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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났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장영희 교수 10주기

기사승인 2019.05.09  22: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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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냈다. …내가 ‘살아온 기적’이 당신이 ‘살아갈 기적’이 되기를.”

5월 9일, 오늘은 장영희 서강대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오후 6시 반, 서강대 마태오관 9층 리셉션홀에서 장 교수 10주기를 맞아 추모 낭독회가 열렸다. 이해인 수녀의 추모사와 장 교수의 글을 낭독하는 자리었다. 

▲ 추모시를 낭독하는 이해인 수녀


가장 앞 테이블, 자리 하나가 비어있었다. 장 교수의 자리다. 친오빠인 장병우 현대 엘리베이터 대표(74)는 “영희가 이 자리에 와있다고 굳게 믿는다”고 자리를 비운 이유를 설명했다. 

객석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분위기는 따뜻했다. 영문과 교수이자 훌륭한 수필가가 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고인이 남긴 따스함은 여전했다.

장 교수는 태어난 지 1년 만에 소아마비를 앓았다. 두 다리를 쓰지 못해 목발과 늘 함께했다. 그러나 신체적 장애는 장 교수를 가둘 수 없었다. 

그는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조카 김건우 씨는 “이모가 몸이 불편하신데도 홀로 미국으로 떠나신 걸 알고 놀랐다. 이모를 생각하며 항상 강해지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을 ‘천형’은커녕 ‘천혜’의 삶이라고 장 교수는 이야기했다. 이해인 수녀는 “장 교수가 명랑의 덕목을 알려준 멘토 같은 사람”이라며 “아픔을 즐기고 좌절하지 않는 밝은 모습이 그립다”고 말했다. 

▲ 장영희 교수의 생전 모습 (출처=연합뉴스)

장 교수는 1985년부터 서강대 교수로 재직했다. 학자로서, 교수로서의 삶이 늘 순탄하지는 않았다. 건강이 문제였다. 2001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그 암이 3년 후에는 척추로, 7년 후에는 간으로 전이됐다. 간암 진단을 받은 다음 해 봄, 장 교수는 세상을 떠났다.
 
서강대 영문학과에서 그는 <19세기 미국문학> <영문학개론> <번역연습>을 가르쳤다. 학생에게 쉬운 과목은 아니었다. 내용이 어려웠고 퀴즈와 과제 역시 많았다. 

하지만 학생 사이에서 장 교수는 ‘사랑은 공평하게, 학점은 공정하게 주시는 분’으로 통했다. 수업을 들었던 장동준 씨(영문과·93학번)는 “(교수님께) 사랑을 많이 받았고, 항상 제자들을 특별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강대는 2012년 9월, 정하상관 315호를 ‘장영희 강의실’로 지정했다. 영문학과 강의를 가장 많이 하는 곳이다. 교수에게서 강의실 이름을 정한 서강대 최초의 사례다. 

현판에는 이렇게 나온다. 서강과 제자를 사랑하신 故 장영희 교수(1952~2009)의 아름다운 마음을 기리고자 이 강의실을 장영희 강의실로 명명합니다. 

▲ 서강대 장영희 강의실

제자들을 아낀 장 교수의 마음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유가족이 장 교수의 퇴직금, 조의금, 인세를 모아 서강대에 3억 5000만 원을 기부했다. 서강대는 이 기금으로 학기마다 3명에게 ‘장영희 장학금’을 지급한다. 

학생은 장학금을 받으면 장 교수 가족에게 편지를 쓰고 식사를 함께 한다. 2017년 2학기에 장학금을 받은 윤지우 씨(23)는 “가족분들이 (교수님의) 의지를 이어가려고 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저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생전에 장 교수는 <내 생애 단 한번> <문학의 숲을 거닐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같은 수필집을 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책이다. 1981년에는 한국번역문학상을, 2002년에는 올해의 문장상을 수상했다. 

장 교수의 대표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지난달 100쇄를 돌파했다. 출판사 샘터는 이를 기념해서 새 양장본을 선보였다. 

또 장 교수 별세 10주기를 맞아 <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를 출간했다. 장 교수의 글 가운데 독자의 사랑을 받은 문장을 묶은 책이다. 샘터 김성구 대표는 “장영희 교수님이 아직 우리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다는 그 자체가 기적이며 희망”이라며 “우리 시대에 이런 분이 계셨다는 생각만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윤하 기자 storyofseoul2017@gmail.com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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