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모 씨(가명)는 진돗개 늘봄이를 기른다. 작년 4월부터 키웠다. 늘봄이는 2살이다. 50㎝에 17.5㎏으로 중형견. 하지만 작은 강아지가 많은 한국에서는 큰 편에 속한다. 늘봄이가 외출하면 자주 듣는 소리가 있다. 너무 크다, 입마개 해라….

김 씨는 지난 6월, 50대 남성을 고소했다. 서울 강북구 공원 북서울꿈의숲에서 늘봄이를 산책시키던 때였다. “시x, 개xx들.” 술 취한 남성은 “네 부모한테나 그렇게 해라” 등 막말을 쏟아냈다.

견디다 못해 김 씨는 경찰을 불렀다. 그리고 나중에 ‘엄벌탄원서’(진정서)를 작성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2주 만에 1400명 넘는 사람에게 서명을 받았다.

▲ 김 씨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엄벌탄원서’

한국은 소형견 공화국이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찻잔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티컵 강아지’가 유행했던 적도 있다. 문제는 반려견 주인이 여성이거나 반려견 생김새가 특이하면 노골적으로 시비를 거는 등의 차별이 생긴다는 점.

수의학 전문언론 데일리벳의 이학범 대표는 “대형견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은 큰 개를 무조건 맹견으로 본다”며 “개의 크기와 공격성 사이에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했다. 아파트 거주 비율이 높아서 소형견에게만 익숙해진 경향이 있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KB금융그룹에서 발간한 ‘2018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기르는 개 품종은 몰티즈가 23.9%로 가장 많았다. 푸들 16.9%, 시추 10.3%, 포메라니안 9.3%, 치와와가 8.4%로 뒤를 이었다.

종류에 따라 중대형견으로 분류되는 푸들을 제외하더라도 소형견이 절반 이상이다. 어떤 개를 가장 기르고 싶은지를 한국갤럽이 작년에 물었을 때도 소형견이 많았다. 대형견과 중형견에 대한 차별은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다.

강 모 씨는 23㎏ 믹스견을 키운다. 산책을 하면 “어디 여자가 큰 개를 데리고 나오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작년 4월 술에 취한 중년 남성과 다툰 뒤로는 남동생에게 산책을 시킨다. 남동생이 최근 입대해서 자신이 산책을 나가야 하므로 강 씨는 걱정이 많다.

정가람 씨(30)는 35㎏ 래브라를 키운다. 그는 “애나 낳아라” “여자가 힘도 없는데”와 같은 차별적 발언을 숱하게 듣는다고 했다. “큰 개는 여자가 감당 못 해서 사고가 날 거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대형견이 더 잘 교육된 경우가 많고 대형견 주인도 여성이 매우 많다.”

전민지 씨(31)는 남편과 함께 20㎏ 진돗개 백약이를 키운다. 작년 9월 뒷산에서 산책하다가 “못 배운 x”라는 말을 60대 남성에게 들었다. 반려견에게 던진 쓰레기를 전 씨가 맞았다.

전 씨는 “반려견을 키우기 시작한 이후 1년은 나가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처음에는 남편도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남편 송준성 씨는 “내가 혼자 개를 데리고 나왔을 때는 시비가 붙었던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남성 견주 역시 차별을 당하는 일이 있다. 김익영 씨는 체중 90㎏이 넘는 건장한 남성. 반려견 호야는 21㎏의 호피 무늬 진돗개다. 호랑이처럼 생긴 외모 때문에 차별당하는 일이 많다.

“유독 크거나 생김새가 특이하면 차별은 반려인의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공포심을 아예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막무가내로 손가락질하는 문화는 너무 수준이 낮다.”

토종견 역시 예외가 아니다. 16㎏ 진돗개를 기르는 신나래 씨(28)는 길을 가다가 “잡아먹으면 맛있겠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신 씨는 반려견과 여행 다니길 좋아하지만 숙소를 찾는 데 애를 먹는다. 이유를 물어보면 사나워서 안 된다고 한다.

동물권행동카라의 전진경 상임이사는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성과 동물에 편견이 있다. 동물에 대한 이해 결여와 함께 동물 혐오, 여성 혐오 문제가 함께 작동한다”고 말했다.

반려견 전문업체 바우라움의 변성수 운영 원장은 “진돗개 등 특정 종이 무조건 공격적이지는 않다. 개는 교육과 교정을 통해 충분히 사회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개의 크기와 성향을 연관 짓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의 공격성을 개체별로 정확히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반려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익영 씨는 “우리나라가 개를 너무 쉽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인 게 문제”라며 “반려인이 개를 관리할 수 있는 자격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했다.

독일 니더작센 주에서는 면허시험을 통과해야 반려견을 키우게 허용한다. 이학범 대표는 “당장 우리나라에 면허제를 도입하는 방안은 무리겠지만, 맹견 보호자부터 시작해서 일반 반려견 보호자까지 교육을 점차 확대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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