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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 세대를 잇다 ②

기사승인 2019.10.20  18: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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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스토리오브서울 특별취재팀이 뉴스통신진흥회의 제1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사업에서 가작을 수상했다. 취재팀이 출품한 <부마, 세대를 잇다> 5부작은 “부마항쟁 40주년을 맞아 부마항쟁의 현대적 의미와 세대적 공감대 형성의 문제를 심층성 있는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취재팀에는 프런티어저널리즘스쿨의 13기 3명(강수련 조윤하 최다은)과 주니어반 4명(남동연 소설희 오수민 이주미)이 참여했다. 시상식은 9월 9일 낮 12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1층의 뉴스통신진흥회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뉴스통신진흥회의 동의를 받아 수상작을 게재한다.

▲ 특별취재팀의 수상장면. 왼쪽부터 강수련 이주미 소설희 최다은 조윤하 남동연. 가운데는 김동규 뉴스통신진흥회 이사‧건국대 교수 (사진=뉴스통신진흥회 제공)

3부. 빚을 무대에 올리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평소처럼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 TV를 틀었다. 인형극이 아니라 광주 시민의 모습이 나왔다. 검은 화면에 흰 글씨의 자막이 올라갔다.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내용.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김지숙 작가(50)의 이야기다. 그는 1980년에 부산에서 살았다. 유언비어를 조심하라는 정부의 선전을 보며 서늘함을 느꼈다고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무언가 잘못됐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을 겪으며 사회에 대한 관심과 역사적 부채의식이 생겼다. 초등학교 시절의 자막을 떠올렸다. 그때는 모르고 지나쳤던 역사를 이제는 똑바로 마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독재에 항거해 투쟁하던 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유나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했겠죠? 그래서 그런지 민주화 운동을 하신 분들에 대한 마음의 빚이 항상 있어요.”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숨진 뒤의 일을 기억한다. 할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며 큰오빠는 독재자가 죽었는데 무엇이 슬프냐고 했다. 할머니와 큰오빠의 상반된 태도에 그는 혼란을 느꼈다. 작가의 경험은 연극 <거룩한 양복>에 반영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암살당하자 우는 장면. 여고생은 “독재자가 죽었는데 뭐가 슬프냐”며 친구들을 질책한다.

김 작가는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을 돕지 못한 마음의 빚을 시나리오를 쓰면서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고 싶은 말도 마음껏 했다. “계속 품었던 역사적 부채의식, 쓰러져가는 사람에 대한 죄의식, 고마움, 미안함, 안타까움…. 이런 감정을 알리고 싶었어요.”

▲ 연극이 끝나자 배우들이 묵념을 하는 모습

<거룩한 양복>은 1979년 10월의 부마민주항쟁을 다뤘다. 주인공 최정호는 어머니가 마련한 양복을 입고 면접을 보러 간다. 회사의 과장은 면접시간을 일방적으로 미뤘다. 최정호는 우울한 기분에 한참을 떠돈다. 거리 저쪽에서 인파가 밀려오는 걸 목격하고 휩쓸린다. 그들은 독재타도와 유신철폐를 외치며 ‘우리의 소원은 민주’를 노래했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고 폭력을 행사했다. 최정호는 최루탄을 뒤집어쓰고 뒷골목으로 도망친다. 노동자와 대학생도 함께 숨어든다. 세 사람은 서로를 안아주고, 위로하고, 연대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최정호는 그날의 양복을 입고 그들을 찾아 나선다.

부산에서 연극이 공연된 7월 20일은 태풍 ‘다나스’의 영향으로 날씨가 좋지 않았다. 취소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객석의 4분의 3가량이 찼다.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특히 많았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의 송기인 이사장(82)과 고호석 상임이사(64) 등 재단 관계자가 자리를 함께 했다.

