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의 로마 여행기에 이어서 알래스카 여행기를 게재한다. 알래스카는 속칭 ‘라스트 프론티어(Last Frontier)’로 불린다. 북미대륙의 마지막 개척지를 ▲ 현황소개와 인상 ▲ 산, 바다, 육지로 분류되는 빙하 이야기 ▲ 북해부터 밸디즈(Valdez)까지 연결되는 송유관과 엑손 기름유출 사고 이후의 바다 정화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다. 이어서 알래스카에 인력과 생필품을 공급한 시애틀의 최근 모습도 함께 전한다. <편집자 주> 

미국 서북부 해안은 여름이면 지상최고의 날씨를 보여준다. 한여름에 화창하면서도 바닷바람으로 시원하다. 캘리포니아 남쪽은 사막기후이지만 한 낮인데도 그늘에 들어가면 서늘하다. 태평양 연안이라서인지 최북단 페어뱅크스부터 최남단 샌디에고까지 지구상 어느 곳보다 한 여름을 즐기기 좋다.

1980년대 초 여름, 시애틀을 처음 방문했을 때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서울 시가지와 비교하니 “세상이 어쩌면 이렇게 불공평할까?”라는 질문을 해야 할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캐나다의 서부관문인 밴쿠버시의 엘리자베스 공원을 봤을 때는 “아 이런 곳이 바로 무릉도원이구나”라며 무릎을 쳤었다.

서울의 무더웠던 여름을 뒤로하고, ‘잠 못 이루는 시애틀’ 주민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인 알래스카 투어를 최근 6박 8일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로마와 피렌체가 나 홀로 여행이었다면 알래스카는 단체여행이었다.

시애틀과 터코마의 중간지점인 시택(Seatac) 국제공항에서 야간 비행기를 타고 8월 20일 새벽 1시 앵커리지 공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직접 온 다른 팀과 합류해 숙소로 갔다. 서너 시간 새우잠을 잔 후 아침 7시부터 본격적인 투어에 나섰다.

이번 투어에 참석한 인원은 가이드를 포함해 15명이다. 서울에서 2명, 뉴욕에서 4명, 라스베이거스에서 2명, 시애틀에서 6명이다. 한인 여성의 배우자인 백인 여행객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가 한국인이다.

대형버스를 타고 알래스카 일주를 시작했다. 자리가 넉넉해 우리는 일찌감치 뒷좌석에 앉았다. 관광경비는 항공요금을 제외하고 1인당 1450달러였다. 여기서 경비행기를 타고 매킨리 산 정상을 살펴보며 기차를 타고 추가치(Chugach) 산맥을 달리는 선택 관광비는 제외된다.

매킨리라는 지명은 알래스카 주민의 노력으로 원주민이 본디 불렀던 이름, 데날리(Denali)로 2015년 8월에 공식 개명됐다. 데날리는 ‘가장 높은 곳’이란 뜻이다. 실제로 데날리 봉우리는 북미 대륙 최고봉으로 높이가 6190m에 달하는데 백두산(2750m)보다 2.25배 높다. 

▲ 데날리 산

유엔의 도시화 척도인 인구 5만 명 이상은 앵커리지뿐이다. 다음으로 큰 도시는 주도인 주노와 최북단의 페어뱅크스가 각각 3만 2000명으로 집계된다. 다음이 밸디즈와 그 옆 코도바 지역을 합해 9200명이다. 알래스카 인구를 다 합쳐도 서울의 10분의 1이 되지 않는다.    알래스카 여행은 기본적으로 산과 바다, 그리고 빙하를 살펴보는 자연경관 투어이다. 알래스카주 면적은 미국 영토의 6분의 1에 해당한다. 인구는 지난해 74만 명을 넘어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알래스카 투어는 앵커리지로부터 시작해 밸디즈와 페어뱅크스를 거쳐 다시 앵커리지로 돌아오는 순환여행이었다. 투어를 시작한 후 제일 먼저 도착한 도시는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파머였다.

파머는 인구 약 7300명으로 앵커리지에서 70㎞ 북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배추와 오이, 호박을 재배하는 첨단실험 농업지역이다. 파머에서 페어뱅크스와 밸디즈로 각각 연결되는 주도로 3번과 1번이 이곳에서 나누어진다.

처음 계획은 앵커리지에서 출발해 페어뱅크스를 갔다가 밸디즈로 가는 투어였다. 그런데 3번 도로 옆 산림에서 불이 나서 교통이 막혔다. 가이드가 기지를 발휘해 알래스카 남부해안 도시인 밸디즈로 먼저 갔다.  

▲ 알래스카 주도

앵커리지는 알래스카주의 가장 큰 도시이자 교통의 중심지로 30만 명이 거주한다. 주 남부에 위치한 알래스카 만(Alaska Gulf)에서 케네디 엔트런스(Kennedy Entrance)를 따라 쿡 인렛(Kook Inlet)에 깊숙이 들어가면 크닉 암(Knik Arm)과 턴어게인 암(Turnagain Arm)이 나타나는데 앵커리지는 이 두 암 사이의 항구도시이다.

여기서 바다와 항만에 대한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걸프(Gulf)는 대양보다는 적지만, 바다에 접한 큰 만을 나타낸다. 사운드(Sound)와 베이(Bay)는 걸프보다 적지만 대형상선이 접근할 수 있는 항만이다. 사운드는 베이보다 넓고 육지와 여러 섬으로 둘러싸여 있다.

