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한국기자협회‧한국언론학회
주관=삼성언론재단
주제=미국 저널리즘의 혁신 사례들- 뉴스 조직들은 생존을 위해 어떻게 싸우고 성공하는가?
일시=2019년 12월 18일 수요일 오후 7시~9시
장소=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사회=박성희 이화여대 교수(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발표=제레미 캐플란 뉴욕시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1921년 미국의 어느 재즈바로 시간여행을 가보자. 젊은이를 위한 공연이 한창이다. 음악이 흐르는 구석에 헨리와 브리튼이 앉아 있다. 기자인 두 청년의 고민은 신문의 미래다. “지금 나오는 신문들은 너무 지루해. 요즘 사람들은 바빠서 모든 걸 따라갈 시간이 없잖아.”

헨리와 브리튼은 1주일에 100개의 이야기를 담고, 이야기당 400단어가 넘지 않는 신문을 만들어보기로 한다. 집에 온 헨리는 여자 친구에게 말했다. “아마 곧 새로운 시작을 할 것 같아. 인생은 도박이잖아?”

새로운 프로젝트에 10만 달러가 필요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말렸다. 하지만 헨리와 브리튼은 새로운 모험에 뛰어들었고 ‘타임(Time)’의 창립자가 됐다. 약 100년이 흐른 지금, 타임은 세계 최대의 주간지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로 평가받는다.

이런 사례를 설명하면서 캐플란 교수는 약 100년 전의 타임지 창립자 고민이 요즘 기자들 생각과 맞닿아있다고 평가했다. 저널리즘의 혁신이란 독자에게 정보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고 뉴스를 흥미롭게 만드는데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 산다. 우리는 헨리와 브리튼이 100년 전에 가졌던 도전과제를 다시 맞닥뜨리게 됐다. 맥락은 달라졌지만, 그 안의 핵심 도전과제는 같다.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저널리즘이 필요하다.”

▲ 제레미 캐플란 교수의 모습

캐플란 교수는 뉴욕타임스 사례를 소개했다. 기사를 무료로 볼 수 있는 세상에서 언론사는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서 뉴욕타임스는 전통적인 미디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개하는데 성공을 거둔 ‘기업가적 언론’이다.

뉴욕타임스는 독자가 돈을 지불하는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다학제적 접근을 시도했다. 기자 편집자 개발자 사업가 그리고 디자이너가 팀으로 활동하는 식이다. 비슷한 사고방식을 막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해서다.

“사실 언론을 제외한 유통 서비스나 정보기술(IT) 같은 다른 분야에서는 이미 다학제적 팀을 구성해 운영 중이다. 뉴욕타임스 사례에서 보듯이 이제 언론도 다학제적 팀을 구성해야 한다.”

언론의 실험은 과학과 비슷하다. 가설을 세우고 제대로 된 상품을 구축하기까지 실험을 반복한다. 다양한 가격대와 다양한 대상을 가지고 실험한다.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구독자 중 40%가 요리나 게임 같은 새로운 상품을 통해 유입됐다.

캐플란 교수는 또 언론이 계속 번성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상품, 팟캐스트, 그리고 디지털 플랫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 가지는 모두 언론사의 진입점이다. 예를 들어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사람은 유료 구독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2배다.

뉴욕타임스가 다양한 방식으로 저널리즘의 혁신을 이뤘다면 한 우물만 파는 식으로 생존하는 기업도 있다. 스포츠 전문 ‘디 애슬레틱(The Athletic)’의 구독료는 한 달에 9.99달러다. 저렴하지 않지만 구독자는 6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스포츠 영역에서 탐사보도를 한다. 틈새시장을 새로운 방식으로 공략한다. 프랑스의 ‘레 주흐(Les Jours)’라는 매체는 탐사보도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연재한다. 의미 있는 보도와 노련한 스토리텔링으로 구독자의 95%가 매년 구독을 갱신한다.”

캐플란 교수는 새로운 세대에서는 기자가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1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미국 언론계에서 가장 빨리 발전하는 직업이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정보가 수집되는 경로와 사람에게 전달되는 경로를 파악하고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제안하고 개발한다. 상품의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전문가다.

“저널리즘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업적인 부분과 뉴스 편집의 교집합이 필요하다. 기자는 조직을 도울 비즈니스 마인드와 윤리적 이슈에 대한 저널리즘 마인드를 모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 삼성언론재단 강연장

현재 언론은 분명한 위기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 언론사에 종사하는 직원은 47% 줄었다. 2017년에서 2018년까지 1년 사이에 미국 신문에서는 3분의 1이 정리해고를 당했으며 많은 잡지가 인쇄를 중단했다.

