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임 모 씨(31)는 15년을 함께 했던 반려견 ‘못난이’를 작년 중순 보냈다. 아직도 개가 나오는 TV프로그램을 보지 못 한다. “난이는 제 눈물 지뢰에요.” 임씨 가족 사이에서 난이는 금기어다. “아버지가 고기 드시다가 우리 난이가 좋아하는 건데 하시면 제가 딱 노려봐요. 생각나게 왜 얘기 꺼내냐고….” 난이는 약 2년 간 자궁축농증과 유선종양 제거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종양이 재발했고 나이가 들면서 버티기 힘들어했다. 밥을 잘 먹지 않고 밤새 처절하게 울었다. “여기서 난이를 더 붙잡았으면 더 괴로웠을 거라고 합리화하고 있어요.”

<사례 2> “아직도 발밑에서 이오가 나올 것 같고 그래요.” 최현영 씨(39)는 13년간 함께 했던 반려견을 1년 전에 떠나보냈다. 이오는 1년간의 항암치료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마지막 1주일은 물 한 모금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최 씨는 결국 안락사를 결정했다. “가족이 힘들 때 웃음이 됐던 막내딸 같은 아이였어요. 사람과 시간표가 다른 작은 존재여서 늘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제가 절대 선택하지 않을 줄 알았던 결정을 내렸다는 게 고통스러웠어요. 스치듯 생각나면 아직도 너무 그리워요.”

▲ 경기 김포의 반려동물 장례업체 페트나라 납골당. 반려동물이 좋아하던 간식이나 장난감이 보인다.

반려동물과의 ‘영원한 이별’

‘코코야, 소풍 간 그곳은 어때?’,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뽀뽀라도 더 해줄걸….’ 경기 광주의 반려동물 장례업체 ‘펫포레스트.’ 납골당에 안치된 유골함 50여 개에는 반려인의 그리움을 담은 편지가 붙어있다. 반려동물이 좋아했던 장난감이나 간식, 반려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유골함 주변에 보인다.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강성일 씨는 “여기까지 오려면 1 시간 넘게 걸리는데 매일같이 납골당에 찾아오는 분도 있다”고 했다. 김포에 있는 또 다른 장례업체 ‘페트나라’에서는 반려동물을 화장하던 중이었다. 가족들은 분향실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화장장에 들어가는 반려동물을 유리창 너머로 지켜봤다. 체중에 따라 다르지만 장례에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 가족들은 한 줌의 재로 바뀐 반려동물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 죽은 반려동물의 염을 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분향실. 불교식과 개신교 또는 천주교식 등 두 군데로 구분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전국에 합법적으로 운영 중인 동물 장묘업체는 25곳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이명아 주무관(축산환경복지관)은 “장례업체를 통해 처리된 반려동물은 2016년 기준 약 3만 1000마리”라고 설명했다.

장례비는 반려동물의 무게나 수의, 납골함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5만~20만 원부터 시작한다. 대부분의 업체에는 납골당이 있다. 안치비용은 1년에 20만 원 가량이지만 업체마다, 또 어떤 단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유골을 집에 보관하거나 여러 형태로 바꿔 보관하는 반려인도 있다. “이오를 추억하고 싶었다”는 최 씨도 유골 중 일부를 반려석으로 만들어 간직한다. 반려석은 유골을 압축해서 만든다. 업체마다 모양이 다르고, 유골 부위마다 색깔이 다르다. 반려석을 이용해 목걸이로 만들 수도 있다.
 
이별 후유증,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

잘해야 15년 남짓 사는 반려견의 수명을 고려하면 이별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이로 인해 극심한 우울과 상실감을 느끼는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을 앓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한다.

김지혜 씨는 15년간 키운 강아지를 떠나보낸 뒤 “슬프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감정이 바닥까지 내려가는 기분이었다”고 표현했다. 신체심리전문가 국혜조 씨는 “반려견은 어린 아기처럼 심장박동수와 체온이 높다. 이 때문에 반려견을 잃게 되면 반려인은 내 아이를 잃었다고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펫로스 증후군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반려인은 반려견을 먼저 보낸 경험을 지인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강성일 장례지도사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들지만 정신과 상담조차 꺼리시는 분이 많다. 펫로스는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쉽게 이해받을 수 없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개 하나 죽은 거로 왜 그렇게 유난이야?”라는 식의 주위 반응이 반려인에게 더 큰 상처가 된다. 이 때문에 반려인은 슬픔을 혼자 극복해야 한다고 인식한다. 반려견이 죽었다는 슬픔에다가 주변 사람에게 이 슬픔을 공감 받지 못한다는 좌절감이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반려인을 더욱 고립시키는 셈이다.

▲ 반려동물 장례업체 펫포레스트의 납골당(왼쪽)과 반려석.


반려견의 죽음 후 반려인은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임 씨도 “하루는 왜 내가 아이를 지키지 못했을까 화가 나다가도, 다음 날엔 그래도 덜 고통스럽게 보냈다는 사실에 안도했었다”고 털어놨다.

슬픔의 무게는 가족 내에서도 다를 수 있다. 반려견과 맺은 관계에 따라 슬픔의 양상이나 치유과정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반려견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거나 투병기간을 가까이에서 지켜볼수록 충격과 슬픔이 크다. 최현영 씨는 “이오를 막내딸처럼 생각하신 부모님들이 나보다 더 힘들어하셨다. 이오가 떠나고 일부러 가족 여행을 자주 갔고 매일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씀드렸다”며 빈자리를 가족과 함께 채워나갔다고 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애도의 시간’

이런 상태에서는 반려견을 잃은 반려인이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도록 돕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국혜조 씨는 “애도는 내게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허용하는 것”이라며 “급격한 감정 변화 또한 자연스러운 것임을 주변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같은 펫로스 경험을 가진 사람끼리의 모임이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표현예술상담가 최하늘 씨는 주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펫로스 메모리얼 모임’을 주최한다. 그는 “반려견의 사진이나 물건을 가져와서 반려견과의 추억을 6~8명 정도의 사람들과 4시간가량 공유한다. 일종의 애도 작업”이라고 했다.

미국에선 이런 ‘펫로스 서포트 모임’이 여러 지역에서 열린다. 펫로스 증후군을 겪으면 반려견의 오랜 투병기간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국혜조 씨는 “펫로스 모임만으로도 타인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셈이므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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