라고 말했다.

가이드투어가 끝난 후 아이들은 자연보호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김재희 군은 "앞으로 가죽으로 만든 물건은 절대 쓰지 않을 것"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가죽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동물 가죽을 산 채로 뜯어낸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새활용 제품은 어른들의 눈도 사로잡았다. 투어 초반에는 아이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다가 어느새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카시트 가죽과 안전벨트로 만든 가방에 관심을 보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반응이 가장 좋았던 제품은 청바지를 새활용한 가방이었다. 한 엄마는 일행에게 “얼른 투어를 끝내고 가방 파는 곳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장한평 주민 배난희 씨는 “새활용이 무엇인지 모르고 별 기대 없이 왔는데 생각보다 제품이 정말 예쁘고 새 것 같다. 설명을 듣고 어른인데도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새활용 컨텐츠가 좋은 반응을 끌어내는 중이지만 새활용플라자를 찾는 개인 관람객은 많지 않다. 지난해 9월 5일 개관 이후 연말까지 5만~6만 명이 찾았다. 관람객 대부분이 초중고나 유치원생이다. 규모가 달라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비슷한 시기에 새활용플라자처럼 문화공간을 지향하며 문을 연 마포 문화비축기지에는 18만 명이 다녀갔다.

▲가이드투어에 참여한 관람객들이 폐목재를 새활용한 가구를 살펴보고 있다.

개인 관람객이 할 수 있는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방문 유인을 떨어트린다. 상설 전시는 지난해로 종료돼 가이드투어를 신청해야 전시장을 볼 수 있다. 다음 개방 전시는 올 4월쯤에야 가능하다.

건물 3, 4층에 새활용 업체의 스튜디오가 있어 작업을 구경하거나 체험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문 여는 시간을 업체 자율에 맡겨 어느 날에는 모두 문을 닫는다. 실제로 일요일인 1월 21일 오후에는 문을 연 곳이 아름다운가게의 ‘에코파티 메아리’밖에 없었다.

이날 새활용플라자를 찾은 한 가족은 “다음에 다시 오자”며 발길을 돌렸다. 금요일인 1월 26일 오후에도 문을 연 곳은 32개 중 5, 6곳에 그쳤다. 다른 문화공간이나 공방과 달리 새활용플라자는 판매가 주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활용플라자는 공간의 용도를 정해두지 않아 업체가 각자 필요에 따라 스튜디오를 사무실 혹은 작업실로 사용한다. 새활용 브랜드 젠니클로젯도 매장과 온라인몰이 따로 있어 원하는 고객에게만 상품을 판매한다. 개인 관람객이 많이 찾아오도록 상점을 열 계획이지만 아직 확실치 않다. 스튜디오마다 상점을 필요로 하는 정도가 달라 조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활용플라자가 서울에 새활용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퍼트릴 수 있을까? 새활용이라는 특정한 주제가 있다는 점에서 다른 문화공간과 분명 차별화된다. 새활용 브랜드 젠니클로젯 김보슬 씨는 “저렴한 임대료 외에 장점은 새활용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라며 “관련 행사를 혼자 하려면 힘든데 함께 준비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새활용 문화와 커뮤니티로 일반 시민을 끌어들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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