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슬아 어디갈래?” 남자친구의 익숙한 질문 뒤로 익숙한 정적이 흐른다. “밥부터 먹을래?” 문예슬 씨(25)는 정적을 깨고 휴대폰으로 ‘창원 맛집’을 검색한다. 두 사람은 경남 창원에서 유명하다는 맛집은 대부분 가봤다.
 
“오빠 여기 쌈밥집 갈까? 평점도 괜찮네.” 그들의 하루 일과 가운데 하나인 데이트 코스가 결정됐다. 문 씨는 밥을 먹고 나면 평소처럼 카페나 동전 노래방에 가고, 영화를 보겠거니 생각해 다음 코스는 따로 계획하지 않았다. 

▲ 문예슬 씨와 남자친구의 모습 (출처=문예슬 씨)

문 씨는 창원에서 취업준비를 하는 중이다. 남자친구는 사귄 지 3년 가까이 됐다. 대구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오는 남자친구를 생각해 데이트 코스를 미리 계획하는 편이지만 최근에는 아이디어가 바닥났다.
 
둘 다 직장인이 아니라서 한정된 데이트 비용으로 갈 만한 곳은 늘 비슷했다. 문 씨는 남자친구를 만날 때마다 작성하는 일기장을 꺼내 지난 데이트 코스를 확인했다.
 
3월 23일=점심 펀치게임 스티커사진 저녁
3월 30일=점심 영화 카페 저녁(떡볶이)
4월 6일=점심(맥도날드) 만화카페 동전노래방 술(꼬치구이)

3년 동안 반복된 데이트 코스를 넘기다가 문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연인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던 순간을 지나, 같은 질문을 마주한다. 오늘은 뭐하지? 데이트를 떠올리면 행복한 마음과 무거운 마음이 교차한다.
 
영화기법인 타임 루프(time loop)식 데이트가 연인을 지치게 한다. 타임 루프는 이야기 속에서 특정 인물이 같은 사건을 끊임없이 겪는 과정을 말한다.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 자주 나온다.

문제는 데이트가 소비와 맞물린다는 데 있다. 취재과정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 점은 더 많은 데이트 코스를 거치고 더 많은 활동을 할수록 지출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자기야, 원데이 쿠킹클래스라고 있는데, 이거 한번 해볼까?” 주말 데이트를 앞두고 여자친구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최성호 씨(29·교사)는 링크를 눌렀다.

최 씨 역시 새로운 데이트를 하고 싶던 참이었다. 그는 블로그 후기를 읽으며 일정과 시연 메뉴를 보다가 수업료를 확인했다. 1인당 8만 원. 가슴이 턱, 하고 막혔다. 결국 원데이 쿠킹클래스를 해보자는 논의는 흐지부지 됐다.   

▲ 최성호 씨와 여자친구의 커플 링 (출처=최성호 씨)

인천 중구의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최 씨는 “가끔 스키장이나 여행을 가는 정도 말고는 데이트 코스가 뻔하다. 그렇다고 색다른 데이트를 하자니 하루 안에 식당, 카페, 영화관을 가는 평범한 데이트보다 돈이 더 많이 든다”고 말했다.

학생이나 취업준비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지만 직장인 역시 데이트를 할 때 느끼는 경제적 부담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데이트’를 주제로 정기 설문조사를 실시해 온라인에 게재한다. 만 15~34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2월 실시한 조사(복수응답 허용)를 보면 가장 많이 하는 데이트는 영화(83.6%) 프랜차이즈 카페(61.1%) 맛집 탐방(59.3%)이었다.

전명희 씨(27·회사원)는 “남자친구랑 2년 정도 되니까 대화소재가 뻔하고 그나마 변화를 줄 수 있는 게 데이트 장소”라고 말했다. 그는 지인의 추천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전 데이트 장소와 겹치지 않는 곳을 찾으려 한다고 했다.
 
직장인 커플이라는 정주현 씨(25)는 “인스타그램을 보거나 검색을 하다보면 ‘맛집 도장깨기’, ‘혜화 도장깨기’ 같은 것이 많다. 상술임을 알지만 다른 커플도 하니까 해보게 된다”고 했다. 그는 서핑강습을 함께 받았던 일이 더 기억에 남지만 비용문제로 자주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새로운 데이트를 하자니 경제적으로 부담되고, 반복적인 실내 데이트를 이어가자니 지겨워진다. 다른 나라 젊은이의 데이트는 어떨까. 7개국, 8명에게서 들어봤다.

영국인 남자친구와 교제중인 양 얀 씨(26·중국인)는 암벽등반을 하러 산에 가거나 야외로 소풍을 간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야외활동을 좋아하고 암벽등반에 좋은 산이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지 6년째인 다케무라 나쯔미 씨(24·일본인)는 한국의 데이트가 일본과 달리 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것 같다고 했다. “일본에는 커플을 위한 세트나 커플석 같은 게 거의 없다. 한국에는 커플 마케팅이 많아 돈을 많이 쓰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에 사는 메이 메이 씨(25·여·중국인) 씨는 “밥 먹고 카페에 가는 식의 데이트는 한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하루 안에 많은 종류의 일을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쉴틈 없이 다른 활동을 찾아 헤매는 한국식 데이트와는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제니퍼 씨(21·여·미국인)는 “미국에서는 단순히 함께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주된 데이트다. 집에서 같이 요리를 만들거나 함께 유튜브를 본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데이트가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하는 데 집중돼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태국에 사는 니차눈 와나프라세르트 씨(Nitchanun Wannaprasert·26·여·태국인)는 연인과의 대화를 가장 중요한 데이트 활동으로 꼽았다. 그는 연인과 4년째 사귀는데 문화적 배경, 가치관, 친구, 가족에 대해 대화하면서 서로 많이 배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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