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는 모자이크가 생명이다. 가려야만 관객을 만난다. 2월 23일 대한극장에서 ‘님포매니악 볼륨2’(감독 라스 폰 트리에)를 재상영했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를 뿌옇게 처리하고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뒤였다. 원본은 두 번이나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영화등급은 전체 관람가, 12세 관람가, 15세 관람가, 청소년 관람불가로 나뉜다. 제한상영가는 청소년 관람불가보다 표현수위가 높다. 전용상영관이 없으니 사실상 개봉하기 힘들다. 이런 판정이 나오면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으려는 이유다.

어떤 영화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을까. 기준은 7가지다. 주제, 선정성, 폭력성, 대사, 공포, 약물, 모방위험. 주로 선정성과 폭력성에서 걸린다. 이 중 1개라도 ‘매우 높음’이면 제한상영가 가능성이 크다.

제한상영가 영화는 2014년에 가장 많이 나왔다. ‘즐거운 사라’(프랑스)와 ‘그 여름의 정사’(이탈리아)가 선정성에서 ‘매우 높음’ 판정을 받아 개봉에 실패했다.

‘님포매니악 볼륨2’는 선정성이 매우 높음이었다가 높음으로 조정되자 18세 관람가로 개봉했다. 같은 감독의 최근작 ‘살인마 잭의 집’은 폭력성을 포함한 4개 영역이 모두 높았지만 ‘매우 높음’은 없어 제한상영가로 분류되지 않았다.

▲ 영화등급 평가표(출처=영상물등급위원회)

제한상영가 등급은 2002년 생겼다. 작년까지 17년간의 추이를 살폈다. 눈에 띄는 부분이 보였다. 제한상영가 영화 편수가 작년에 하나도 없었다. 처음이었다.

이에 대해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등급분류부 이종화 팀장은 “아직 분석 자료는 없지만 제한상영가 영화가 줄어드는 추세다. 사회문화적 변화가 (등급 심사에)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제한상영가 영화숫자(출처=영상물등급위원회)

제한상영가 등급은 영화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봉만대 감독은 스토리오브서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현재는 제한상영관이 없기 때문에 관객과의 접점을 생각한다면 감독 혹은 제작사가 자체 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상영이 목적이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창작의 우회로를 찾는 것이 대안인데 “그 과정에서 얻는 발상은 어쩌면 더 경이로울 수 있다. 법보다는 창작자의 상상력 부재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덧붙였다.

영화 ‘은교’의 김재준 조감독은 “수위조절 기준은 영화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며 “(수위가) 결정이 되지 않고서는 절대로 현장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 감독, 제작사, 배우 소속사까지 모두 합의된 상태에서 촬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제작했는데 등급심사에 걸려 편집해야 하는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시나리오작가 김혁 씨는 일단 제한상영가가 될 만한 시나리오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기획단계에서 아예 19금으로 가자고 나오면 (그런 방향으로) 쓸 수는 있겠지만 제한상영가는 상영할 곳이 없기 때문에 투자사가 원치 않는다”고 했다. 15세 관람가에 최대한 맞춘다는 뜻이다.

영등위에는 개봉 전, 영화를 처음 감상하는 전문위원 12명이 있다. 현재는 남자 7명, 여자 5명이다. 작가 감독 평론가 강사 등이다.

4인 1조로 영화를 보고 의견서를 낸다. 각자 작성해서 제출하므로 의견충돌이 일어나기는 어렵다. 조별로 하루 평균 2~3편을 본다. 2017년에는 2286편, 2018년에는 2506편을 심사했다. 

전문위원이 작성한 의견서 4개는 영화등급분류 소위원회(남녀 각 4명)로 간다. 소위가 실질적인 등급 결정권을 갖는다. 이들은 영화를 보고 다수결로 정한다. 전문위원 의견서를 참고하는데 4대4로 갈리면 의장이 조율하거나 한쪽을 선택한다.

▲ 영화등급 결정과정

영화가 길면 회의가 길어진다. 반대로 시간이 단축될 때도 있다. 신청자 희망과 전문위원 등급이 만장일치로 같을 경우다. 소위원회가 의견서를 확인하고 그대로 정한다. 전문위원 심사부터 소위원회 결정까지 10일 이내에 끝난다.

국내영화의 등급분류 수수료는 10분당 7만 원이다. 외국영화는 12만 원이다. 독립영화는 5000원이다. 상영시간이 103분이면 국내영화 수수료는 70만 원. 엔딩 크레딧과 쿠키영상까지 등급분류 대상이다.

소위원회 등급이 나오고 30일 이내에 이의제기를 하면 위원회 9명이 재분류 회의를 한다. 다수결로 결정하는데 소위원회 위원은 의결권이 없다.

결과에 불복하면 법정소송으로 가기도 한다. ‘천국의 전쟁’(제작 2005, 등급분류 2011), ‘숏버스’(제작 2006, 등급분류 2009),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제작 2011, 등급분류 2015)가 소송을 거쳐 개봉했다.

영화제 상영이 목적이라면 심사는 비교적 간단하다. 2016년 경기필름스쿨페스티벌에서 팀장으로 일했던 윤한나 씨는 “시놉시스와 함께 감독이 원하는 등급을 서류로 제출하면 그대로 개최허가가 났다”고 말했다. ‘님포매니악 볼륨2’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원본 그대로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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