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를 봐주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엄마가 선을 그었어요. 내년부터는 제가 일을 그만두는 수밖에 없죠.”

여행사에 다니는 이규림 씨(28)는 워킹맘 생활을 계속할지 고민이다. 어린이집 개원이 연기되자 이 씨는 4살 딸을 친정어머니에게 부탁했다. 하원만 도와주던 어머니와 이제 평일에 함께 지낸다. 1주일에 한 번씩 남편과 연차를 사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킬 수 없었다.

연차를 세 번 쓰자 겁이 났다. 이 씨의 이전 회사에서 구조조정 첫 대상자의 50%는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이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에게 상사는 “집에 장모님이 있지 않느냐”고 눈치를 줬다.

육아는 이 씨 어머니의 몫이 됐다. 이 씨 부부가 아침 7시에 나가 저녁 9시에 퇴근할 때까지 어머니가 아이와 같이 지낸다.

어린이집 개원이 늦어지면서 어머니는 체력의 한계를 호소한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지내니 개인 시간이 없는 점도 불만이다. 이 씨는 “이해는 하지만 방법이 없으니 점점 다툼이 커지는 게 스트레스”라고 했다.

이 씨는 퇴사를 고민한다. 어머니 도움 없이는 회사에 다니기가 어렵다. 그는 야근이 많고 육아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이유로 이전 회사에서 옮겼다. “일을 그만두면 복귀는 어렵지 않을까요. 하더라도 작은 사업이나 부업만 할 것 같아요. 남편이 저보다 벌이가 나으니까요.”

원미자 씨(65)도 맞벌이 부부를 대신해 6살 된 손자를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돌본다. 긴급 돌봄 서비스가 있지만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을 손자가 안쓰러웠다.

힘닿는 데까지 돌보겠다고 며느리에게 먼저 말했다. 아들 부부는 10층, 원 씨는 5층에 산다. 코로나 사태 이후 한 집처럼 지낸다. 외출을 못하는 게 제일 난감하다. 손자는 활동량이 많아서 놀아주다 보면 금방 녹초가 된다. 외식이 어려워 손자의 식사를 직접 챙긴다.

원 씨 친구 중에는 손자를 1주일 돌보다가 긴급돌봄을 택한 경우가 많다. 원 씨는 “4월 6일에 개학이라니까 그날만 바라본다. 한 달이 넘어가면 더 이상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장미경 씨(59)는 3주간의 육아 끝에 어린이집 긴급돌봄을 신청했다. 처음에는 2주만 휴원한다는 말에 자청했다. 3주가 지나자 정신적으로 힘들어졌다. 체력에 한계를 느끼니 손자에게 짜증이 늘었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대책을 찾았다.

도움을 청할 곳은 없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아이가 아프면 전부 자기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7시에 나갔다가 저녁 10시에 퇴근하는 딸에게 힘들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증권사에 다니는 딸은 야근이 늘었다. 남편과 아들 모두 직장에 가면 손자를 혼자 돌봐야 한다.

▲ 서울 양천구 어린이집의 긴급돌봄 서비스
▲ 서울 양천구 어린이집의 긴급돌봄 서비스

4살 딸을 둔 이경은 씨(40)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다. 강원도에서 올라온 친정어머니는 아이를 3주간 돌보다가 병이 낫다.

연세가 많은 시어머니는 수술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아이를 맡은 지 3일 만에 얼굴에서 피로함이 보였다. 그럴 때마다 휴가를 썼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씨는 “살면서 이렇게 눈치를 많이 봤던 적이 없다”고 했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이 씨의 딸은 한 달 중 3주는 감기에 시달렸다. 집단생활이 얼마나 바이러스에 취약한지 이 씨는 안다. “위험을 감수하고 어린이집에 보내서 혹시라도 감염되면 얼마나 후회스럽겠는가. 결국 다 내 책임이 된다.”

백선영 씨(43)는 8살 딸을 키우려고 3월부터 1년의 휴직에 들어갔다. 어린이집 휴원과 휴직 시기가 맞물려 다행이라고 했다. 평소에는 퇴근 전까지 아이를 어린이집과 학원에 보냈지만 지금은 모두 문을 닫았다.

긴급돌봄은 워킹맘의 최후수단이다. 4살 딸을 둔 김조은 씨(35)는 교육청의 감염병 부서에서 일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업무가 급증했다. 2월에 육아시간을 쓰려다가 취소했다. 양가 부모 모두 멀리 있어서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다.

정부는 긴급돌봄 대책을 내놓았지만 학부모들은 여전히 고민한다. 실제 이용률도 저조하다. 교육부의 긴급돌봄 3차 수요조사에서 유치원은 12%대, 초등학교는 2%대에 머물렀다.

이경은 씨는 “감염병이 반복될 때마다 가정에서 돌봄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긴급돌봄 서비스를 만든는데 그치면 결국 판단은 부모 몫으로 남는다”며 긴급돌봄의 명확한 지침을 정부가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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