채널(Channel)과 스트레이트(Strait)는 해협이다. 채널은 영국해협처럼 바다와 바다를 잇는 물길이다. 스트레이트는 대한해협처럼 육지와 큰 섬 사이의 해협을 나타낸다. 엔트런스는 스트레이트의 입구이다.

인렛(Inlet)은 육지와 반도 사이의 해로를 나타낸다. 암(Arm)은 산에서 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해로 혹은 수로이다. 육지와의 관계에서 바다가 위치한 지형에 따라 크기 순서에 따라 대양, 바다(Sea), 걸프, 사운드, 베이로 나뉜다. 그리고 해로 혹은 수로는 대양과 바다를 잇는 채널, 스트레이트, 인렛 그리고 강과 하천으로 이어지는 암으로 보면 되겠다.

턴 어게인(Turn Again)은 영어로 ‘되돌다’의 뜻이다. 유럽에서 북극해를 거쳐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해로를 발견하기 위해 제임스 쿡 선장이 쿡 인렛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블라히 부선장에게 앵커리지 양 옆으로 있는 크닉 암과 턴어게인 암을 탐험하라고 지시한다.

블라히 부선장의 부하들은 이곳을 탐험하면서 강이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다. 또다시 탐험을 하니 다른 강이 보였다. 그곳에서 되돌아 나오면서 이 수로를 턴어게인 강이라고 불렀다. 나중에야 이 수로가 강이 아님을 알았으나 초기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턴어게인 암이 됐다.

쿡선장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북서 항로(Northwest Passage)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태평양 남쪽으로 내려와 하와이와 뉴질랜드를 발견한다. 앵커리지에는 쿡선장이 이곳에 왔던 사실을 기념하는 동상이 있다.

턴어게인 암의 옆으로 알래스카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해안을 볼 수 있는 수어드(Seward) 하이웨이와 알래스카 레일로드가 뻗어 있다. 턴어게인 암에는 밀물 때 조수 간만의 차이로 쿡 인렛에 있는 물이 턴어게인 암의 수로로 밀려든다.

하이웨이 옆 바다, 40~50마일 펼쳐진 해안에서 6~10피트의 파도가 시속 10~15마일의 속도로 달리는 황홀한 자연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이를 해조라 한다. 우리말로 조석 해일로도 번역되는 타이달 보어(Tidal Bore) 현상이다.

턴어게인 암에서 볼 수 있는 알래스카 해조는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남미의 아마존 강과 중국 상해 남쪽의 첸탕 강의 해조도 유명하다. 수어드 하이웨이 옆에서는 지진이 발생하곤 했는데 그때 쓰나미가 해안을 덮쳤다고 한다.

▲ 턴어게인 암

미주 한국일보에 따르면, 알래스카의 한인 숫자는 1만 명 정도이다. 미국의 통계청은 센서스를 통해 2018년 10월 알래스카 거주 인구를 74만 명으로 추산한다. 2010년도 센서스와 비교해 3.8%의 인구증가를 보였다.

여기에서 6.6%가 아시아계로 분류된다.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해 아시아계는 5만 명으로 추산한다. 아시아계에서는 한국인의 비율이 높기에 알래스카 한인 인구는 만 명 이상으로 보인다. 

알래스카의 땅 넓이는 약 160만㎢로 남북한을 합친 넓이의 7배에 가깝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865년 암살당하고, 그 뒤를 이은 앤드루 존슨 대통령 때인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 땅을 당시 돈 720만 달러에 매입했다. 매입 당사자는 윌리엄 수어드 국무장관이다. 그래서 알래스카에는 그의 이름을 딴 수어드란 도시와 하이웨이가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얼어붙은 불모지인 알래스카를 왜 사야 하느냐는 여론이 일었다고 한다. 하지만 존슨 행정부는 의회의 찬반 투표에서 한 표 차이로 이겨, 알래스카 광활한 땅을 미국 영토로 삼았다.

알래스카는 금과 석탄 그리고 북극해 석유를 포함한 지하자원의 보고일 뿐 아니라 러시아와 유럽, 중국과 일본, 북한, 아랍 국가까지 견제하는 세계적인 군사기지로 작동한다. 매입 당시와 비교할 때 시간이 갈수록 그 유용성이 수십 배, 수백 배로 더 커지고 있다. 부동산이란 국가 간에도 미래를 위한 투자처가 된다.   

▲ 알래스카 기차

우리 팀이 대형버스를 타고 1주일 동안 알래스카를 달린 거리는 앵커리지부터 밸디즈까지 300마일, 밸디즈에서 페어뱅크스까지 363마일, 페어뱅크스에서 앵커리지까지 360마일이다. 또 투어 마지막 날에는 앵커리지에서 수어드까지 127마일의 거리를 관광객을 실은 기차로 갔다가 그곳에 대기한 버스로 돌아왔다.

알래스카 대륙을 일주일간 가로와 세로로 횡단한 거리를 합치면 1277마일에 다다른다. 1마일이 1.6km이니, 알래스카를 주행한 거리가 2043km나 된다. 경부 고속도로가 416km이니 서울과 부산을 다섯 번 다녀온 거리이다.

앵커리지, 밸디즈, 페어뱅크스에서 각각 이틀씩 묵었다. 다른 도시로 움직인 사흘 동안에는 하루에 평균 6시간씩 총 18시간을 넘게 버스에서 보냈다. 그런데도 알래스카의 산과 바다, 빙하로 뒤덮인 자연경관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 편에서는 알래스카 빙하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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