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횡성군에서 A 씨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다행히 이웃 주민이 신고해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았다. 주민은 자살예방 교육을 받아서 위험 징후를 알았다. 보건소도 A 씨를 특별히 살펴달라고 당부했다.

서울의 사립대에서 2019년 11월 학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30분 전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경비원이 막았는데 혼자 남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학교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지만 2013년 이후 해마다 줄었다. 청년층은 어떨까. 20대 자살률은 2017년 10만 명 당 16.4명으로 3년째 비슷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2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최근 5년간 자해·자살 시도로 응급실을 갔던 연령대는 20대(19.9%)가 가장 많다. 2017년 전체 자살자에서 학생·가사·무직 집단이 절반 이상(53.8%)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방사업에서 청년은 후순위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지낸 아주대 홍창형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10대, 청년, 장년, 노인은 동기와 방법이 다르므로 자살예방 사업의 전략 또한 달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청년의 자살은 정신과적 문제와 관련이 깊다. 중장년은 경제, 노인은 신체질병이 주 원인이다.

▲ 연령대별 자살률(출처=보건복지부 자살예방백서)

보건복지부는 매년 자살예방백서를 발행한다. 2018년 백서를 보니 대학 상담센터의 기능을 늘리겠다는 계획이 있다. 국내 250여 개 대학이 상담센터를 운영한다.

서민성 씨는 고려대 센터를 이용했다. 진단서를 통해 시급함이 인정되면 바로 가능하지만 서 씨는 신청하고 4주 지나서 상담했다. “처음으로 상담 자체를 받아보고 싶었기에 기다릴 수 있었다. 진단서가 없더라도 상담이 간절한 학생에겐 너무 긴 기다림이 아닐까.”

민간 상담센터는 시간당 4만~13만 원인데 교내는 무료다. 서 씨의 담당자는 늘 바빠 보였다. 약속 15분 전에 갑자기 취소된 적이 있다. 위험 학생이 생겼다고 했다. 상담을 10회 하려다가 다 채우지 않았다.

성균관대 카운슬링센터를 이용한 이동욱 씨(가명)는 만족한 편이다. 신청 1~2주 후 상담이 시작됐다. 아쉬운 점으로 역시 전문성을 꼽았다. “1주일에 한 번씩 얘길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심리적으로 안정은 됐다. 거기까지였다. 원인 찾기 이후의 해결은 없었던 것 같다.”

이 씨의 상담사는 교육을 받는 학생으로 보였다. 내용을 녹음하면서 교수와 나눠 듣겠다고 했다. 상담사는 교수가 명확한 답을 주기 전까지 진단을 내리는데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래도 무료인 만큼 첫 고개를 넘기에 좋았다. 이 정도면 받을만 하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대학생 정신건강 실태와 심리상담 지원의 쟁점 및 과제>에 따르면 대학 학생상담센터는 2~3명의 전임 상담사와 비상근 계약직 인턴 또는 객원 상담사를 활용한다.

▲ 주요 7개 대학 학생상담센터(출처=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전국대학교학생상담센터협의회장인 경상대 김장회 교수(교육학과)는 “대학구조개혁평가의 진로·상담 지표를 통해 관리될 뿐이다. 점수를 받기 위해 센터를 급조한 대학이 적지 않다”고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대학 정원이 2만 명이라면 10명 이상의 상담사를 확보한 사례가 없다. 상담을 제대로 하려면 학생 1000명 당 상담사 1명이 필요하다. 미국 대학의 센터는 상근직 전임 상담사 위주로 운영된다. 1명이 학생 700명을 관리한다.

자살예방법 3조 2항에 따르면 국민은 자살 위험에 노출될 경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자살예방 의무를 정부와 지자체에 규정한 셈이다. 실태는 어떨까.

서울에서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구로구 강북구 강동구의 실무자와 얘기를 나눴다. 지자체는 생명존중팀이나 마음건강팀이 사업을 담당한다.

강북구 생명존중팀의 김옥숙 주무관은 “노인과 청소년을 위한 예방사업은 마련했지만 청년 대상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홀로서기 프로그램’은 사별한 노인을 위한 심리지원이다. 구내 의료기관과 연계한 상담 지원은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강동구도 강북구처럼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19년 3분기에 상담을 받은 구민 가운데 20대가 26%, 30대가 20%를 차지했다.
 
구로구의 자살자는 2018년에 10만 명 당 27.5명으로 전년도(18.8명)보다 크게 늘었다. 정연희 자살예방사업팀장은 “통계를 보고 우리도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111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구 차원에서 동기를 모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노원구의 김재원 생명존중팀장은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자살예방 문제를 다루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집에 오래 머무르는 노인과 달리 사회생활을 하는 60대 미만은 현실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보건복지부는 청년 구직자·실업자 심리지원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고용노동부가 수립, 추진한다고 밝혔다. 대학의 자살예방 대책과 관련해서는 교육부가 세부계획을 수립,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는 2012년 보건복지부가 만든 기관이다. 자살예방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자살률이 높은 청년층의 경우에는 업무가 분산됐음을 알 수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이윤주 연구위원은 좋은 사례로 서울대와 나사렛대를 제시했다. 두 대학은 신입생의 심리인성검사를 통해 위험군을 개별 관리한다. 이 연구위원은 <2016년 대학생 자살예방정책연구>에서 “근본적으로는 청년 복지를 위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청년기본법안이 1월 9일 국회를 통과됐다. 청년정책을 위한 법적 근거가 생긴 셈이다. 이제 정부와 지자체가 청년 자살에 관심을 갖고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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