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미적분 같은 수학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기자가 시각장애학생의 수학교육에 대해 물었을 때 한빛맹학교 이윤택 수학교사가 했던 말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수식을 종이에 써가며 계산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프나 도형, 좌표평면이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서울맹학교를 졸업한 한재희 씨는 서강대 사회학과에 다닌다. 고등학생 시절, 수학을 제외한 과목에서는 1, 2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수학은 4등급 정도에 그쳤다.

남들은 한눈에 보는 함수 그래프를 풀려고 일일이 손으로 짚어야 했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쉽게 풀리는 문제도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논리를 생각하며 풀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질 좋은 수학 문제집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기출문제와 EBS 교재를 위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시각장애학생은 수학을 가장 힘들어 한다. 그래프나 도형, 좌표평면과 같이 시각적 이해가 요구되는 부분 때문이다. 수많은 점으로 그린 그림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따라가야 한다.

점자로 된 그래프는 일반교재의 그래프보다 훨씬 크다. 책의 한 쪽 전체를 차지한다. 그림이 생략된 채 글로만 묘사된 경우는 더 어렵다. 본 적도 없지만 머릿속에 그려내야 한다. ‘한 모퉁이가 비스듬히 잘린 직육면체’는 그림으로 보면 쉽지만,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 지학사 중학교 수학1의 점역교재

이윤택 교사는 직접 만든 교구를 보여줬다. 시각장애학생에게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개념을 설명할 내용을 직접 만들었다. 장난감을 입체도형으로 조립하거나 바둑판에 좌표평면을 만들어 만지게 하는 식이다. 학년이 높아지면 복잡한 입체도형과 큰 숫자의 좌표를 학습해야 한다.

수학은 숫자와 괄호 하나만 틀려도 문제를 풀 수 없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수학교재에는 그림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그림참조 ○번’라고 나온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그림을 모아놓은 다른 책에서 해당 번호를 찾아가며 공부해야 한다. 이윤택 교사는 “제대로 된 수학 문제집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용 EBS 수능연계 교재는 도형이나 그래프, 좌표평면을 생략했다. 이 교재는 국립특수교육원의 ‘에듀에이블’ 사이트에 파일형식으로 올라온다. 점자정보단말기에 넣어 점자로 읽어야 하지만 그림을 표현하지 못한다. 옆에서 설명하지 않으면 공부하기 어렵다.

이 교재에는 점자규정과 띄어쓰기를 어긴 곳이 적지 않다. 검수와 교정과정을 제대로 거쳤다고 보기 힘들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이연주 정책팀장은 “올해 작업을 담당한 곳이 점자사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업자”라고 했다.

▲ 이윤택 교사가 사용하는 교구. 왼쪽은 입체도형을 만들 때, 오른쪽은 좌표평면을 구현할 때 사용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수학교재는 제작하기 쉽지 않다. 일반 책을 볼 수 없는 장애학생은 점자로 번역된 도서를 사용하거나 점자정보단말기에 문서파일을 넣어 점자로 읽는다. 장애인복지시설이나 국립특수교육원에 신청하면 교재를 구할 수 있다.
 
점자로 번역하는 점역과정에는 긴 시간이 걸린다. 원본을 스캔하여 문자인식프로그램으로 문자를 추출한다. 이후 원본과 비교하며 잘못 인식되거나 누락된 글자를 수정하고 입력한다.

이어서 점역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점자로 번역하고 편집과 교정을 거친다. 책의 원본파일을 제공하면 제작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출판사는 저작권을 이유로 파일제공을 꺼린다.

수학교재 제작은 훨씬 까다롭다. 수학식은 점역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없어서다. 점역사가 일일이 점자로 타이핑한다. 그림이나 그래프가 있으면 점역사가 선을 그려야 한다. 보통 3~6개월이 걸리므로 급할 때는 문제집을 조각조각, 나눠서 받아볼 수밖에 없다. 

수학전용 점역 프로그램의 개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족한 예산이 원인이다. 이현주 하상장애인복지관 학습자료팀장은 “hwp 수식편집기로 입력된 내용을 점자로 번역하는 점역 프로그램이 있지만 개발비를 확보하지 못해 업그레이드하지 못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의 1400여명이 시각장애학생이다. 장애학생의 수학교육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많은 취재원이 물었다. 어떻게 시각장애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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