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 2학년 권선영 씨(20)는 시험을 보다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오른손잡이 기준 책상에서 글씨를 쓰기 위해 몸을 기울여야 했기 때문이다.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불편한 자세로 있어 허리에 무리가 온 탓이다. 그는 부정행위로 의심 받을까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왼손잡이라면 대부분 한 번씩 겪는 경험이다.

영국 ‘왼손잡이 협회(Left-Handers Club)’에 따르면 전 세계 왼손잡이 비율은 약 10%고, 한국갤럽에 따르면 우리나라 왼손잡이 비율은 만 20세 이상 3.9%다. 10% 이하의 적은 수치가 왼손잡이도 다수와 구별되는 ‘사회적 소수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엔 장애인용 화장실, 여성 전용 주차장처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설들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왼손잡이는 약자라고 여겨지지 않아 배려 시설은 찾기 힘들다.

단어의 어원부터 차별이 드러난다. 오른손의 ‘오른’은 ‘옳은’에서 유래했고, 왼손의 ‘왼’은 ‘마음이 꼬여있다’라는 뜻을 가진 ‘외다’에서 왔다. 그 밖에도 왼손으로 밥을 먹는 왼손잡이에게 “예의 없다”라고 하는 등 언어 차별부터, 왼손잡이를 배려하지 않는 도구와 시설까지 종류는 다양하다.

‘왼손은 언제 사용하나요?’ 오른손잡이 위주의 대학교

▲ 이화여대 열람실 학생증 리더기와 자판기 현금투입구, 모두 오른쪽에 있다.
▲ 이화여대 학관 대형 강의실에 배치된 오른손잡이 기준 책상

왼손잡이 차별은 대학에도 있다. 대학 도서관과 기숙사 학생증 리더기, 무인 주문기 현금 투입구는 대부분 오른쪽이고, 일부 세면대 옆 손 세척제도 마찬가지다. 이화여대 2학년 정윤지 씨(22)는 “학관 대형 강의실이 제일 불편하다. 특히 시험 볼 때 글씨를 많이 써야 해서 오래 사용하면 허리가 아프다”라고 호소했다. 이화여대 학관 강의실 책상은 의자 오른쪽 손잡이에서 꺼내 사용하는데, 크기가 작아 왼손잡이가 글씨를 쓰려면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야 한다. 한양대 강의실과 한림대 강당도 같은 구조다. 

▲ 경복대 지성관 엘리베이터 외부·내부 버튼은 모두 오른쪽에 있다.

경복대 유아교육과 임채운 씨(19)는 “엘리베이터 버튼, 화장실 휴지걸이와 휴지통이 모두 오른쪽이라 문제”라고 말했다. 기본적인 시설에도 왼손잡이 배려는 보이지 않았다. 일반 대학교 사물함 손잡이는 대부분 왼쪽에 있어 오른손잡이는 문을 수월하게 열 수 있지만, 왼손잡이는 문이 몸 쪽으로 열리기 때문에 불편하다. 한림대 재학생 권선영 씨(20)는 기숙사 카드 리더기와 컴퓨터실 마우스가 전부 오른쪽에 있어 불만이다. “(기숙사 카드키 찍는 기계와 같은) 개찰구는 지하철도 그렇고 다 오른쪽이다”라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임 씨는 수업 도구를 지적했다. 그는 교구를 따로 준비하기 번거로워 학과 사무실 가위를 빌리는데, 전부 오른손잡이용이라고 설명했다. 학교가 소수인 왼손잡이 학생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다른 학생들도 학과실이나 행정센터에서 가위를 빌리지만, 대부분 오른손잡이라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한양대 백건우 씨(20)는 학교 수업의 운동 도구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글러브와 골프채는 전부 오른손잡이용이다. 그는 “농구 수업 땐 많은 교수님이 오른손잡이기 때문에 왼손잡이 학생을 가르칠 수 없어 혼자 연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4명 모두 오른손잡이 기준 시설과 도구에 익숙해졌지만,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 씨는 가위 등 왼손잡이용 도구 마련, 백씨는 일부 시설 개선, 정 씨는 강의실 책상 교체를 희망했다. 권 씨는 “공부를 하는 왼손잡이 아이들을 위해 왼손잡이용 수업 도구 등 배려 시설을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부족한 문제의식과 변화 필요성, 대학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만연하다

