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싫어요…2층에 어린이집이 있어요.” 어린이들이 노란색 도화지에 색연필로 눌러 쓴 글씨가 눈에 띈다. 어린이가 마스크를 쓰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아래로 보인다.

서울 중구 을지로 19 삼성빌딩 1층에는 어린이들이 올해 1월 만든 금연푯말이 5개 있다. 점심시간마다 담배연기가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곳이다. 금연구역이지만 흡연자들은 매일 이곳에 모인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12월 31일부터 ‘어린이집·유치원 10m 이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전국의 금연구역은 2016년 24만여 곳, 2017년 26만여 곳, 2018년 28만여 곳으로 늘었다. 하지만 구역을 정확히 표시하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

권순철 씨(58)는 서소문삼성어린이집에 다니는 네 살배기 손주를 차량에 태웠다. 그는 “손주를 데리러 올 때마다 흡연자에게 한마디 하고 싶지만 꾹 참는다. 담배연기가 오죽 싫었으면 아이들이 푯말까지 세워뒀겠냐”고 말했다.

▲ 서울 중구의 서소문삼성어린이집 원생들이 제작한 금연푯말. 아래는 중구에서 붙인 금연포스터

중구청에서 붙인 금연포스터로는 효과가 미약해 삼성빌딩은 7만~8만 원을 들여 포스터를 별도로 만들었다. 그러나 삼성빌딩 보안요원 나영주 씨(53)는 “포스터를 요리조리 피해서 담배를 피우면, 나도 뭐라 할 수가 없다. 서울시와 중구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5m 이내에서 담배를 피우던 김주호 씨(60)는 “포스터를 보았지만 빌딩 맞은편인 이곳까지 금연구역인지 몰랐다”며 “시청이나 구청이 붙인 공식 포스터인지 건물주가 붙여놓은 포스터인지 분간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정연희 씨(59)는 어린이들이 제작한 금연푯말을 보고 양심에 찔려 담배를 든 채 흡연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담배 한 대 피우려고 수백 미터 떨어진 롯데백화점 앞 흡연부스까지 걸어갈 수는 없지 않느냐”라며 “정확히 어디까지 금연구역인지 몰라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용산구 신용산초등학교 쪽도 상황은 비슷했다. 학교 울타리에 붙인 금연포스터(가로 20㎝, 세로 30㎝)는 나무에 가려졌다. 흡연자 2명이 바로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 한 명은 전화통화를 하고, 다른 한 명은 모바일 게임을 하며 담배를 피웠다. 금연구역임을 모르는 눈치였다.

▲ 용산구 신용산초등학교 울타리에서 흡연 중인 젊은이

동대문구 회기어린이집 근처. 남성이 막걸리를 마시며 담배를 피웠다. 일회용 컵 2개에는 다른 흡연자가 함께 버린 담배꽁초 10여 개가 들어있었다. 과일노점상 여운구 씨(59)는 “대부분은 어린이집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이나 1~2m 떨어진 골목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말했다.

이문동 다솔창의어린이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성은 꽁초를 배수로에 던졌다. 이곳에서 8년째 채소를 파는 박명순 씨(77)는 “어린이 건강을 위해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70대 할머니인 내가 나섰다가 해코지를 당할 것 같아서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초구는 올해 ‘세계 금연의 날’ 기념식에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우수 자치구로 선정됐다. 전국 최초로 ‘라인형 흡연구역’을 시범운영한다. 흡연구역 바닥에 노란색 테이프로 직사각형 선을 그어서 금연구역과 명확하게 구분하는 제도다.

흡연자 김승범 씨(21)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근처에 라인형 흡연구역을 설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건강증진과의 장수 주무관은 “시내 어린이집과 유치원 수천여 곳에 일일이 라인을 긋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일단 금연구역을 확대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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