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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기사승인 2019.10.27  20: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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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을 오간 사랑

유성태 씨(30)는 지인의 소개로 나가미네 쿠미카 씨(27)를 만났다. 2014년이었다. 유 씨는 일본어를 잘하지 못했고 쿠미카 씨는 한국어를 잘하지 못했다.

둘은 영어로 대화했지만 유창한 편이 아니라서 답답할 때가 적지 않았다. 유 씨가 일본어 공부에 전념하면서 장거리 연애를 이어갔다. 두 달에 한 번씩,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랑을 쌓아갔다.
 
둘은 일본에서 직계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일본에서는 남자가 집과 혼수를 준비해야 하는 문화가 있어서 유 씨는 돈을 더 모아야 했다. 결혼 후 1년 동안은 같이 살지 못했다. 유 씨는 한국에서 홀로 일했다. 부부는 작년부터 한국에 같이 살게 됐다.
 
1년이나 떨어져 돈을 모았음에도 한국에서 함께 지내기는 쉽지 않았다. 배우자 비자(F-6)를 취득하기 위해서 준비할 서류가 복잡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으며 얼마나 교제를 했는지를 설명하는 결혼배경 진술서를 포함해 30장 넘게 준비했다.

한국어와 일본어로 정리해 양국에 제출해야 한다. 서류 준비만 두 달이나 걸렸지만 끝은 보이지 않았다. 2년에 한 번씩 외국인 출입국 사무소에서 비자를 갱신 받아야 한다. 예약시간에 맞춰 가도 3~4시간을 기다린다. 그럼에도 부부는 함께 살 수 있음에 행복해했다.
 
아들 시온이를 2019년 낳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주말마다 시간을 내서 식물원, 테마파크, 박물관 등 아이를 위한 일정을 만들었다.

가족은 7월 말 동물원에 갔다. 일본어로 대화를 하는데 주변 사람이 눈치를 줬다. “저 사람들 일본인 아니야?” 당황스러웠다. 유 씨는 왜 그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이가 위험할까봐 자리를 피했다.

▲ 한일갈등이 고조되면서 국내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8월 초 쿠미카 씨는 한일 부부의 아내 모임에 갔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본어로 대화를 하는데 쿠미카 씨의 친구 머리에 모르는 남자가 껌을 뱉고 도망쳤다. 그 후로 일본인 친구끼리 만나도 모국어로 대화하는 걸 자제하게 됐다.
 
유 씨의 일본인 친구도 8월 초 한국에 놀러 왔다. 한국을 좋아해 여행을 자주 오던 친구였다. 갑자기 낯선 사람이 다가와 “일본인 죽어, XX!”이라고 욕을 했다. 친구는 충격을 받고 돌아갔다.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후로는 아내와 이마트에 장을 보러 가도 일본 제품을 잘 사지 않는다. 아내가 고향의 맛이 그리워 일본 식자재를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험한 일을 겪다 보니 눈치가 보인다.
 
쿠미카 씨 어머니의 걱정도 깊어졌다. 한일갈등이 깊어지며 일본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계란을 맞는 건 아니냐고 말할 정도. 부부도 시온이 생각이 먼저다. 자신들이 당한 일보다 시온이가 커서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기진 않을지 고민이다.

결혼을 하며 아이는 셋을 낳고 유치원은 일본에 보내자고 얘기했었다. 아내가 일본에서 보육교사로 일했던 경험이 있고, 교육과정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 씨는 일본에서 취업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8년째 거주 중인 한일 부부의 말을 들어보면 일본이라고 자녀를 안정적으로 키울 상황이 아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갔을 때 학부모와 교사가 선입견을 품진 않을까 걱정한다. 튀거나 눈총 받는 일이 없도록 더 신경을 쓴다.

일본인 여자친구와 4개월째 교제 중인 장진영 씨(24)도 난감한 적이 있다. 여자친구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우리나라로 왔다. 캠퍼스 근처에서 함께 걷던 중 ‘No Japan’ 플래카드를 보게 됐다. 못 본 척 지나갔다. 장 씨는 일본혐오로 받아들일까 걱정됐다.
 
