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주가 영하권을 기록한 1월 31일,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는 이른 오후부터 한껏 멋을 부린 청소년으로 가득 찼다. 대부분 추위를 견디기 위해 롱 패딩을 입었지만 여학생 대부분은 얇은 셔츠와 짧은 미니스커트, 10cm 정도의 하이힐 차림이었다.

춥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느 여학생은 “어차피 안에 들어가면 덥기 때문에 참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모두 홍대에 새로 생긴 ‘청소년 전용클럽’에 입장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10대였다.
 
이 클럽은 지난 1월 26일 문을 열었다. 성인클럽과 달리 음주와 흡연이 일절 금지된다. 대신 콜라, 사이다, 에너지드링크 등의 음료수를 마실 수 있다. 평일 영업시간은 오후 5시부터 밤 10시, 주말은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청소년 클럽 ‘웨이브’의 김경호 대표는 “한국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공부만을 강조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건전한 클럽을 통해 학생들을 위한 새로운 탈출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1월 31일, 평일임에도 클럽 입장을 기다리는 학생들로 골목이 꽉 찼다.

입장을 기다리던 학생 대부분은 청소년 클럽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경기 고양시에서 왔다는 김예슬 양(15)은 “클럽을 가보는 게 로망이라고 말하는 학교 친구들이 많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화려한 클럽 장면을 보여줄 때마다 꼭 한 번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김도윤 군(15)은 “지금까진 친구들하고 놀 수 있는 데가 노래방 아니면 PC방 밖에 없었는데 청소년 전용 클럽이 생겼다고 해서 놀러왔다”고 했다.

클럽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학생들도 있었다. 지난 2월 4일 클럽 입장을 기다리던 박소현 양(18)은 “클럽은 처음 보는 남녀가 만나 원나잇을 하는 음란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청소년 클럽이지만 그래도 많은 학생이 이성의 번호를 따면서 놀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럼 왜 놀러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청소년 전용클럽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새롭고 재밌어서 호기심에 와봤다”고 했다.

같은 날 오후 6시 30분, 클럽 앞에 서있던 남학생은 “클럽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너무 빠져들면 오히려 학업에 집중이 안 될 거 같다”며 “두 번은 안 올 거 같다”고 덧붙였다. 입구에서 만난 고3 여학생은 “학생들만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재미없다. 다음에는 술을 마시고 오겠다”고 말했다.

클럽 스테이지는 금세 학생들로 붐볐다. 처음엔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소극적이었던 학생들도 화려하게 비추는 조명 아래서 음악이 점점 빨라지자 양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학생들 입장 후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클럽 안 스테이지.

대부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건전하게 놀았지만 ‘성인 클럽’을 떠올리게 하는 학생도 일부 있었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스테이지 제일 앞줄과 중앙에 있던 남녀 두 쌍은 서로를 껴안은 채 부비부비(남녀가 서로의 몸을 밀착한 상태로 추는 춤)를 했다.

일부 남학생은 합석을 제안하며 여학생의 손목을 끌고 갔다. 짧은 치마와 핫팬츠를 입은 채 스테이지 양 옆의 봉을 잡고 허리를 흔들던 여학생들의 모습은 교복을 입고 수업을 듣는 학생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직원들이 입구에서 철저히 검사했지만 안에서 몰래 담배를 피운 학생들도 있었다. 남자화장실 바닥과 변기 옆 쓰레기통 안에서 담배꽁초 3개가 나왔고, 스테이지 바닥의 휴지 사이로 담배꽁초가 보였다. 김 대표는 “입구에서 검사를 해도 바지 안에 숨기는 학생들이 있다. 직원을 늘려 검색을 점차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클럽 안 남자화장실 바닥에 피우다 만 담배꽁초가 버려져있다.

클럽은 청소년을 위한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주변 상인 사이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시선도 해결해야 될 숙제다. 학생들이 클럽 주변에서 담배를 피운 뒤 꽁초를 아무데나 버리고, 소음공해가 심해 영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클럽 맞은편에서 1년 넘게 네일샵을 운영하는 양지원 씨(31)는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놀이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교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우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학생들이 자주 눈에 띈다”고 말했다. 양씨는 서울 마포구청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클럽 앞 골목이 금연구역이 아니라 직접 단속은 어렵고, 대신 금연 스티커를 붙여놓겠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청소년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성적 및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였다. 서울시는 청소년들의 문화공간을 조성하겠다며 인문학 강의, 기타 수업, 코인 노래방을 제공하는 청소년 문화공간을 만들었지만 반응은 좋지 않은 편이다.

반면에 청소년의 희망을 반영해서 만든 청소년 클럽은 지난 1월 개장 이후 연일 호황이다. 진정한 의미의 청소년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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