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주제=페미니즘, 어디까지 읽어봤니?
일시=2018년 5월 8일(화) 오후 6시 30분
장소=이화여대 캠퍼스복합단지(ECC) B146호
사회=김수경 이화여대 교수(호크마교양대학)
강연= 김주희(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강사) 차민정(이화여대 여성학과 강사)

▲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이 페미니즘을 주제로 마련한 북콘서트 현장. (출처=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페미니즘 도서가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중이다. 이 시점에서 고전은 현대인에게 어떤 답을 줄까.

이화여대에서 페미니즘 도서 ‘백래시’를 주제로 ‘북콘서트 페미니즘, 어디까지 읽어봤니?’라는 강좌가 5월 8일 열렸다. 김주희 강사는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에서 ‘성문화연구’를, 차민정 강사는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젠더와 여사’를 강의하는 중이다.

책 제목인 백래시(backlash)는 ‘반격’이라는 뜻이다. 미국 언론인 수전 팔루디가 1991년 출간한 책으로 1980년대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을 다뤘다. 팔루디는 이 책에서 미디어, 패션, 미용, 정치, 심리 등 여러 영역에서 나타난 반동을 관찰했다.

팔루디가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을 포착한 배경은 무엇일까. 김주희 강사에 따르면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작용했다. 여성해방운동의 성과와 이를 저지하려던 미국 신우파의 반동이었다.

미국의 1960년대와 70년대는 문화전쟁의 시대였다.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흑인해방운동, 반전운동, 동성애옹호운동 등 사회운동이 기존 규범을 비판하며 도덕질서에 도전했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무엇인가, 개인은 자신의 성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가족 구성은 어떠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사회갈등이 형성됐다는 뜻이다.

급진적인 여성해방운동은 기성체제를 무너뜨리며 일정한 결실을 거뒀다. 상원이 남녀평등헌법수정안(ERA‧Equal Rights Amendment)을 1972년에 통과시켰고, 대법원은 낙태를 1973년 합법화했다.

신우파는 1980년대 등장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으로 자신감이 떨어졌고, 남성성에 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수백만 명의 생산직 남성이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팔루디의 데이터에 의하면, 1980년대 백인남성이 유일한 소득원인 가구의 수입은 22% 하락했다. 전체 가구에서 백인남성이 유일한 부양자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8% 미만으로 떨어졌다.

가정 부양을 남자다움으로 보는 당시 사회는 남성성을 수습해야 했다. 위기가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됐고, 여성이 지목됐다. 그중에서도 여성의 경제적 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원인으로 비춰졌다.

차민정 강사는 낙태반대운동에도 주목했다. 이 운동의 열성분자는 분노한 젊은 저소득층 남성이었다. “태아의 생명권보다 가장으로서 결정권 후퇴, 자기의지로 낙태하는 여성에 대한 반감, 더 나아가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시작한 여성이 성적자유를 갖는 것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분노한 남성의 정체성은 문화전쟁 시기부터 공화당이 사용한 주요 선거 전략이다. 몰락한 백인노동자 남성계급의 분노를 선거에 동원하는 전략이다. 미국과학한림원(NAS) 유권자 인터뷰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던진 표는 경제정책 때문이 아니었다. 사회적 지위가 낮아지는 것에 위협을 느껴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을 선택한 유권자 대부분은 백인 기독교 남성이었다.

무너진 위신을 세우자는 움직임과 함께 보수주의자 레이건 대통령이 1981년 당선됐다. 그가 전형적인 우파기조를 내세우면서 진보적인 사회운동은 패배의 길을 걸었다. 제리 폴웰 목사는 ‘도덕적 다수’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중산층, 백인, 교육받은 사람에게 도덕성을 부여했다.

1970년대에 사회구조 문제를 얘기했던 사람들은 1980년대에 자기계발서를 읽고, 심리치료사를 찾았다. 또 사회가 제시한 규범적인 남성, 여성이 되기 위한 상품을 소비했다. “자기 안에서 안정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은 쓸쓸한 시기”라고 차민정 강사는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1980년대 미디어는 여성이 이미 모든 사회적 강제와 구속으로부터 해방됐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사랑받는 여성이 진정으로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남편감을 찾지 못해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여성, 가임기가 지난 여성, 페미니즘의 가르침에 따라 열성적으로 활동하다 아이와 적절한 유대를 맺지 못하는 여성의 실패담을 다룬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했다. 어떤 메시지든 페미니즘의 수혜로 해방된 여성이 무척 불행해졌음을 강조했다.”

책 ‘백래시’는 이렇게 여성운동의 성취를 돌려놓으려는 반격을 묘사한다. 반격이 여성의 일터에서, 여성의 몸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 통계자료와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했다. 저자가 보는 백래시는 언제나 여성 권리가 결정적으로 증진되기 직전에 찾아왔다.

김주희 강사는 백래시가 가진 의의로 ‘이름붙이기(naming)의 정치학’을 꼽았다. “뉴라이트는 여성의 권리 신장에 대한 백래시로 생명친화적, 순결친화적, 모성친화적, 가족친화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 프레임 아래에서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것은 반생명, 반가족주의적인 입장이었다. 팔루디는 이런 반격에 백래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자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얼마나 반동적이고 퇴행적인지 드러났다.”


한국사회에서는 법적투쟁을 통해 1970년대에 ‘성희롱’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단어가 생기기 전에는 성적으로 불쾌한 경험을 해도 행위를 명명할 단어가 없었다.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불쾌한 행위에 이름을 붙이자 직장 안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기제임이 드러났다.

책에 대한 비판도 있다. 김주희 강사에 따르면, 팔루디는 페미니즘 내부논쟁을 별로 다루지 않았다. 1980년대에는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논쟁이 ‘성 전쟁(sex war)’이라는 이름으로 촉발됐다. 포르노그래피와 성매매 논쟁이 대표적이지만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또 논의 범위가 백인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에 갇혔다. 김주희 강사는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는 주변화된 여성에게 절실하게 도달해야 한다. 낙태권리를 인정하는 판례는 1970년대 초에 나왔지만 실제로 빈민여성은 이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주희 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강연을 마쳤다. “여성을 고통스럽게 한 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사회가 불완전하게 평등하다는 사실이었다. 백래시는 여성성을 찬양하고, 여성의 영역은 가정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불평등에 대한 도전을 조롱 삼았고, 차별에 맞설 수단을 무력화했다. 하지만 백래시는 평등을 쟁취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기 때문에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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