일본 자동차에서 한국인이 목숨을 끊었다는 가짜 뉴스와 아베 인형의 목을 자르고 불태웠다는 뉴스를 어느 사이트에서 접했다. 여자친구는 울먹이며 무섭다고 말했다. 가족과 친구는 한국에 호의적이지만 지금은 집으로 오라고 연락이 왔다.

함께 계획한 국내여행을 취소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몇 달 같이 있지 못한 채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장 씨는 속상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화가 났다. 평탄할 줄만 알았던 사랑에 한일 갈등으로 인한 고비가 찾아왔다.

중단된 항공편

박다현 씨(25)는 방학을 맞아 항공사 노선을 알아봤다. 오이타 공항에서 전라도 무안과 부산으로 가는 직항노선이 중단된 사실을 알고 당황했다. 한일갈등이 고조되던 7월경이었다. 이제 그는 한국으로 가려면 가까운 오이타 공항 대신 9시간 거리의 후쿠오카 공항까지 가야 한다.
 
해당 항공사 홈페이지에는 별다른 이유 없이 당분간 무안-오이타 및 부산-오이타 노선을 비 운항한다는 내용만 올라왔다. 다른 항공사도 일본노선을 감축하는 추세다.

그는 일본 오이타현 뱃부에 있는 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교에서 유학 중이다. 전체 유학생 3000여 명 중 약 20%가 한국인이다. 일본의 한국 유학생은 양국관계로 인해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8월 초에 돌아온 예다현 씨(24)는 카페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친구와 함께 한국말로 대화하던 그는 일본인 할아버지의 따가운 눈총을 느꼈다.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알지도 못하는 중국어를 쓰면서 카페를 나서야 했다.
 
예 씨는 “내가 한국인임에도 그걸 대놓고 드러내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가장 큰 고충”이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뉴스에 한국소식이 나오면 일본 친구들의 눈치가 보여 아무 말을 못할 때도 있다.

자신이 한국인임을 아는 일본인이 퉁명스럽게 대답하거나 표정이 좋지 않으면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이 양국관계 악화로 하나하나 신경 쓰였다.
 
일본에 있을 때는 걱정하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부모는 물론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일본에서 안 좋은 일을 당할까봐 걱정했다. 한국에서 일어일문학을 공부 중인 그에게 친구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전과가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유학생 최원희 씨(24)는 일본 교토시의 기념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동료는 “뉴스에서 봤는데 현 시국에 일본인이 한국에 가면 정말 두들겨 맞냐”고 물었다. 깜짝 놀라 그런 일 없다고 설명했지만 잘못된 정보가 널리 퍼져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일본 고등학생을 위해 멘토링을 했던 양명은 씨(23)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학생들은 기사에서 봤는데 정말 한국에 가면 위험하냐고 물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지만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로 인해 한일갈등이 더 심화되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밝혔다.
 
8월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그는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국내여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반일 시위나 노재팬(No Japan) 깃발을 보며 일본 친구들이 반한 감정을 가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의 한숨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동국대 한진호 씨(26)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부모를 따라 일본에 가서 7년간 살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대학전공으로 일본어를 선택했다.

일본에서 취업하려고 동아리에서 일본의 기업문화에 대한 정보를 얻어 자기소개서를 준비했다. 지난해 6월, 일본 취업 박람회 ‘코리아재팬’에서 조언을 얻었다. 올해도 가려고 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일본기업 참여율이 높은 해외기업 취업박람회를 취소하거나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갈등은 일본취업을 재고하는 계기가 됐다. 곽은솔 씨(23)는 관광업에서 일하기를 희망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될까봐 두렵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무역, 관광이 줄어드니 나의 능력이 불필요해졌다. 내 국적을 장점으로 내세울 수 없다”고 말했다.
 
하루는 일본에서 함께 생활하는 친구가 면접을 보러 갔다가 한일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유통업과는 관련이 없는 질문이었다. “일본과 한국의 사이가 나쁜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다. 친구는 며칠 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 유입 현황과 시사점>과 외교부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일본 취업 희망 청년과 구인기업을 잇다>를 보면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는 2008년 2만 661명에서 2017년 5만 5926명으로 늘었다.

