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니 커다란 솜뭉치 같은 게 왔다 갔다 했다. 주인과 산책하는 대형견이겠구나 싶었다. 가까이서 보니 사진에서 봤던, 바로 그 얼굴이다. 오늘 만날 삽살개 리오. 이렇게 클 줄 몰랐다. 리오가 일어서니 키 160cm 가량인 기자의 어깨 바로 밑에까지 손이 올라왔다. 움찔했다.

주인 김다현 씨(26)가 옆에서 웃더니 간식을 내밀었다. “이거 먼저 줘보세요.” 기자가 간식을 들고 이름을 불렀다. 리오가 재빨리 앉으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리오는 김 씨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 가끔 간식이 들어있는 김 씨의 가방을 긁었지만, 20여 분간의 인터뷰가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 김다현 씨가 주는 간식을 먹고 있는 김 씨의 반려견 삽살개 리오. 올해로 두 살이다.

김 씨는 인터뷰를 하면서 리오에 대한 칭찬과 자랑을 늘어놨다. 집에서 절대 배변을 하지 않는다는 말에서부터 청삽살이는 털갈이 시기마다 털색깔이 흰색에서 청색으로 바뀐다는 내용까지.

자랑할 게 많은 리오를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을까. 김 씨는 2016년 6월, 리오 이름으로 인스타그램 계정(@sapsal_lio)을 열었다. 많으면 하루에 한 번, 보통 2~3일에 한 번 사진과 동영상을 올렸다. 삽살개 게시물을 올리는 이용자 중에선 팔로워 수가 많은 걸로 손에 꼽힌다. 인스타그램에서 리오를 보고 삽살개를 분양받은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하지만 김 씨는 삽살개란 견종을 대다수 사람이 알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삽살개는 경북 경산시에서 혈통을 지키는 우리나라 토종개다. 1992년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됐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은 리오가 삽살개라는 걸 모른다. 리오를 보고 삽살개가 이렇게나 큰 견종이었냐고 놀라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아는 게 적으니 관심도 떨어져

토종개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인에게 익숙한 존재였다. 앞마당 있는 집에 살던 시절엔 ‘우리 집 백구’ 또는 ‘동네 똥개’와 비슷하게 생겼다.

대표적인 토종개, 진돗개를 주인공으로 만든 콘텐츠는 한 때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다. 동화 ‘돌아온 진돗개 백구’는 어린이 도서 연구회 추천도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권장도서로 선정되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만화영화 ‘하얀 마음 백구’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인기리에 방영됐다. 백구를 주인공으로 만든 CD게임 ‘하얀마음 백구’는 10만장 이상 팔렸다.

하지만 토종개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관심을 갖는 건 둘째요, 어떤 견종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진돗개는 그나마 오래 전부터 이름을 알려온 터라 사정이 낫다. 삽살개 희로를 키우는 허안나(30) 김유철 씨(36) 부부는 “희로를 보고 잉글리쉬 쉽독 아니냐고 물어본다. 그만큼 삽살개에 대한 일반인의 지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한때 동경이를 키웠던 사람조차 동경이를 ‘아픈 진돗개’로 여겼다. 동경이는 진돗개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보다 꼬리가 짧다. 이경임 씨(52·주부)는 “어릴 적 아버지가 ‘됭갱이’라고 하며 데려 왔길래 꼬리가 잘못된 개라고만 생각했다. 올해 다큐멘터리를 보고 동경이가 토종개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삽살개와 동경이가 이런 정도니 제주개, 거제개, 바둑이 같은 다른 토종개는 말할 것도 없다.

일제 때 가죽으로 팔려나간 토종개

▲ 일제에 의해 학살당한 토종개. (출처: 삽살개재단 홈페이지)

토종개엔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깃들어있다. 최석규 동국대 교수(생태교육원)에 따르면 일본은 전쟁을 치르며 견피(犬皮)를 군인 방한복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39년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원피판매주식회사를 세워 조선에서 견피를 본격적으로 매입했다. 일본 토종개와 비슷하게 생긴 진돗개, 풍산개를 제외하고 유기견과 죽은 개의 가죽을 가져오면 견피 하나당 40전을 주겠다고 공고했다. 당시 80kg 쌀이 2원이었다.

