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휴잇 (Don Hewitt) (출처=위키피디아)

“텔레비젼 세상에서 50년은 영원한 시간이다. 대부분 프로그램은 2, 3년이면 막을 내린다. ‘60 미니츠(60 Minutes)’는 2017~18시즌에 50주년을 맞는다.”

제프 페이거(Jeff Fager) 프로듀서가 쓴 책, ‘60 미니츠의 50년(50 years of 60 Minutes)’의 첫 단락에 나오는 말이다. 페이거는 현재 이 프로그램의 책임프로듀서다.

▲ 책 '50 years of 60 Minutes'의 표지.

널리 알려진 대로 ‘60 미니츠’는 미국 시사매거진의 전설이 됐다. 1968년 첫 방송을 낸 이후 무려 다섯 차례나 연간 전체의 TV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연 시청률 10위권에는 20차례를 넘게 진입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해마다 CBS방송사에 2000만 달러 이상의 순 수익을 안겨주는 효자다. 시사 프로그램으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공공의 이익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프로그램 철학의 결과로 보인다.

1990년대 초 우리나라 MBC에서 만든 ‘시사매거진 2580’은 이 프로그램의 철학과 포맷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60 미니츠’의 성공은 전 세계 TV 시장에서 시사매거진 프로그램의 융성시대를 열었다. 페이거는 이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으로 가장 먼저 돈 휴잇(Don Hewitt)을 지목한다.

“1965년 휴잇이 CBS 저녁뉴스 책임프로듀서 자리에서 잘리지 않았으면 ‘60 미니츠’는 탄생하지 못했다.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프로그램의 탄생과 제작기준, 가치관 그리고 지금까지 유지되는 장수유전자 등은 모두 당시 서른여섯이었던 휴잇 프로듀서가 마주했던 치욕스런 상황에서 비롯한다.”

휴잇은 1922년 생으로, 1942년 신문사 카피보이로 언론계 생활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군기자 경험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1948년 처음으로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던 CBS에 프로듀서로 입사한다.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방송 매체의 주도권이  넘어가던 1950년대 초부터 60년대 초 시기에 휴잇은 잘 나가던 피디였다. 새로운 진행방식의 고안이나 뉴미디어 기술의 창의적 사용 등에서 기념비적 업적을 많이 남겼다.

대표적인 예가 앵커(anchor)라는 용어를 TV뉴스 진행에 정착시키고, 화면 하단에 영상이 전달하는 상황설명을 제공하는 글자를 입력하는 자막(super)을 고안해 낸 일이다. 또 시사 프로그램 촬영에 두 개의 카메라 사용을 처음 시도해 영상제작의 품격을 크게 높힌 점도 그의 공적으로 알려져 있다.

케네디 대 닉슨 토론 프로듀서

휴잇은 특히 세계 최초의 대통령후보 TV 토론인 1960년 케네디와 닉슨 후보의 토론프로그램을 시카고에서 진행한 프로듀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962년부터는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가  보도국장으로 취임하며 30분으로 확장한 CBS 저녁뉴스의 책임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5년, CBS의 뉴스부문 사장으로 취임한 프레드 프렌들리(Fred Friendly)는 휴잇이 진중하지 못하다며, 저녁뉴스에서 그를 밀어낸다. 페이거가 얘기한 수치스런 상황은 이 사태를 의미한다.

60 미니츠 (60 Minutes)의 탄생

저녁뉴스를 떠나 다큐멘터리 분야를 책임지게 된 휴잇은 3년 정도 고난의 시기를 보낸다. ‘60 미니츠’ 프로그램에 대한 구상은 이 시기, 그의 고뇌가 집약된 결과물이었다. 처음 프렌들리에게 15분짜리 미니다큐 셋으로 짜여진 시사 매거진 아이디어를 건의했으나,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차가운 거절이었다.

그러나 프렌들리가 CBS 뉴스를 떠나고 딕 샐런트(Dick Salant)가 새 사장으로 오면서 휴잇의 프로그램 기획은 순풍을 만나기 시작한다. 드디어 1968년 그가 기획한 프로그램의 첫 방송이 시작됐다.

해리 리즈너(Harry Reasoner)의 단독 진행으로 시작한 ‘60 미니츠’는 시간이 지나며 마이크 월레스(Mike Wallas)를 보강하고, 몰리 세이퍼(Moley Safer), 에드 브래들리(Ed Bradley) 등 스타기자들이 함께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미국 텔레비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휴잇의 방송철학: Tell Me A Story

▲ 돈 휴잇 자서전 'Tell me a story' 표지.

돈 휴잇은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자신의 방송철학인 네 단어를 철저하게 제작양식과 스토리텔링에 결합시켰다. 그가 저널리즘을 실천하며, 평생 강조하는 네 단어는 ‘Tell Me A Story’였다. 그래서 2001년 자신이 쓴 자서전의 제목도 같은 네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시청자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에 반응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강력한 스토리텔링 교과서는 성경책이었다. 그래서 ‘60 미니츠’의 이야기 구조를 성경책 같은 이야기 방식으로 만들도록 기자들에게 요구했다. 그렇게 정착된 양식이 12분에서 15분 사이에 완결되는 이야기 구조였다.