▲ 일본 내 한국인 노동자 현황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는 한국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한일대립이 격해지고 한국국민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한 뉴스가 빈번히 나오면서 반한 감정이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안재영 씨(24)는 요코하마에 있는 중공업 회사의 3년 차 직장인이다. 그는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인 직원과 얘기를 나눴다. 대부분 한국이 감정적인 대응을 한다고 생각하거나 대놓고 한국의 잘못이라는 입장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상사도 마찬가지다. 한일관계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무심코 한국 욕을 한다. 안 씨는 “부장님이 회사에 한국인 직원도 있다는 사실을 계속 잊어버리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의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김승윤 씨(27)는 취업비자가 제한될까 두렵다고 걱정했다.

동국대 일본학과 송정현 교수는 일본취업을 준비하거나 일본에서 일하는 학생에게 조언을 한다. 9년간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다.

“한일관계가 악화되면 확실히 사람들 태도에 변화가 있다. 한국인이라고 눈치를 보다가 감정적 소모가 많았다. 억울하거나 화가 나는 상황이 있을 수 없다. 맞서 싸우지는 않되 그 뜨거운 마음을 간직해야 한다.”

지민이의 그림

여름비가 내리던 8월 12일, 서울 종로구의 주대한민국일본국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한·일 양국 아동작품교류전시회가 열렸다. 2층 실크 갤러리에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과 일본의 어린이들이 손수 그린 그림이다.

다채로운 색깔과 풍부한 상상력이 담긴 작품이 전시회장을 채웠다.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어린이는 상장을 들고 뿌듯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부모는 그림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궂은 날씨에도 많은 이들이 전시를 즐겼다.
 
한·일 양국 아동작품교류전시회는 한국과 일본 아동의 작품을 전시하는 행사다. 1979년 10월에 시작해 올해로 40회를 맞았다. 매년 여름, 사전모집을 통해 선발된 양국 어린이의 그림과 작문을 전시한다. 그 동안 약 3만 명의 한국과 일본 어린이이가 참가했다.
 
작품교류는 인식변화로 이어진다. 서울 도봉구 창일초등학교 변지민 학생(11)은 이번 전시회에서 그림부문의 모나미 대상을 수상했다. 평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나쁘게 생각했다. 대회에 참가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 주대한민국일본국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제40회 한·일 양국아동작품교류전시회가 열렸다.

 
타니무라 히토미 씨(44)는 한국에서 산 지 올해로 16년째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면서 한국으로 오게 됐다. 그는 ‘라일락’의 회원이다. 한국에 사는 일본인의 모임. 2017년 10월에 처음 생겼다. 대다수가 결혼을 하면서 한국에 사는 일본인이다.

라일락은 매달 <Sayaka>라는 잡지를 발행한다. 한국과 일본에 사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와 양국 친선행사를 소개한다. 기쿠치 에미 회장(52)은 “양국관계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고 전했다.

미래를 이끌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도 두 나라의 우호관계를 위해 힘쓰는 중이다. 대학생이 주축인 한일교류동아리는 일본 자매동아리와 매년 여름과 겨울, 문화교류 행사를 개최한다.

여름에는 한국학생이 도쿄를 방문하고 겨울에는 일본학생이 서울에 온다. 7박 8일 동안 서로의 집에 초대하는 ‘홈스테이’, 서울과 도쿄를 벗어나 2박 3일 간 여행을 떠나는 ‘쇼트트립’, 반나절 동안 관광지를 방문하는 ‘반나절 여행’프로그램을 통해 상대방 문화를 체험한다.

행사가 끝난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낸다. 한일교류동아리의 신철민 회장(25)은 “정치경제적으로 양국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일본의 젊은 세대는 여전히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교류 행사를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한일 부부, 유학생, 전문가 등 73명을 취재했다. 22명은 익명을 원했다. 이 외에 일본 신문사의 서울 특파원, 일본인 교수, 한일 커플 등 37명이 취재를 거부했다.

양국관계의 변화로 인한 두 나라 국민의 불편과 불안을 피부로 느꼈다. 동시에 질문과 고민을 갖게 됐다. 신념에서 시작된 건강한 분노가 어느새 엉뚱한 곳을 향하지는 않는가.

 

 

 

 

남동연‧소설희‧오수민‧이주미 기자 storyofseoul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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