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학교에 도착하니 교무주임이 뛰어 들어왔다. 다리가 끊어졌는데 안전하게 왔냐고 물었다.

TV를 틀었더니 성수대교 속보가 계속 나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학교에 출근하며 매일 오가는, 방금 전에 건넌 다리가 무너졌다니.

서울 성동구 무학여고의 이대영 교장은 당시 강남구 압구정고에 근무했다. 비가 와도 학교행사를 계속한다고 알리려고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오면서 사고를 피했다.

사고로 49명이 추락해 32명이 숨졌다. 이 중에서 8명이 무학여고 학생이었다. 이 교장은 무학여고에 부임하면서 해마다 추모제를 열었다. 어른이 아니라 학생이 중심이 되어 희생자를 기리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작년에는 사고보다 조금 앞선 10월 16일 찾았다. 학생회장 오지영 양은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라 실감하지 못했지만 위령비를 방문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희생자와 유족의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느꼈다”고 말했다.

▲무학여고 교직원과 학생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모습(출처=무학여교)

학생회 부회장인 한은서 양은 학원을 가며 성수대교를 매일 건넌다. 추모제에 참석한 후 다리를 지날 때 마다 위령비를 바라본다. 접근하기 쉬운 곳에 위령비가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기억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성수대교 시공사인 동아건설은 사고 이후, 무학여고에 위로금을 지급했다. 학교는 이 기금으로 성적이 우수한 신입생 6명, 재학생 6명에게 장학금을 준다.

이 교장은 “위로금 이자로 장학금을 지급하는데 많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장학금을 통해 성수대교 사고를 되새길 수 있어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무학여고는 글짓기와 그림그리기 대회를 통해 선배를 기리는 시간을 갖는다. 수상작은 학교 복도에 게시하므로 전교생이 감상한다.

강민아 양은 2017년 추모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사고 당시 무너진 다리를 재현했다. 그림에서는 무학여고 가디건을 입은 학생이 다리 일부를 들어 올린다. 선배들의 아픔을 기억하자는 의미.

▲ 추모대회 은상을 받은 강민아 양의 작품

강 양은 기사에서 그림의 영감을 얻었다. 위령비가 외진 곳에 있어 추모객이 찾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끊어진 다리, 끊어진 마음, 끊어진 발길…’은 점점 잊히는 성수대교 사고에 대해 안타까움을 보여준다.

강 양은 “의미 있는 대회에서 상을 받아 기쁘다. 그림을 통해 무학여고 학생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성수대교 사고를 기억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 교장은 추모행사를 계속할 계획이다. 퇴임하면 개인적으로 위령비를 찾겠다고 했다. 학생회장단은 작은 추모공간을 교내에 마련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25년이 됐지만 여전히 기억하려는 모습에서 기자는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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