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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교수의 세계 여행기 ⑥ 알래스카 송유관과 엑슨 밸디즈 기름유출

기사승인 2019.11.03  21: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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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가 꽁무니를 내놓고 잠수하는 모습

알래스카를 여행하면 끝없이 펼쳐진 파이프라인에 잠시 넋을 빼앗긴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이자 자원천국 알래스카의 풍요를 상징한다. 시베리아 파이프라인이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넘어 남북한으로 이어진다면 비슷한 풍경이 한반도에서도 펼쳐질 것이다.

알래스카 파이프라인을 통해 북해 연안의 노스 슬로프(North Slope) 지역에서 뽑아 올린 원유는 남쪽으로 800마일 떨어진 밸디즈 해상 터미널로 보내진다. 이 송유관은 지름이 48인치인 철제 원통이다.

이 원통이 알래스카 동부의 높은 세 개의 산악지대를 넘고 500개의 강과 하천을 지나간다. 이 송유관 체계의 영어 명칭은 Trans-Alaska Pipeline System, 일명 TAPS로 불린다. 알래스카를 여행한다면 TAPS가 어떻게 미국의 마지막 개척지의 모습을 바꾸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 알래스카 송유관은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넌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게임을 하지 않는다(God does not play dice with the universe)”고 말한다. 그는 자연의 법칙에 원인과 결과가 뚜렷하게 존재함을 확신했다. 그럼에도 인류는 여전히 자연환경 개발에 따른 이익과 손해를 정확히 계산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알래스카 주민은 197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 가장 높은 비율의 세금을 냈다. 북해에서 유전이 발견되고 송유관을 건설한 이후로는 세금 한 푼 내지 않은 상태로 40년 이상의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바다에 기름을 대규모로 유출하는 환경재앙을 경험했다.

알래스카에는 막대한 양의 금과 은, 원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석탄이 묻혀 있다.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듯이, 가장 추운 연도의 기온조차 과거의 가장 더웠던 연도의 기온을 상회하는 2047년경이 되면 알래스카가 미국의 마지막 피난처가 될 수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지구 온난화의 가속화로 그린란드 빙상과 남극과 북극을 포함한 전 세계의 빙하가 다 녹아내린다면 해수면이 지금보다 60m나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폴로 8호가 성공적으로 달 궤도에 진입했던 1968년에 북해도에서 500억 배럴로 추정되는 프루도 베이 유전을 발견했다. 그때는 중동산 원유가 그렇게 비싸지 않았기에 이를 개발할 설명력이 낮았다. 더불어 겨울에 가장 추울 때는 영하 60도까지 떨어지는 환경에서 원유를 추출해 본토로 가져오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제1차 중동 오일쇼크가 1973년에 일어나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법령을 만들어 북해도 유전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프루도 베이 유전에서 공급된 원유가 1988년에는 미국 원유 생산량의 25%까지 차지했다. 지금은 공급량이 미국 원유생산량의 17% 미만으로 떨어졌다.

닉슨의 뒤를 이은 포드 행정부는 알래스카 노스 슬로프 지역에서 끌어올린 원유를 미국 본토로 옮기기 위해 1975년 3월 27일부터 2년간, 20세기 미국 내 최대 공사의 하나로 꼽히는 알래스카 송유관 건설에 나섰다.

다국적 석유기업이 민관합자 형태로 앞장섰다. 당시 공사비로 80억 달러를 썼다. 보퍼트 해(Beaufort Sea)와 접한 프루도 베이에서 부동항인 밸디즈 해상 터미널까지 연결하는 송유관의 길이는 1300㎞이다. 경부고속도로 길이의 3배가 넘는 파이프라인의 절반 이상을 지상에 설치하는 대역사였다.

공사 기간에 페어뱅크스와 밸디즈 그리고 앵커리지는 송유관 건설의 개발 특수를 한껏 누렸다. 밸디즈의 인구가 공사 이전에는 1350명이었는데 공사가 끝 나갈 때에는 6512명으로 늘었다.

▲ 밸디즈 해상 터미널

알리에스카(Alyeska) 회사는 동물이 지나가는 길목에서는 송유관을 땅속으로 묻었다. 지상의 파이프도 지그재그로 연결해 원유가 유출되지 않도록 특수설계를 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서북부 지진대에 속하는 데날리 단층지대(Denali Fault Zone)에서는 파이프라인이 좌우로 20피트까지 흔들려도 안전하게 기능하도록 내진공법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지금은 하루 50만 배럴 이하로 줄어들지만, 1988년에는 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하루 200만 배럴의 원유가 이동했다. 밸디즈 해상 터미널에 저장된 원유는 부동항에 정박 중인 유조선을 통해 캘리포니아 정유소로 옮겨진다.

그런데 원유 수송량이 최대치로 늘어나던 1989년 초에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은 미국 최대의 기름유출 사건이 밸디즈 항에서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 태안 기름유출 사건 이전에 가장 큰 해양오염 사고였던 1995년 여수 시프린스호 좌초 사건이 발생하기 6년 전이다.

로렌스 라울 엑슨 회장은 1989년 3월 24일 금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평소처럼 오전 8시에 부엌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셨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엑슨 밸디즈 유조선이 윌리엄 프린스 해협에 기름을 유출하고 있다는 긴급 전화였다. 사고는 알래스카 시간으로 자정이 지나자마자 일어났다. 라울 회장이 전화를 받았을 때는 현지 시각으로 이미 새벽 4시였다.

