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희 씨(26)는 9개월간 일한 카페에서 지난해 12월 해고통보를 받았다. 매니저와 아르바이트생 2명만 일했다. “2주 뒤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매니저에게 들었다. 서 씨는 “사유도 확실치 않은데 갑작스럽게 나오지 말라니 기분이 좋을 리는 없죠”라고 말했다.
 
김 모 씨(28)는 출판사에서 1년 반 넘게 근무했다. 업무는 교정·교열 등 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편집과 기획이었다. 주변에서는 돈이 안 된다고 염려했지만 삶의 양식이 될 책을 만드는 일이 좋아서 자부심을 느꼈다.

이런 생각은 얼마 되지 않아 달라졌다. 아침부터 이튿날 오전 3시까지 일하는 날이 적지 않았는데 야근수당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에둘러서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김 씨는 “회사 형편이 나아지면 어련히 알아서 챙겨주겠느냐는 식의 애매한 답변만 돌아왔다”고 했다.
 
이들은 노동위원회에 권리침해를 신고해도 구제받지 못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이라 근로기준법의 주요 조항을 적용받지 못한다. 근로시간 제한, 연차휴가, 연장·야간·휴일 수당 지급 규정이 대표적이다. 해고도 자유롭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사업장 규모별로 법이 적용되는데 5인 미만 사업장 비중이 큰 편”이라고 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19%(358만 명)다. 이 중에 15~39세가 36.5%(약 131만 명)이다. 업종별로는 도소매업이 26%, 숙박음식업이 22%로 다른 업종보다 5인 미만 사업장 비중이 컸다.
 
근로기준법을 완전히 적용하지 않으니 업주에게는 ‘사업장 쪼개기’의 유인이 되기도 한다. 법의 허점을 노려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는 곳도 있다는 의미다.
 
문 모 씨(26)는 휴일시급이 높다고 생각해서 설 연휴에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서울의 젓갈 판매장에서 상품을 포장했다. 공장이 부산에 있다는 말을 직원에게 들었다. 판매장과 공장이 동일 사업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서류상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근로계약상 8일 일하기로 했는데 마지막 날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루 임금 6만 3000원을 받지 못했다. 속칭 ‘임금 꺾기’다.

‘꺾기’는 근로계약서와 상관없이 고용주가 근로시간을 임의로 줄이고 임금을 그만큼 적게 준다는 뜻이다. 상담을 위해 ‘청년유니온’에 연락하자 5인 미만 사업장이라서 (구제가) 안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청년유니온은 청년노동 문제를 의제로 활동하는 노동조합이다.
 
문 씨가 구제받으려면 사업장이 가짜 5인 미만 업체임을 인정받아야 한다. 권오훈 공인노무사는 “판매장과 부산 공장이 하나의 사업장이라는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개별 근로자가 입증하기 힘들 것”이라면서 “이런 사례가 대표적인 사업장 쪼개기 수법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 ‘권리찾기유니온’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고발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헌법재판소는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적용하지 않는 규정이 합헌이라고 1999년 결정했다.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해야 하고, 국가의 근로감독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4월에도 헌재는 근로기준법 일부 적용이 합헌이라고 결론지었다.

청년유니온의 장지혜 기획팀장은 “근로감독관 숫자가 외국과 비교해 부족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근로감독 업무를 잘 정립하기만 하면 영세사업장까지 관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기민 씨(60)는 서울 성북구에서 닭갈비를 30년째 닭갈비를 판다. 매출이 7~8년 전부터 줄기 시작했다. 장 씨는 “정부정책과 무관하게 점포수가 너무 많아 장사가 안 된다”면서 “지금 영세한 가게에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는 건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서대문구에서 카페를 11년째 운영하는 김희기 씨(40)는 주말 아르바이트생 2명을 고용한다. 김 씨 역시 근로기준법의 전면적용에 부정적이다. “경기도 안 좋은데 노동자 위주의 정책만 확대돼 아쉽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더 영세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5인 미만 사업체의 월 근로일수와 근로시간이 다른 사업장보다 적고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근로자도 3.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남 노무사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사업장이 있기 때문에 제도를 악용하는 사업장을 단속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창립된 노동시민단체 ‘권유하다’는 신고가 들어온 사업장을 대상으로 검토를 하고 고발대상이 되면 특별근로감독을 노동부에 요청키로 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김기선 연구원은 근로시간 관련 조항이 핵심이라고 했다. “근로시간이 제한되면 (초과 근로에 따른 수당지급이 의무화돼서) 수당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권오훈 공인노무사도 “노동법의 역사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라고 말할 정도로 근로시간 조항에 많은 부분이 연결된다”며 “근로시간 조항을 적용하면 쪼개기 꼼수로 사업장이 파편화되는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