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집중했지만 한 달 정도까지는 대화가 15분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삶과 생각을 자세히 말했다. 30분 이상씩 들려줬다.

허 모 씨(58)는 단칼에 거절하다가 신분과 취재기간을 밝히자 대화에 응했다. 태극기가 아니라 성조기를 흔드는 이유를 물었다. “태극기 흔들어봤자 소용없어. 왜냐면 문재인 정권에선 태극기 들고 있는 국민한테 눈 깜짝 안 해. 근데 미국은 이 사람들이 함부로 못 한다고요.”

미국을 신뢰하는 이유는 중국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남편이 치료차 중국에서 지낼 때, 함께 갔다. “둘째 딸을 중국 국제학교 보냈어. 근데 그 나라가 정말 문제가 많다는 걸 느꼈어. 거기는 공산당원만 잘 사는 나라야.”

그는 중국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목격했다. 최근에는 대만에서 1년을 살았다. 이를 계기로 국제정치에 관심이 생겨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살펴보게 됐다. 대화는 40분간 이어졌다.

▲ 성조기와 태극기

 

집회 분위기는 3년째 비슷했다. 변화조짐이 보였다. 4월 20일, 자유한국당의 첫 장외투쟁. 정부가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자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세종문화회관 앞은 새빨간 옷을 입거나 붉은색 소품을 든 자유한국당 당원과 지지자로 북적였다. 이들은 ‘문재인 STOP, 국민심판’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황교안 당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의 연설에 환호했다.
 
태극기 집회가 비장했다면, 자유한국당 집회는 활기차고 들뜬 느낌이 강했다. 음악부터 차이 났다. 태극기 집회는 애국가 또는 ‘양양가’와 같은 군가 위주였다. 자유한국당 집회에서는 유행가를 개사한 밝은 노래를 틀었다.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은 태극기나 성조기가 아니라 붉은 피켓을 들어 태극기 집회와 선을 긋는 듯했다. “저는 태극기는 아니에요.” 취재팀이 자유한국당 집회에서 많이 들었던 말이다.

▲ 하 씨 자매가 만든 피켓

세종문화회관 옆 스타벅스에서 50대인 하영성 하은숙, 40대인 하희경 씨 자매를 만났다. 이들은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을 계기로 광화문에 처음 나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법 같은 중요한 안건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서다.

“딸 같아서 이야기하는 건데 나는 정말 좋은 나라를 물려주고 싶어요. 그런데 패스트트랙이니 뭐니 다 사회주의를 위한 하나의 과정 중에 하나거든요.” 하은숙 씨의 말이다.
 
하희경 씨는 정권에 맞춰 급격하게 변한 교육내용에 불만이었다. “요새 6·25 전쟁도 남침이라고 말해주지 않고, 보수정권을 독재정치라고 가르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배웠던 대로 얘기해줘요. (애들은) 본인이 배운 거랑 절충하겠죠.”

집회가 계속된 곳에 자유한국당 당원이 몰리자 광화문광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붉은 스카프의 여성 3명이 눈에 띄었다. 대구에서는 몇 번 참여했지만 서울에서는 처음이라고 했다.

120명이 관광버스 4대를 빌려 올라왔다. 전 모 씨(52)와 최 모 씨(53)는 대화에 소극적이었다. “저기 남자들한테 물어보세요. 그 사람들은 나름대로 뜻이 있으니까 말을 잘해줄 거예요.”
 
전 씨는 “(20대 후반) 애들이랑 얘기하면 자리 잡기 너무 힘들다고 해요. 스펙만 쌓고 있잖아”라고 말했다. 그는 민생 챙기기보다 해외 순방을 우선시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일자리 부족과 경제적 어려움은 정부실책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혜경 씨(58)는 자유한국당이 장외투쟁을 한다고 해서 처음 나왔다. 자유한국당 상징이 아니라 검은 옷, 검은 모자, 검은 선글라스 차림이었다.
 
“자유한국당이 처음으로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태극기 집회랑 모두 여기를 중심으로 결집이 될 거로 생각했어요.” 보수층에 힘을 실어주려고 나왔고, 보수층 통합을 바란다고 했다.

광장에 인파가 늘어난 만큼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누구는 보수세력이 통합된다면 긍정적이라고 했고, 누구는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동화면세점 앞 집회의 연설자는 불만이었다. 자유한국당이 태극기 부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 집회에 나온 시민이 3년 동안 쌓은 공로를 가로챈다는 말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남희 씨(69)는 그런 말 하지 말라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일어났다. 독일에서 왔다는 그는 모든 보수세력이 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정치인의 잘잘못을 떠나서 지금은 합쳐야 해요. 그런데 몇몇 사람이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거예요. 그동안 뭐하다 이제야 나왔느냐고. 꼴 보기 싫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에요.”

다른 할머니가 옆에서 외쳤다. “아유 내가 홍준표 때 봤어! 거기서 얘기 다 해봤어!” 자유한국당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지 애국세력이 아니라고 했다.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자 다른 여성이 말렸다. 이 씨와 이야기하던 할머니는 답답해하며 자리를 떴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