삽살개재단 홈페이지에 따르면 1939~1945년에 100만~150만 마리의 토종개가 도살당해 방한복과 방한모 재료로 사용됐다. 최 교수는 그전까지 조선에 약 175만 마리의 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됐지만 조선원피판매주식회사가 세워진 후 토종개의 3분의 1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토종개는 일제 강점기를 시작으로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진돗개, 삽살개, 동경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있다. 각각 전남 진도군 산하 진돗개사업소, 삽살개재단, 경주동경이보존협회가 이들을 보호하며 혈통을 보전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진도군에는 1만 마리 넘는 진돗개가 있다. 삽살개와 동경이의 경우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400~500마리 가량이 보호받고 있다. 뚜렷한 증가세나 감소세는 없다.

다른 토종개를 찾기는 힘들다. 거제개가 대표적이다. 경남 거제 지역에 살던 개로 알려졌는데 1990년대에 보존 움직임이 있었지만, 꾸준히 이어지지 못했다. 정확한 자료가 없어 특징이 무엇이며, 개체 수는 어느 정도였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서울대공원에서 토종개 배우기 행사를 진행한 서울대공원 동물기획과 주무관 조지연 씨는 “(토종개에 대한) 확실한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리플렛을 만들 때 거제개 내용은 빠졌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토종개 보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토종개는 우리와 같은 문화권, 생활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특성과 맞는 개다. 느리고 여유로운 차우차우가 중국의 국민성을 보여주듯 토종개는 우리 민족의 성격을 보여준다.”

토종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틈을 타서 다른 견종이 인기를 얻는 중이다. 눈에 띄는 건 일본 토종개, 시바 이누다. 2016년 시로와 마로라는 캐릭터를 선보인 시로앤마로 측은 지난해에만 아리따움, 못된고양이, LG생활건강과 제휴해 상품을 출시했다. 현대백화점 대구점, 롯데백화점 잠실롯데타워점에 임시매장을 열기도 했다. 올해는 롯데제과와 협약을 맺었으며,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백화점과 번화가 일대에 임시매장을 마련했다.

시로앤마로 캐릭터만 인기를 끄는 건 아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페이지에는 시바 이누를 캐릭터로 만든 15개의 이모티콘이 있다. 토종개 이모티콘은 1개에 불과하다. SNS 게시글을 찾아보면 시바 이누와 한국 토종개의 인기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로 ‘시바견’과 ‘진돗개’를 검색하니, 2018년 2월 19일을 기준으로 게시글이 46만 건 대 29만 건이었다. 그나마 진돗개는 사정이 나았다. ‘삽살개’와 ‘동경이’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게시글은 각각 2만 7000건과 3000건에 그쳤다.

미디어 통한 홍보 필요

정부와 시민단체는 토종개 홍보에 힘쓰고 있다. 진도군의 진돗개사업소, 삽살개재단, 경주동경이보존협회가 체험행사를 만들었다. 시민이 해당 지역을 방문하면 토종개를 보고, 만질 수 있다.

반응도 나쁘지 않다. 진돗개사업소의 박서현 씨는 “진돗개 테마파크의 연간 방문객은 5만 명 정도”라며 “초등학생 아이를 동반한 부부가 테마파크를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삽살개재단 관계자도 “단체 체험학습 프로그램의 경우, 신청자가 1년에 5000명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그 지역에 가야만 토종개를 볼 수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토종개에 관심 있다는 임수영 씨(27)는 “방송프로그램에서 진돗개 테마파크가 나오는 걸 관심 있게 봤지만 진도에 있다길래 (직접 방문할) 마음을 접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 서보명 씨는 인스타그램(@duckgooislove)으로 진돗개 덕구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는 중이다.

견주의 생각은 어떨까. 경남 통영에서 진돗개를 키우는 서보명 씨(26)는 일반인이 토종개의 매력을 여러 매체에서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토종개니까 보호하고 키워야 한다는 식으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 충성심, 용맹함 말고도 진돗개가 가진 다양한 매력을 SNS나 기존 미디어를 통해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삽살개를 키우는 윤지환 씨(28)도 미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예능, 영화, 드라마에선 외국 견종이 많이 나오지만 토종개는 상대적으로는 소외되는 것 같다. 매체에 노출이 되고 알려져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삽살개재단과 한국동경이보존협회는 더 적극적인 홍보를 위해 법안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돗개는 1967년 제정된 ‘한국진돗개보호육성법’ 덕분에 정부 관리를 받고 있다. 삽살개와 동경이를 보호하는 법안은 아직까지 없다.

두 단체 모두 한국진돗개보호육성법을 ‘토종개보호육성법’으로 개정하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삽살개재단은 “홍보를 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하고, 교육을 해야 하지만 관련 비용이 없다. 아직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홈페이지 운영처럼 인터넷을 통한 홍보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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