역으로 말하자면 소비자에게는 황금기다. 소비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무료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손바닥 안의 기기로 들어오게 할 수 있다. 여러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쉬워졌다. ‘미투’ 같은 사회운동이 파급력을 얻은 이유기도 하다.

매력적인 콘텐츠를 뷔페처럼 골라 듣고 어디서나 접하는 상황에서 미디어의 가치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캐플린 교수는 이런 상황을 ‘파괴적 혁신의 시기’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용자의 욕구를 파악해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분명 실패할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에스파뇰 콘텐츠는 3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하지만 혁신에는 과정이 따르기 마련이다.”

세상은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 캐플란 교수는 점진적 혁신(incremental innovation)을 강조했다. 혁신은 화려하고 눈길을 끄는 게 아니다. 매일매일 우리의 현실에 스며드는 것이라는 뜻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미묘하고 점진적으로 변화한다. 대중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이들이 새롭게 사고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로 혁신적인 저널리즘이다.”

캐플란 교수는 한국언론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봤다. “미국에서 한국영화 기생충이 인기가 많다. 이는 저널리즘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정치 장벽은 높더라도 문화 장벽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진보하는 AI 번역과 전문성을 가진 콘텐츠가 합쳐진다면 새로운 혁신을 만들 수 있다.”

물론 해결할 문제점도 있다. 한국의 경우는 온라인 뉴스에 돈을 내는 비율이 10%에 그친다. 캐플란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서비스나 상품을 통해 매출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캐플란 교수는 언론이 따뜻한 감성을 가지고 소비자의 행동과 욕구를 관찰할 때 저널리즘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언론이 일방적으로 소비자에게 정보를 던졌다면, 현재는 언론과 소비자가 정보를 상호 교환한다. 언론과 소비자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타임의 두 창업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1921년 당시 새롭게 대두된 소비자에게 집중했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고객층이 있다. 이들을 만나 하나의 생태계를 이룰 때 새롭고 흥미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 박성희 교수(왼쪽)와 캐플란 교수가 청중의 질문을 받고 있다.

강연이 끝나고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와의 토론이 이어졌다. 기업가적 언론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지, 점진적인 혁신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기업가적 언론의 정의를 묻는 말에 캐플란 교수는 “다른 업계가 변화하듯이 언론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은 정보를 수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하여 기업처럼 수익화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캐플란 교수는 강연에서 ‘뉴스’라는 단어 대신 상품을 뜻하는 ‘프로덕트(product)’를 사용했다. 기자는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표현했다. 사회자는 뉴스를 상품으로 보기 시작하면 뉴스 안의 공공성의 희미해지지 않느냐고 물었다.

“기자는 권력자의 잘못된 행동을 알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소외자의 목소리를 대신해야 한다. 저널리즘적 책임이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생존 가능성이 필요하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무너진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8월 ‘The 1619 Project’를 시작했다. 노예제도의 역사에 대한 방대하고 깊이 있는 정보를 다룬다. 첫 시작은 기사였지만 팟캐스트로 만들어 광고수익을 올리고 책으로도 발간됐다. 저널리즘 정신과 비즈니스 측면을 모두 갖춘 상품이었다.

사회자는 이어서 독자친화적인 혁신 저널리즘이 너무 새로운 만남에만 치중하지 않느냐고 우려했다. 저널리즘이 독자친화적으로 가더라도 누군가는 뉴스를 정의하고 가치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캐플란 교수는 “기자가 항상 해야 하는 윤리적인 질문의 핵심은 유지될 것”이라고 답했다. 기술이 발전하고 다양한 형식을 사용하지만 저널리즘을 중시하는 기자에게는 여전히 광고주보다 구독자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또 캐플란 교수는 플랫폼 사업자가 훔쳐갈 수 없는 독특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포츠 경기의 결과 같은 흔한 정보가 아니라 언론사만의 시각과 관점이 담긴 개성 있는 기사가 필요하다.”

미래의 저널리스트들에게는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소비자가 어떤 장치를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어떤 내용을 읽고 싶어 하는지를 잘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를 파악한 후 이들의 일상생활에 뉴스가 녹아내리도록 하자는 말이다.

“업계가 빠르게 변한다. 20세기 말 수익률은 높았지만,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않았던 기관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눈치 채지 못하는 기업은 없다. 이건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 경쟁이다. 혁신은 단계적으로 주어진다. 멈추면 후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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