이선아 씨는 부마항쟁의 의미를 자녀에게 알려주려고 경남 김해에서 왔다. 연극을 통해 역사를 더욱 자세히 알게 됐다며 자녀교육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유지원 군은 주인공이 혼령에게 양복을 건네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다고 했다. “시위를 누가 시켜서 하는 줄 알았는데 각자의 깊은 생각이 있었음을 알게 됐어요.”

연극이 끝나자 모든 배우가 나와서 묵념을 했다. 보통 커튼콜은 관객에게 감사하다는 의미를 담는다. <거룩한 양복>은 그렇지 않다. 김동민 감독(38)은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노력한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그는 관객이 연극을 통해 휴머니즘을 느끼기를 바란다. “재미있게 보시고, 나가기 전에 아주 잠깐이라도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연극에서처럼 ‘우리의 소원은 민주’를 따라 읊조리는 노랫말이 객석에서 들렸다. 묵념을 하거나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많았다. 관람객 김보민 씨는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투쟁하신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유와 민주를 누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마음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문기상 씨 역시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다. 의미 있는 작품인 만큼 날씨에 상관없이 꼭 보러오고 싶었다”고 했다.

주인공 최정호 역을 맡은 배우 김수철 씨(36)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부산민주공원에서 연극을 하던 날. 배역에 몰입하다가 울컥했다. 최정호가 마지막 장면에서 느낀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에도 민주화를 이룬 분들 덕분에 우리가 민주사회에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배우를 지도하며 당시에 살았다면 민주화를 위해 투쟁할 수 있었을 지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누구도 항쟁에 적극 참여했겠다고 확신하지 못했다. 연극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민주화 운동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노동자 김도철 역의 김한솔 씨(28)는 자신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했다. 김도철은 1979년 부산의 공장을 다니던 노동자로 나온다. 부모 없이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소시민. 그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서도 시위를 희망의 마지막 한줄기로 여기며 투쟁한다. 당시 상황을 마주한다면 연극에서처럼 나서지는 못했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투쟁을 응원하는 마음은 가득하겠지만, 참여한다 하더라도 뒤에만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엄혹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진압경찰 역을 맡은 김성은 씨(33)는 이전 공연에서 노동자 김도철로 나왔다. 부마항쟁에 대해 알아보다가 그의 부모는 당시 무엇을 했는지 물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1979년, 부산의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전라도 출신인데 일을 위해 잠시 부산에서 지내던 시절. 분위기가 워낙 무서웠고 당시 상황을 잘 몰라서 시위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는 어머니 말씀을 들으며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시위했던 사람, 진압했던 사람, 용기가 없어 구경만 했던 사람.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고. 그는 관객이 연극을 통해 개인의 상황과 인간적인 마음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4부. 부모가 우리 역사다 

유치준 씨는 6.25전쟁 기간에 월남했다. 형제와 같이 내려오다가 뿔뿔이 흩어지면서 마산(현 창원)에 혼자 정착했다. 미군 부대에서 장사를 하면서 한동안 풍족하게 살았지만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다. 전국을 떠돌며 일을 하러 다녔다. 나이가 들면서 아내와 아이 곁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산의 경남모직 건설 현장에서 목수 일을 시작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일을 마친 뒤, 막걸리를 마시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시위가 한창이었다. 어느새 시위대에 휩쓸렸다.

그는 뒷머리가 으깨진 채 구토를 했다. 몇 번이고 머리를 들고 일어나려 했지만 그럴수록 바닥에 자꾸 가라앉았다. 이발소 사장은 무서운 마음에 지나쳤다.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김지숙 작가(50)는 유 씨 사연에 마음이 아팠다. 연극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당시 상황을 각색해 연극에 녹였다.

유 씨는 경찰의 시위진압 과정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 씨의 아들은 아버지가 당시 사망했음을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2011년, 그러니까 32년 만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목격자와 부검의 소견 등 객관적인 증거가 있지만 타살 혐의가 없다고 했다. 아들은 증언집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면 미치겠다. 꼭 정부로부터 당시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편집자 주=유 씨는 2019년 9월 5일 부마민주항쟁 관련 사망자로 공식인정 받았다.]

