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에 얼굴을 공개하고 성정체성을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퀴어 유튜버다. 유튜브를 통해 커밍아웃을 하고, 자신만의 색깔로 구독자와 호흡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퀴어(게이, 레즈비언, 양성애, 범성애, 무성애를 포괄하는 말) 유튜버입니다. 저는 여자/남자/남녀 모두를 사랑해요.” 그들은 이렇게 4~5년 전, 온라인 방송에 첫 발을 디뎠다.

국가인권위원회 자료(2016년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성소수자의 92.6%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욕을 듣거나 폭행을 당하는 등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들이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꺾을 수 없었다.

선택한 매체는 유튜브. 긴 글을 어려워하고 영상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겨냥했다.

민가영 서울여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유튜브는 공중파 채널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오픈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의 적극적 구독이라는 행위를 통해 선택된다”고 설명했다. 성소수자가 유튜브에서는 안전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조건이라는 말이다.

기록하고(記) 춤출(舞) 레즈 상(狀), 기무상 씨

유튜버 ‘기무상’ 씨(본명 임지은·35)는 레즈비언이다. 8년차 토익강사로 현재는 영어 콘텐츠를 제작한다. “성소수자의 삶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아주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평범한 레즈비언의 삶을 공유하기 위해 시도하지 않은 매체는 없었다. 팟캐스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네이버 블로그. 그리고 성정체성을 깨닫고 인정하는 과정을 담은 책까지 냈다.

▲ 기무상 씨의 유튜브 채널

도전은 쉽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채널이 사라져 2만4000여명의 구독자를 잃었고 500여 개의 영상은 비공개로 전환됐다. 유튜브 본사에 사유를 물어도 알 수 없었다. 기다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사라진 채널의 하단에는 ‘시청자를 현혹하는 행위로 계정이 삭제 조치됐다’는 문구만 남아있다. 결국 새 채널을 개설해 1700명의 구독자를 얻었다. 콘텐츠 범위도 넓혔다. 먹방, 브이로그, Q&A 영상을 제작했고 퀴어 채널을 소개하는 특집도 계획 중이다.

그는 2015년, 유튜브를 처음 시작했을 때를 회상했다. 당시 퀴어 유튜버는 찾아볼 수 없었을 뿐더러 레즈비언은 더욱 희귀했다. "퀴어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때라 ‘트렌스젠더’를 ‘트렌지스터’라고 악성댓글을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

퀴어 유튜버를 향한 악플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는 악성댓글을 삭제하지 않는 편이 악플에 대처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악성댓글을 그대로 두면 해당 댓글에 대한 대댓글이 작성되고 자연스레 공론장이 형성된다.”

퀴어 유튜버는 점점 늘어나는 중이지만 그들의 연령대는 20대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임 씨는 “제 나이대, 혹은 더 나이든 성소수자가 있을 텐데 그들의 모습을 담은 유튜브는 별로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대한민국 유일무이 게이 유튜버, 이열 씨

유튜버 ‘이열’ 씨(본명 이열)는 게이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궁금해 동성애나 게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댓글을 찾았다. 그러나 내용은 냉랭했고 가짜뉴스가 만연했다.

오해와 편견을 깨고 싶어 댓글창에서 싸우다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동성애 이야기를 시작했다. “호기심으로 게이를 검색한 사람들도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길 바랐다. 게이도 똑같은 사람임을 사람들이 알길 바랐다.”

그는 이제 악플을 자랑스러워하는 유튜버가 됐다. 구독자 수는 2만 5000여명을 돌파했고, 누적 조회수는 300만을 넘었다. 그는 친한 형으로부터 “게이나 트렌스젠더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혐오발언을 듣고 유튜브를 시작했다.

‘동성애자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첫 영상이었다. 자기경험을 이야기해서 편견을 깨고 싶었다. 그의 유튜브에는 ▲ 동성애는 선천적일까? 후천적일까? ▲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한 편견 ▲ 게이들은 여자가 되고 싶은 걸까 등 오해를 바로잡으려는 콘텐츠가 대다수였다.

▲ 이열 씨의 유튜브 채널

이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컨텐츠로 ‘커밍아웃 스토리’를 꼽았다. 20대 초반 친구들 앞에서 커밍아웃을 했던 회상하는 내용.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누군가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일이 쉽지 않다. 나의 경험을 통해 커밍아웃을 결심하거나 용기를 낸 구독자가 있었다.”

유튜브를 시작한 이후, 악성댓글이 이 씨를 괴롭혔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발언이 많았다. 그는 동성애자인 구독자가 상처받을까 걱정이 됐다. 처음에는 악성댓글에 일일이 대답했지만 감정을 소모하기 싫어 전부 차단한다.

소신을 예술로 표현하는 말하는 예술가 씨

메일 알람이 울렸다. 밤 11시 22분이었다. “제가 지금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와 있어요. 괜찮다면 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해도 될까요?” 양성애자라고 밝힌 유튜버 ‘말하는 예술가’ 씨(본명 유한솔)와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호주로 떠났다. 새벽에는 펍이나 매장 혹은 작은 공장을 청소하다가 남는 시간에는 사람을 만나며 오로지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낸다. 한국에서는 유튜버와 주방일을 병행했다.

그는 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싶어한다. 공간디자인과 섬유디자인을 전공해서 유튜브 영상을 혼자서 기획하고 제작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덕분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루는 데 능숙하다. 내 이름을 거는 채널인 만큼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고 싶다.”

▲ 말하는 예술가 씨의 유튜브 채널

컨텐츠는 다양하다. ‘스타일과 시대정신’, ‘기억장치, 사진은 말한다’라는 예술 콘텐츠뿐만 아니라 ‘매미평론’이라는 대중매체 비평코너도 진행했다. 그는 신경 써서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구독자가 알아줄 때 뿌듯하다고 전했다.

“내 가족 중 누군가가, 학교 친구가,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가, 같은 술자리에 있는 사람이, 혹은 내가 탄 대중교통 안에 있는 사람이 성소수자일 수 있다.”

유씨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꾼다. 그는 세상의 편견을 바꿔보고 싶은 생각과 용기가 더해지는 것 같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규범이나 단체 간의 갈등은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숙제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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