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이 1시간 반 정도 지나서 끝나자 태영호 전 공사는 질문을 받았다. 다양한 학생이 참석한 점을 감안해 사회자(송상근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기회를 골고루 주려고 했다.

- 다른 공산국가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유일 지배체제가 북한에서 완성된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역사적 발전, 국제공산주의 경험, 한국과의 체제경쟁에서 열세에 처했다는 위기의식이 세습체제를 만드는 데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해방 직후 역사적 상황에서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기 쉬웠을 거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이유를 물었다. 어느 학생이 토지정책 때문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와, 진짜 잘 아네! 공산주의를 잘 아네!”라고 감탄했다.

“소련과 중국이 싸우는 가운데 김일성은 자주를 외치며 내부지지를 얻은 셈이다. 그렇게 얻은 힘을 토대로 자신의 정적을 100% 제거했다. 어떠한 반대파도 없는 정치적 환경을 만들어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줬다.”

-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처는 어떻게 평가하나.
“한미당국은 발사체라고 말했다. 탄도미사일이라고 규정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자동상정되고 새로운 제재결의가 이행될 수 있어서다. 이번에는 미사일과 방사포를 섞어서 쐈다. 군사 기술적으로 엄중한 상황인데, 국민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연 다음 날(9일), 북한은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지난 4일에는 단거리 발사체를 쏘았다. 군 당국은 9일 발사된 무기를 단거리 미사일로 평가했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와 군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북한은 미국의 한계점이 어딘지 확인하고 다음 회담 방향을 준비하려는 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괄타결을 말하지만, 북한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안다. 북한은 미국이 어느 정도 물러설지 간을 보는 거다.”

- 내부와 외부를 철저히 통제하는 북한 체제는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나.
“김 씨 일가의 영위를 보장하는데 모든 국가 목적과 이유가 있다. 국가존립만 생각하면 러시아가 제안한 가스관과 철도 연결, 중국이 제안하는 고속도로 연결을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과 물자가 오가면 체제 유지가 안 되기 때문이다.”

태 전 공사는 도로가 연결되면 차가 밀려들고, 북한주민이 외부사람을 만나는 상황을 가정했다. “힘들게 논을 갈고 있는데 버스 타고 온 한국사람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래서 체제 유지를 위해 외부의 정보를 차단한다. 비교와 선택 개념이 생길까봐다.”

그는 더 쉬운 비유를 들었다. 아침으로 죽밖에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죽을 먹어도 괜찮지만, 피자를 먹을 수 있는데 피자가 없으면 화를 낸다는 뜻이다.

- 북한에 장마당이 들어왔다는 기사를 봤다. 어떻게 체제를 유지하는 건가?
“공포정치다. 사형제가 있는 나라는 많지만 공개처형하는 나라는 북한뿐이다. 장마당이 북한에 440개 정도로 늘었다. 김정은을 신처럼 여기지 않는 의식이 확대된다고 한다. 인구의 70%가 생계를 장마당에서 유지하는데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는 공포심 때문이다.”

그는 중국의 천안문 사태처럼 공산주의 정권이 수많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였던 사례를 들었다. 인간이 가진 공포심을 극대화하면 집단 봉기가 일어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 북한 체제가 쉽게 붕괴되지 않을 텐데 통일은 어떤 방향으로 가능할까?
“체제 변동(regime change)뿐이다. 김정은은 북한이 민주화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 전체가 끝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반인륜범죄는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다룰 문제다. 어릴 때부터 유럽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김정은도 안다.”
 
거대한 건축물에서 벽돌이 하나하나 빠지면 결국 무너진다.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을 써야 한다고 태 전 공사는 말했다. 서독이 국경을 열어 달라고 오스트리아에 요구해 동독인이 서독으로 탈출할 흐름을 만들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가 강조한 방식은 북한붕괴보다는 탈출이다. 현시점에서는 많은 사람이 탈북하고 대한민국에 정착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가정형 탈북이 늘었다. 아버지가 한국에 정착해 딸을 데려오고, 다음에는 둘이 돈을 벌어 엄마를 데려오는 식이다. 한 사람당 약 20명의 가족이 북한 정권에 등을 돌리고, 이런 흐름이 계속 되면 김정은 시스템은 한계에 이르고 변화가 생긴다.”

▲ 태 공사가 주요 참석자와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최지향 교수, 홍성욱 사무처장, 태 전 공사, 최대석 부총장, 송상근 교수, 유동열 원장.

강연이 끝나고 태 전 공사는 프런티어저널리즘스쿨 교수진과 저녁장소로 옮겼다.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 역시 추가취재를 위해 자리를 함께 했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태 전 공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 북한에서 전력은 어떻게 공급되는가.
“평양 아파트는 높고 화려하지만 전력부족으로 시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50층짜리 고층 아파트도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시간이 하루에 두 번, 30분씩이다. 그마저도 25층까지만 운행한다. 25층부터 50층까지는 걸어 올라가야 한다.”

- 공포, 폭압 정치가 이어지면 어느 순간 한계가 오지 않을까.
“내부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70년 이상 갈고닦은 수령체제는 생각 이상으로 견고하다. 경제적 어려움이 정치적 변화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은 “북한체제가 붕괴할 수 있는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는 음식이 나오자 많이 먹지 못한다고 했다. 경호팀과 항상 차로 다니므로 걸어 다닐 일이 없어 적게 먹는 수밖에 없다.

-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이 있을 텐데 힘을 모으면 붕괴가 빨라질 수 있지 않나.
“외국문물을 경험한 사람은 의식화까지는 된다. 북한체제의 부당함과 괴리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끼리의 조직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상호견제 시스템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기가 어렵다.”

점(點)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선(線)으로는 연결되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서 북한에 불만을 느끼면 체제내부에서 저항하기보다는 태 전 공사처럼 뛰쳐나오는 방식을 택한다.

실제로 태 전 공사는 탈북민 출신의 주성하 기자(동아일보) 글을 보고 망명을 꿈꿨다. 그는 2016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 정권에 몸담던 시절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주성하 기자 블로그)’를 읽으며 자녀들과 함께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선택해서 대한민국에 왔다. 지금은 하나의 점(點)이지만 많은 이가 동참하면 선(線)이 된다. 분단의 선(線)을 허물 새로운 선(線)이 생길까. 가능하다면 언제, 어떤 모습일까. 특강을 취재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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