▲ 김형일 변호사

김형일 씨(38)는 창원에서 변호사로 일한다. 어릴 때부터 마음이 잘 통하던 친구와 함께. 둘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함께 나왔다. 대학교 1학년 때는 같이 살기도 했다. 둘은 평소 친하던 선배와 법무법인 믿음을 설립했다.

처음부터 변호사를 꿈꾸지는 않았다.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인턴과정에 들어갔는데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2009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자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에 1기로 입학했다.

김 씨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경남지부 사무국장이다. 변호사라면 당연히 공익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소 아버지 어머니와 사회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집안 분위기의 영향이 컸다. 올해 6월에는 부마항쟁 관련자 21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맡았다. 그가 속한 법무법인은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과 계약을 맺었다.

그의 어머니는 항쟁에 참여했던 최갑순 씨(64)다. 경남대 학생으로 시위를 주도했다. 어렸을 때부터 김 씨는 어머니 덕분에 항쟁에 대해 자세히 알았다. 어머니는 항쟁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아들은 곁에서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지켜봤다.

어머니는 안타까운 일이 있으면 집에 와서 잠을 못 자고 끙끙 앓는다. 아들은 어머니처럼 영웅은 되지 못하더라도 손닿는 데까지는 돕고 싶다. 1979년 항쟁에 참여했던 어머니는 2019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아들은 항쟁 참여자를 대변하는 변호사로 부마를 알리려 한다.

변호사로서 항쟁에 대한 공부는 필수다. 궁금한 점이 있을 때는 어머니에게 제일 먼저 물어본다. 최근에는 항쟁 당시의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로 인해 생긴 정신적 고통에 대한 자료를 모으는 중이다.

소송을 하지 않고 피해사실을 인정받으려면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부마항쟁과 관련된 이들을 확인하고 명예회복과 보상을 위한 기구로 올해 12월 24일까지 활동한다. 실무 작업은 △진상조사 및 보고서 작성 실무위원회 △관련자 및 유족여부심사 실무위원회 △장해등급판정실무위원회가 담당한다.

관련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증인 2명과 증명서 같은 문서가 필요하다. 구금 기록 등 시위에 참여했던 사실을 증명하면 된다. 훈방 조치도 증거에 포함된다. 피해자 인정기준은 더 엄격하다. 보상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30일 이상 구금됐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당사자가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본인에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므로. 그러면 위원들이 직접 만나러 가기도 한다. 오해가 있다면 풀고 치유를 위해 신고를 권한다. 보상금 때문에 신고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 보상금을 바라고 했던 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피해자 인정은 대부분 심의위원의 만장일치로 하지만 갑론을박을 벌일 때가 있다. 1명의 사례를 놓고 1시간 가까이 심의한다. 진실에 대한 책임이 있으므로 엄정할 수밖에 없다.

위원들은 부산과 마산을 직접 찾기도 한다. 3기 위원은 위원회 출범 이후 처음으로 마산을 방문했다. 김귀옥 위원은 7월 10일 당사자들과 항쟁의 주요 무대를 돌아봤다. 경남대부터 시작해 양산경찰서, 3.15 의거탑까지. 유치준 씨가 사망했던 자리도 짚어봤다. 김 위원은 “40년 전의 시간으로 타임머신 타고 돌아가듯이 그 당시를 생생하게 재연했다. 현장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고 말했다.

위원회에는 항쟁 당사자, 변호사, 언론인, 대학교수가 참여한다. 김 위원은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 학교강의에서 항쟁을 다룬 적은 없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설명하면서 간단히 짚고 넘어가는 정도다. 항쟁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아서 학생들에게 자세히 전달하기는 어렵다. 질문하거나 관심을 보이는 학생도 많지 않았다. 김 위원은 스스로를 탓했다. “저희가 이야기를 안 했기 때문이에요. 부마항쟁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알 기회가 없어요. 우리 같은 사람이 이야기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죠.”

 

 

 

 

특별취재팀 storyofseoul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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