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유진 씨(21)는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트레이더스 구성점의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2월 25일 오전 7시 15분경이었다. 마트 개점시간은 10시이지만 벌써 100명 정도가 줄을 섰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서였다.

오전 6시에 일어난 현 씨는 짜증이 났다. 다들 그래 보였다. 가끔씩 누군가 혼잣말을 했다. “이게 말이 돼? 마스크를 사러 이 시간에 나와서.” 다른 사람에게 침이 튀길까 조심스러워서인지 대부분은 조용했다.

맨 앞줄의 고객은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덜덜 떨었다. 오전 4시 반쯤 왔다고 한다. 일부는 접이식 간이의자를 가져왔다.

시간이 지나자 현 씨 뒤에 줄이 길어져서 400명 정도까지 늘었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뒤에는 집 앞의 돈가스 집과 과일가게 사장이 보였다. “온 동네 사람들 집합했네.” 현 씨 모녀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마스크를 사려는 줄이 새벽부터 생겼다.

마스크는 온라인에서 어렵지 않게 구했다. 2월 20일 전까지만 해도. 현 씨의 아버지가 “미리 사둘까?”라고 묻자 어머니는 “곧 괜찮아질 텐데 그냥 있는 거 쓰자. 비싼 거 괜히 사지 말고”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코로나바이러스 19 확진자가 100명이 넘으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온라인 판매는 일찍 매진됐다. 오프라인 상점에서는 줄을 잠시 서면 살 수 있었다. 현 씨 부모는 2월 22일 50개를 구했다.

다음 날, 경기 용인에서 확진자가 나오자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현 씨 모녀는 22일보다 일찍 매장에 도착했지만 순서는 비슷했다. 다른 사람들이 더 일찍 나와서다. 현 씨 아버지는 카카오톡으로 사정을 듣고 고민했다. “내일 또 가야 돼? 그럼 월차 써야 하나?”

현 씨 모녀가 다시 매장을 찾은 2월 25일 오전 8시 20분경. 앞쪽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늦게 도착한 5명이 앞의 사람과 일행이라면서 새치기를 하자 실랑이가 벌어졌다. 보다 못한 중년여성이 외쳤다. “이럴 바엔 번호표 나눠주고 비양심들 쫓아냅시다!”

의협심 강해 보이는 여성이 다른 중년남성과 번호표를 만들었다. 종이를 찢고 숫자를 적어 나눠줬다. “116, 117…. 앞에 사람 잘 보세요!”

▲ 고객이 즉석에서 만든 번호표

현 씨 일행은 134, 135번이었다. 부모가 같이 왔던 2월 22일에는 누군가 새치기를 해도 항의하기 힘들었다. 이제는 다르다. “번호표 보여주세요.” 한 마디면 해결됐다.

직원들이 9시 20분경 도착해서 마트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들어서면서 조금씩 투덜댔다. “다음날 얼마나 들어올지 미리 알려주면 되잖아요. 왜 이 고생을 시켜요.” “번호표도 나눠주면 좋잖아요.” 직원은 가만히 듣기만 하다가 (위에) 말해보겠다고 했다.

직원이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숫자는 200명에서 멈췄다. “여기까지 받을 수 있어요.” 번호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뒷줄의 200명 정도는 실망해서 나가거나 다른 상품을 구하는 줄로 갔다.

▲ 줄이 길어져 매장이 점점 붐볐다.

현 씨는 마스크를 샀다. 인당 3팩, 1팩에 5개라 15개였다. 하나에 1000원. 그런데 줄 끝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판매 끝났습니다.” “왜요? 우리는 194번인데 왜 못 받아요?” “그럴 거면 숫자는 왜 셌어!” 마스크 줄과 마트 줄이 섞인 틈을 타서 새치기가 일어난 듯 했다. 2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번호표 아주머니’가 나섰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새치기 하는 사람을 막기 위해서는 마트 측에서 번호표를 줘야 한다니까요. 번호표를 주고 그걸 확인하면서 배부하세요.” 직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현 씨 가족은 22일과 25일에 구입한 마스크로 버티는 중이다. 약국, 농협 하나로마트, 우체국에서 저렴한 마스크를 판매한다고 하지만 구하기가 얼마나 쉬워질지 모른다.

트레이더스 구성점은 “마스크 물량은 당일 오픈할 때까지 알 수 없다.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도 모른다”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번호표를 만들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나눠 주겠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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