휴잇은 이 시간을 넘기면 시청자의 주목도가 크게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세계적인 강연 프로그램인 TED의 시간구조가 이와 비슷한 점도 휴잇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방송도 글쓰기 (writing)가 핵심

휴잇은 프로듀서지만 항상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TV 프로그램의 생명이 글쓰기에 달렸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휴잇은 ‘60 미니츠’를 기획하며, 이전 미국 방송계를 지배해 오던 영상중심의 내러티브 진행방식을 완벽하게 뒤집는 제작원칙을 시도한다. 휴잇 원칙의 핵심은 글을 먼저 완성하고 거기에 영상을 입히는 방식이다. 다시 말하면 스토리를 먼저 정리하고, 영상을 부차적으로 덧붙인다는 뜻이다.

“‘60 미니츠’ 전에 미국 방송에서는 에드 머로우의 ‘See It Now’를 제외하고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영상에 단어를 입히는 방식으로 다큐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건 완전히 바보 같은 짓이었다. ‘60 미니츠’는 텍스트를 먼저 만들고 거기에 영상을 붙이는 방식을 사용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자막을 만드는 존재들에 불과할 뿐이다.”

휴잇이 자서전 2쪽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러한 철학은 그 뿌리가 방송 글쓰기에 대한 깊은 이해에 놓여있다. 그는 방송기자나 프로듀서는 언어를 가지고 의미를 전달하는 일을 잘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눈을 위한 글쓰기(writing for the eye)가 아니라 귀를 위한 글쓰기(writing for the ear)를 강조한다.

“대부분 사람은 텔레비전을 말하면, 눈을 생각하지만, 나는 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귀를 중시하는 글쓰기에 명료한 법칙은 없다. 그러나 50년 넘게 이일을 해오면서, 나는 두 가지 지침을 알 수 있게 됐다. 하나는 짧은 문장이 긴 문장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절대로 단어를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쓸데없는 부사, 형용사는 없는 게 낫다. 또 사람들이 평상시 말하는 방식그대로를 글로 옮기는 글쓰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귀를 위한 글쓰기 (writing for the ear)

휴잇은 늘 단어들이 자신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 가가 아니라 귀에 어떻게 들리는 지를 민감하게 느끼려한다. 왜냐하면 소리가 제대로 이야기를 전달하게 되면, 자연스레 거기에 맞는 영상을 찾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이 합당한  반증이, 휴잇에 따르면 ‘60 미니츠’ 프로그램은 라디오로만 들어도 충분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휴잇은 글쓰기가, 다시 말하면, 소리로 전달되는 단어들이 시청자를 사로잡고, 또 그들을 이야기에 묶어두는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흥미롭게도 휴잇에게 방송 글쓰기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가르쳐 준  사람은 그를 해고한 프렌들리였다.

“프레드 프렌들리는 여러 가지 문제에서 나와 생각이 달랐다. 그 인간이 나를 저녁뉴스에서 잘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법을 가르쳐 줬다(how to tell stories). 그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역시 휴잇 자서전에 씌여진 말이다.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하지 마라

휴잇이 강조하는 ‘60 미니츠’의 또 다른 성공비결은 진실을 추구하는 경건한 자세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60 미니츠’ 팀에는 5명의 출연기자(senior correspondent) 를 포함해 모두 100여명의 기자와 프로듀서, 촬영, 편집기자가 일한다.

페이거에 따르면 간접지원인력을 포함하면 전체 인력은 200명에 달한다고 한다. 휴잇은 그 가운데 선임프로듀서를 한 사람 지정해 방송이 나가기 전에, 편집된 방송내용과 취재했지만 사용되지 않은 원본 녹화 테이프를 비교 검토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했다.

특히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이 하는 말이 맥락에 맞지 않게 인용되지는 않았는지를 철저하게 확인하도록 했다. 취재팀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현실을 왜곡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려는 조치였다.

“절대로 알면서 진실을 왜곡하는 일은 하지마라. 이는 기자들이 반드시 지켜야하는 법칙이다. 나머지는 부차적인 일들이다.” 이 또한 그의 자서전에 쓰여진 말이다.

“기자들이 방송이나 신문 가릴 것 없이 지켜야 하는 또 다른 원칙은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점이다. 이 충고를 지키려 노력해 보라. 그러면 일이 잘 풀려갈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휴잇은 2002년 81세에 ‘60 미니츠’ 책임프로듀서 자리를 물러난다. CBS 프로듀서로 54년을 일한 셈이다. ‘60 미니츠’에서만 35년을 근무했다. 그 뒤 고문으로 2009년 사망 시까지 직을 유지했으니 평생 저널리스트라 할 만하다. 유튜브에서 Don Hewitt과 Open Mind 또는 American Masters라는 키워드를 치면 휴잇을 만날 수 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