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화정평화재단·21세기 평화연구소
주제=평창올림픽 이후 한반도는?
일시=2018년 2월 19일(월) 오후 2시
장소=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사회=변영욱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연구위원
강연=현인택 고려대 교수(전 통일부 장관)

 

▲ 현인택 고려대 교수가 화정평화재단의 월례강좌에서 강연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축제의 막이 내려간 뒤에, 한반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과 21세기 평화연구소가 2월 19일 마련한 제8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는 평창올림픽 이후의 한반도 정세를 주제로 열렸다.

연사는 현인택 고려대 교수. 1995년부터 고려대에서 동아시아 국제정치와 한미관계를 강의하고 연구한 국제정치·북한 전문가다. 이명박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 대통령 통일정책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북한은 김정은 신년사를 기점으로 평창올림픽에 여러 카드를 내놓았다. 예술단원에서 최정예인 삼지연관현악단을 보냈고, 최고 실세라 꼽히는 김여정, 그리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및 통일전선부장인 김영철까지 내려왔다. 현 교수는 북한의 이런 평화공세(Peace offence)를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데자뷰(Dejavu)’다. 우리말로 기시감. 북한의 공세가 처음이 아니란 얘기다. 북한은 2014년 아시안게임도 최룡해, 황병서, 김양건 등 실세들을 보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폐막 3일 후에는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다. 현 교수는 이런 점에 비춰 평창올림픽 기간에 보인 북한의 공세가 남북관계 호전에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이 식을 줄 모르고, 미국 내에서도 선제타격론이 힘을 얻는 상황이다. 북한이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과거에 북한이 남북을 고리로 해서 위기에서 빠져 나간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평화공세를 폈는데, 사실 여러 번 해 온 것이라 신선함이 떨어진다. 게다가 우리가 경험적으로 (북한의 생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공세가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하이잭(Hijack’)이다. 폭력적 수단을 사용하여 항공기를 점거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미국이 북한의 공세를 하이잭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는 상황을 모면하려는 고육지책일 뿐이며 여기에 큰 의미를 두거나 끌려 다니는 등 ‘하이잭’되지 말아야 한다는 게 미국입장이라는 설명.
 
세 번째는 ‘파시(波市)’다. 생선이 많이 잡힐 때 바다 위나 어장과 가까운 항구에서 열리는 시장. 사람들이 몰려들어 잔치를 벌이지만, 시장이 파하면 쓰레기가 뒹구는 황량한 공터만 남는다. 현 교수는 평창올림픽 폐막 후 남북관계가 파시처럼 될까봐 우려된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상황이) 획기적으로 변할 거라는 착시현상에 빠져 있다. 그러나 여기서 깨어나야 한다. 강력한 대북제재가 우리 앞에 가로막혀 있고, 동시에 북한은 비핵화에 대해 한 발짝도 움직일 생각이 없다. 미국은 눈을 부릅뜬 채 군사적 옵션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지를 생각해야 한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 교수에 따르면 한반도는 세 가지의 중대한 위기상황에 놓여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거의 완성단계인 상태, 그렇기에 대응하기가 부족한 시간, 이에 대해 미국의 여론이 어떻게 모아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그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완성이 임박했고, 제재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상황은 위기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했다. 진짜 위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선제타격론에 미국국민이 동의하는 상황이라고 현 교수는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정부보다 국민 지지도가 낮아서 아무리 강경한 입장이라고 해도 국민지지가 없으면 (선제타격을) 할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국민이 북한을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 때려도 좋다고 합의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현 교수는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을 ‘삼파론(三波論)’으로 설명했다. 배가 큰 파도를 연달아 세 번 맞으면 침몰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는 얘기다. 한미 균열 심화, 북한의 도발 지속, 그리고 미국 내 여론의 합의.

“북한 도발은 최근까지 계속됐지만 한미동맹이 견고했기 때문에 상쇄됐다. 하지만 평창올림픽과 북한의 평화대공세를 계기로 한미 간에 균열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는 남북대화를 추진한다지만, 미국은 대북압박 분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미가 시각차를 보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 국제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떼를 쓸 가능성도 있다.”

▲ 화정평화재단의 월례강좌에서 참석자들이 강연을 듣는 모습

이런 상황에서 한국정부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현 교수는 강조했다. 북한에 끌려 다니지 말고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한국 정부는 냉정하게 훈련은 훈련, 대화는 대화, 이렇게 밀고 나가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완전한 비핵화다. 우리가 선 자리가 어딘지 확실히 파악한 다음에 (목표를 향해서) 냉철하게 전략적으로 한 발짝씩 나가야 한다.”

한반도 운전자론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서 대한민국이 소외된다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 논란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 사이에서 약소국인 우리가 힘의 균형을 맞춰 보겠다는 건 자칫 현실을 잘 모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한국이 운전대에 앉아 차를 좀 움직여보겠다는 게 원칙적으로 잘못된 일은 아니다. 우리 운명이 걸린 문제를 그냥 강대국 하자는 대로 내버려둘 수만은 없는 거 아니겠나.”

한국이 한반도 운전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현 교수는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국제적 눈높이다. 북한만 보는 일차원적 안목에서 벗어나 판을 더 크게 보고, 강대국이자 이 문제에 가장 깊이 개입한 미국과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는 주장. 또 한국이 독자적인 역량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제재와 인센티브인데, 현재 상태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제재 역량은 대부분 소진해서 남아있지 않다. 인센티브 역량은 국제사회의 제재 때문에 활용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우리가 풀 수 있지도 않다. 의욕만 있다고 운전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현 교수가 제시한 북핵 문제의 해결 방안은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와 완전한 비핵화의 교환이다. 빅딜(big deal)이 성공할 가능성은 바늘구멍만큼 작지만 마지막 남은, 단 한 번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레짐 체인지 포기가 인기 있는 방안은 아니지만,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언급한 건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있는 근거라고 분석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받기 어려운 거래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핵을 완성하더라도 미국은 결코 북한을 핵국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미국은 더 강력한 군사적‧외교적 제재로 맞설 거다. 그렇게 되면 북한 정권의 미래도 불투명해진다.”

그는 빅딜을 위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가장 중요한 전제는 정교한 로드맵이다. 남북대화, 미북 대화 등 어떤 대화를 어떤 순서로 할 건지, 경우의 수는 얼마나 되는지 파악해 상세한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미국과의 충분한 대화는 필수.

강연이 끝나고 참석자의 질문시간이 이어졌다. 미국의 중간선거가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옵션 사용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현 교수는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선거용이라는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이 ‘코피 전략’(약한 정도의 군사옵션)을 구사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변했다.

“코피만 나고 끝날 싸움이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군사옵션을 실행할 때는 이후의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또 군사옵션이 한반도에서 실행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 바람직하지 않다. 그 정도까지 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현 교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참석자들에게 던지며 마무리했다.

“과연 북한의 김정은은 앞서 말한 것을 해낼 정도의 정치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그 정도의 외교 능력이 있을까? 답을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한반도호는 지금 격랑 속에서 마지막 삼파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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