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의회 대기실은 한산했다. 좌석 40여 개. 기자가 찾아간 2월 2일에는 동빙고동 주민 4명이 창가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가 행정위원회 제1차 회의시간을 알려줬다. ‘제237회 용산구의회 임시회.’ 바로 옆 게시판에는 ‘방청인 준수사항' 8항목이 공지됐다.

주민 이상권 씨(72)는 앉지 못하고 대기실을 서성였다. 정확한 방청시간을 알 수 없어서다. 이 씨가 방청할 복지건설위원회 제1차 회의시간은 모니터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는 지나가는 구의회 직원을 붙잡고 물었다. 담당 직원이 오전 11시 쯤 안내하겠다고 했다. 이 씨는 자리에 앉았지만 불안한 듯 계속해서 모니터를 살폈다.

이 씨는 청원심사에 관심을 갖고 처음 방청신청을 했다. ‘동빙고동 28번지 한남재정비촉진구역 존치요청에 관한 청원’이었다. 동빙고동 5구역 재정비를 일부 철회해 달라는 내용이다. 재산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방청을 신청한 4명은 청원심사에 불만을 가진 듯 보였다.

▲ 대기실 정면의 방청용 모니터와 방청인 준수사항.

오전 9시 50분. 행정위원회 회의시작 10분 전이었다. 이 씨는 조합장 선거문제로 구청 직원을 향해 열변을 토했다. 나머지 주민은 대기실 한쪽 구석에서 재건축 단장과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이 씨에게 방청 이유를 묻자 “세금이 잘 쓰이나 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대기실에서는 주민들이 박희영 의원(자유한국당)을 둘러쌌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청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 의원이 “청원은 아무나 할 수 있다”고 말하자, 주민들은 “의원은 못해요, 주민만 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

청원은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의 하나다. 제출할 수 있는 사항은 △피해의 구제 △공무원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한 시정이나 징계의 요구 △법률·명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 또한 폐지 △공공의 제도 또는 시설의 운영 △그 밖에 국가기관 등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 등이다.

지방의회에 청원을 하려면 지방의원의 소개를 얻어야 한다. 청원을 소개할 의원은 요건이 기준을 충족시키는지 확인하고 수리여부를 판단한다. 박 의원은 이날 청원을 소개한 의원이다.

기자는 복지건설위원회 제1차 회의방청을 신청했다. 담당 직원은 10분 전에 회의실 앞에서 기다라고 당부했다. 대기실에 도착하자 오전 11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1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주민들은 회의장소를 안내받지 못했다. 이들은 모니터 화면을 주시했다. 화면이 바뀌면 “시작 한거야?”라고 서로에게 물으며 앉았다 섰다를 반복했다.

방청담당 직원이 오전 11시에 다가왔다. 기자와 주민에게 출입증을 나눠주고 제2회의실로 안내했다. 상임위원회라서 회의장은 본회의장보다 작았다. 방청석 정원은 42명. 주민 4명과 의회직원 9명이 보였다. 기자는 왼쪽 구석 가장 뒷자리에 앉았다. 주민들은 첫 줄에 앉았다.

▲ 용산구의회 대기실.

회의 전에 김정준 복지건설위원회 위원장(자유한국당)이 방청석 앞으로 걸어와 주민과 인사를 나눴다. 복지건설위원회 소속 의원 6명이 모두 출석했다. 용산구의 최혁균 도시관리국장 등 질의에 답할 구청직원도 보였다. “회의를 속기하겠습니다.” 김 위원장이 법봉을 3번 두드리면서 회의가 시작됐다.

박희영 의원이 발언대에 섰다. 청원내용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재정비촉진구역 존치는 용산구의회 권한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원의 구체적인 내용과 경위를 읽었다. 실제로 재정비촉진사업 계획변경은 서울시를 통해야한다. “질의하실 의원님은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적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김경실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입을 열었다. 자료에 따르면 과거에도 비슷한 민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번 청원을 채택하면 재정비촉진사업 계획안을 전면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전면 수정해야 된대.”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가장 왼편에 앉은 이 씨는 조용하라는 뜻으로 검지손가락을 입에 댔다.

김정재 의원(자유한국당)은 지난 10년 간 제대로 일 한 게 맞냐면서 구청 직원들을 쏘아 붙였다. 땅 소유주 입장에서 이 같은 청원은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소유주와 긴밀히 접촉하라고 구청직원들에게 요구했다.

“소개하시면서 고심이 많으셨겠습니다.” 장정호 의원은 청원을 소개한 박 의원을 비꼬면서 질의를 시작했다.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비판이 이어졌다. 박 의원은 청원요건을 맞추기 위해 지역구 의원의 소개의견서가 필요했고,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맞섰다. 이어지는 지적에도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반박했다.

그러자 장 의원은 “질의자는 접니다! 답변만 하시면 됩니다”라고 발끈했다. 그는 주민 2인의 청원을 받아 소개한 사례를 처음 봤다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청원소개 의원이 쉽게 받아줬기 때문에 이해당사자인 주민들이 연이어 청원을 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장 의원의 지적은 주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주민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맞아, 맞아”하고 공감했다. 방청석이 웅성거리는 동안에도 의회역할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두 의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주민들 역시 흥분했다.

한 주민이 “맞습니다!”라고 말하자 장 의원은 위원장에게 방청석 제재를 요청했다. 대기실에 비치된 ‘방청인 준수사항’을 보면 회의 중에는 ‘의원의 발언에 대하여 가부의견을 표시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위원장이 의원발언에 대해 반응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자 방청석이 조용해졌다.

장 의원이 정회를 요청했지만 회의는 계속됐다. 고진숙 의원(자유한국당)이 마이크를 잡고 청원심의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의 지적이 잘못됐다는 얘기였다. 청원법 제12조를 근거로 들었다. “누구든지 청원을 하였다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거나 불이익을 강요 당하지 아니한다.”

고 의원은 “다수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소수가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청원을 소개한 박 의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질의가 끝나자 회의장에는 남성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정회하겠습니다.” 10분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주민 4명 중 2명이 회의실을 떠났다. 남아있던 1명은 박 의원에게 “청원을 걸러서 내야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이날 청원은 심사보류됐다. 다음 회기에 다시 논의해서 본회의에 상정할지를 결정한다. 청원법에 따르면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의회는 90일 이내에 처리결과를 청원자에게 통지해야 한다. 다음 임시회는 3월14일부터다.

회의가 끝나고 의원과 주민들이 회의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최 국장은 회의장을 나서며 이 씨와 나란히 걸었다. 방청이 어땠냐고 묻자 이 씨는 “도움이 많이 됐다”고 답했다. 최 국장은 “우리는 주민한테도 혼나고 의원한테도 혼난다”고 농담을 건넸다.

이날 황금선 의원(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모든 의원이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관련 자료제출을 요구하거나 현장답사가 있었는지에 대해 묻는 등 실효성 있는 논의도 오갔다. 청원자 본인은 참석하지 않았다.
 
지방의회를 직접 보니 의원들이 주민과의 소통에 적극적임을 느꼈다. 회의규모는 작았지만 주민청원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대기실에서는 주민과 친근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지방의회에서 주민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 셈이다. 그럼에도 방청주민이 4명에 그쳐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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