대학 측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을까. 이화여대 강의실지원센터 시설관리직원 안등용 씨는 “앞으로 양손잡이 모두를 고려한 시설 설치를 항상 염두에 두겠다”라고 답했다. 문제가 있던 학관 강의실 책상은 고정된 책걸상이 배치된 대강의실을 제외하고 왼손잡이도 편히 사용할 수 있도록 2015년 전부 교체됐다. 부경대학교, 성공회대학교, 광주보건대학교는 왼손잡이용 책상을 마련해 왼손잡이도 편리하게 시험을 보게 했다. 2003년 5월 3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부경대 물리학과 김성부 교수가 왼손잡이 배려를 요구하는 글을 작성했고, 학교는 의견을 반영해 왼손잡이용 책상을 마련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왼손잡이 학생이 겪는 불편함과 관련된 문제가 공론화된 적이 없다.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건 사회도 마찬가지다. 2003년 정몽준 전 국회의원이 대부분 오른손잡이용 책상이 배치된 대학 강의실을 보고 왼손잡이 용품을 생산하거나 설치하는 기업에 세금 감면을 해준다는 ‘왼손잡이 지원법’을 발의했으나 폐기됐다. 2005년 ‘한국왼손잡이협회’가 협회장 건강 문제로 활동이 중단된 이후 왼손잡이 권익 증진 활동은 전무하다. 부정적 인식도 여전하다. 2002년 한국갤럽의 왼손잡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자녀가 왼손잡이라면 오른손으로 바꾸게 할 것’이라는 응답이 38.2%를 차지했다. ‘NextShark’와 같은 서구 언론에서도 한국에서의 왼손잡이 차별이 심각함을 지적할 정도다.

서양에선 이미 다양한 변화 시도, 한국은 아직?

광주보건대 강미희 교수가 국회공청회에서 발표한 ‘왼손잡이 불편사항 해소방안’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1960년, 프랑스는 1930년부터 왼손잡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학자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왼손잡이 편견으로 인해 그들에게 발생하는 부작용(말더듬이, 우울증, 학습장애 등)을 연구한 결과다. 사회는 이를 바탕으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불편함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왼손잡이 가위 사용, 왼손만 사용하는 게임 등 왼손잡이 생활을 체험해보는 행사 같은 활동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한국은 관련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사회적 논의가 힘들다.

▲‘왼손잡이용 가위’ 검색 비교. 서양에선 전문 사이트에서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볼 수 있지만, 한국엔 판매 사이트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상품만 판매하고 있다. (사진=‘leftyslefthanded’)

서양과 한국 매장에서 판매하는 왼손잡이용품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우리나라에선 왼손잡이용품을 찾기 어렵다. 대부분 수입 제품이라 비싸고, 그나마 있던 왼손잡이용품 매장도 대부분 경영난으로 사라졌다. 한국 포털 사이트에 ‘왼손잡이용◯◯’을 검색하면 한정된 상품밖에 없다. 이런 상황 탓에 대학에서도 왼손잡이 배려 물품이나 시설을 배치하기 어렵다. 반면 서양에는 왼손잡이용품 전문 매장이 많아 다양한 상품을 구매 가능하다. 

서양 교육에선 왼손잡이 학생을 위한 여러 노력을 시도했다. 미국 Beloit 공립학교, 캐나다 Ontario 공립학교 등 서양 학교에선 학기 초에 학생이 어느 손을 주로 사용하는지 조사해 그에 맞는 자리 배치와 수업지도를 한다. 특히 캐나다는 왼손잡이 비율을 고려해 대학 강의실 책걸상 10%를 왼손잡이용으로 배치했다. 초등학교에는 오른손 사용 강요 금지, 왼손잡이용 교과서 보급 등 제도적 조치도 취한다. 학교 수업에서 왼손잡이 학생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한국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서양의 다양한 제도적, 사회적 변화는 왼손잡이를 향한 올바른 인식이 바탕이 돼 나온 결과다. 지금도 왼손잡이 연구와 권리 증진 운동이 활발한 반면 한국에선 왼손잡이 편견과 인식 부족이 만연하다. 한국 왼손잡이 협회를 창립한 강 교수는 이를 가리켜 “왼손잡이가 겪는 불편함에 대한 인식 부족과 재정상의 문제로 (왼손잡이용)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왼손잡이에 대해 올바른 인식과 관심을 가질 때 사회에서 왼손잡이도 함께 살 수 있지 않을까. 또 다른 소수자인 그들을 위해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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