유조선은 밸디즈 해상 터미널에서 기름을 꽉 채우고 해협의 남서쪽으로 25마일을 나아가고 있었다. 유조선은 밸디즈 암(Arm)을 벗어나는 지점에서 블라이 암초(Bligh Reef)와 충돌했다. 엑슨 밸디즈호에 실은 원유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24만 배럴 원유가 프린스 윌리엄 해협으로 유출됐다.

이 사고로 1300평방 마일의 알래스카 바다가 검은 원유로 뒤덮였다. 600마일에 달하는 해안선에 원유가 흘러 들어갔다.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 사고처럼, 알래스카 해변을 뒤덮은 검은 기름을 지금도 걷어내는 중이다.

세계적 에너지 기업인 엑슨의 최고경영자(CEO)로서 라울 회장의 위기대처 리더십이 비판을 받았다. 위기관리의 책임자로서 CEO는 누구보다도 먼저 현장으로 나아가 상황을 장악하고 사고 수습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라울은 뉴욕에 그대로 머물렀다. 바다로 퍼져나가는 원유를 방재하는 초기대응도 미흡했다.

인구 1000명 미만이 거주했던 밸디즈시에는 미국 내 주요 언론사 기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프린스 윌리엄 해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잘못된 정보를 미디어에 제공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조셉 헤이즐우드 선장이 술 취한 채로 유조선을 운항했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전날 선장이 술을 마신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충돌 전날 오후 11시까지 그는 정상적인 근무를 했다. 당시 삼등 항해사와 임무 교대까지 제대로 했다고 밝혀졌다. 사고의 원인은 유조선이 바다에 떠 있는 빙산을 피하기 위해 항로를 이탈한 데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바다 밑을 살펴보는 레이더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암초와 충돌했다. 그 후로 알래스카에서는 유조선이 암초를 피하도록 유인선 2대가 안전한 항로까지 안내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엑슨 밸디즈호의 원유유출 사고로 25만 마리 이상의 바닷새와 해달, 수달, 회색 물개, 독수리 그리고 22마리의 범고래가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더 큰 대형 원유 유출 사고가 2010년 멕시코 만에서 일어났지만, 그전까지 엑슨 밸디즈 사고는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해양 대재앙이었다. 자원개발에는 이같이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기름 유출 사고가 난 후 올해로 30년이 지났다. 프린스 윌리엄 해협에는 아래 사진과 동영상에서 보듯이 다시 고래가 돌아왔고 바다사자가 낮잠을 즐긴다.

▲ 바다사자가 낮잠을 즐기는 모습


▲ 프린스 윌리엄 해협의 바다사자와 고래

국내외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5공화국 초, 전두환 대통령이 국내 대기업에 알래스카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권대봉 고려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하와이는 일찌감치 일본인이 선점했으니, 한국 기업이 다른 나라에 앞서 알래스카에 진출해야 한다.”

삼환기업이 청와대의 권유에 따라 알래스카에서 사업을 벌였으나 손해만 보고 철수했다. 미주한국일보 재직 시 특별기획으로 <코리안 숨결을 따라 미국 50개주 가다>를 취재했던 김수종 씨(전 한국일보 주필)에 따르면, 당시 삼환기업은 중동에 진출해 외화를 많이 벌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삼환기업은 알래스카에 진출해 빙하 지대에 교도소를 건설하는 등 여러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중동보다는 노동규정이 엄격해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외에도 주식회사 대우가 1억 달러 규모의 담수공장을 한국에서 만들어 바지선으로 프루도 베이로 운반해서 설치하는 대규모 공사를 했다. 미국의 유전은 원유를 채취하고 난후 땅속의 빈 공간을 담수로 채워줘야 한다. 대우가 만든 이 물 공장은 바닷물을 담수로 만드는 시설이었는데, 당시 거대한 알라스카 유전지대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쌍용건설에서 해외개발과장으로 근무했던 권대봉 교수도 알래스카 진출을 위한 시장조사를 직접 시행했다. 알래스카에서는 주법이 엄격해 중동건설 현장처럼 우리 건설근로자를 투입할 수 없었다. 직접 경영할 수 있는 현지법인을 만들 수는 있지만 이윤을 낼 수 있는 시장성이 낮아 쌍용건설은 알래스카 진출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 후 쌍용건설은 미국기업과 조인트 벤처로 캘리포니아 시장에 진출해 성공한 바 있다.)

이같이 국내기업은 알래스카 진출에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꾸준히 알래스카를 방문한다. 관광안내소에서 영어 외에 가장 많이 찾는 외국어 안내서가 한국어이다. 중국인이나 일본인보다, 혹은 독일계, 남유럽계, 남미계보다 한국인이 그만큼 알래스카를 더 많이 찾는다는 증거다.

1942년도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은 베링해 밑에서 북태평양으로 이어지는 알류샨(Aleutian) 열도 서쪽 끝의 애투 섬과 키스카 섬을 점령했다. 진주만 폭격에 이은 일본의 재빠른 행보였다. 일본은 이 두 섬을 합쳐서 아쓰타 섬이라고 개칭했다.

미군은 이 섬을 되찾기 위해 1943년 5월에 상륙했다. 일본군 2650명이 미군 1만 6000명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처음에는 애투 섬의 고지대에 진지를 구축한 일본군이 유리했다. 하지만 치열한 전투 끝에 중과부적으로 일본군은 고작 28명이 생존해 포로가 됐다. 당시 미국 영토에서 벌어진 유일한 전투였다.

이 알류샨 열도의 섬에서는 세계적으로 한국의 전통가옥에서나 볼 수 있는 온돌이 발견됐다고 한다. 알래스카 원주민의 문화나 생활습관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 배어있다. 다음 편에서는 알래스카의 전진기지로서 시애틀의 최근 모습을 소개한다.

 

 

 

 

 

심재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storyofseoul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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