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잃었다. 엄마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맞벌이를 하느라 유치원에 가는 아이의 등을 떠밀고 모질게 대했던 스스로를 떠올리며 자책한다.
 
상점주인은 사고가 일어나던 시각에 별 모양의 브로치를 달았던 아이가 앞을 지나갔다고 중얼거린다. 엄마는 캠프 가던 날, 아이 옷에 묻은 초코시럽을 지우던 순간을 떠올리며 상점주인이 브로치로 착각했다고 생각한다.
 
실낱같은 희망을 가슴에 품고 엄마는 날마다 아이를 찾으러 길을 돌아다닌다. 하성란 작가(52)는 씨랜드를 다룬 소설에서 이 부분을 가장 강조하고 싶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하 작가는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풀>로 등단했다. <별 모양의 얼룩>은 2002년 발간된 소설집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에 수록됐다.
 
▲ 하성란 작가의 소설집 (출처=예스24 홈페이지)
그는 캠프를 준비하던 아이의 엄마였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씨랜드 화재가 기억에서 흐지부지 되겠다는 생각에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길을 잃고 어딘가를 떠돌아 다녀서 언젠가는 자기 곁으로 돌아올 거라는 생각. 이런 마음이 아이를 잃은 엄마의 깊은 절망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씨랜드 화재, 세월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를 엄격한 의미에서 재난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천재지변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잃는 경우와는 다르다는 말이다.
 
원인을 누가 제공했는지를 살펴보면 인재(人災)의 성격이 강한데, 재난이라고 뭉뚱그려서 표현하면 책임을 회피하려는 느낌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희생자와 피해자라는 용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희생자라는 표현 뒤에는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죄의식, 반성이 들어있다는.
 
▲ 하성란 작가의 모습 (사진제공=하성란 작가)
하 작가는 여러 인재를 보면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의 비인간성을 느꼈다. 이 땅에 수많은 전쟁과 죽음과 잘못된 역사가 있고, 그 위에 우리가 살아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밑에 이름 모를 뼈들이 묻혀있기 때문인 거죠. 그들의 죽음에 한 발자국 담그고 살아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들의 죽음에 우리 삶이 빚지고 있는 거죠.”
 
작가의 눈빛은 단호했다. 우리의 삶과 그들의 죽음이 동떨어지지 않았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게 내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그 배에 내가 탈 수 있었고 그 희생자가 내 아이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러면 그냥 단원고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예요. 내 아이 문제로 다가와요.”
 
어느 순간 인터넷 댓글에 ‘아직도 때 지난 재난 이야기를 하느냐’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작가는 느낀다. 이렇게 피곤하다는 말에 대항하기 위해 그는 기록을 하려고 한다.
 
기억하면 바뀔 수 있다, 아이들의 죽음의 대가가 너무 크지만 헛되지 않게 하는 방법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고 작가는 말했다. 앞으로 그가 세월호와 위안부 할머니를 이야기를 기록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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