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하나다. 산천이역 풍월동천(山川異域 風月同天). 산과 강은 다르나 바람과 달은 같은 하늘에 있다. 거리는 멀지만 함께 하는가. 그랬다. 이태원 옥상에서 본 보름달이 서울에서 9274㎞ 떨어진 아셀라의 하늘에 떠 있다. 반가웠다. 신기했다. 그리웠다. 벌써 향수병인가. 에티오피아 여행에 나선 지 닷새째다.

태고의 신비, 타나호수에서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오니 2000m 이상의 고산지대라 어지럼증이 나타났다. 설사도 했다. 저녁을 거른 채 푹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룸메이트인 한두봉 교수가 호텔 조찬에서 만난 김철수 박사에게 끌고 갔다. 전편에 소개한 에티오피아 명성기독병원의 직전 병원장이다.

몇 마디 물어보더니 여행자 설사병(TD·traveler’s diarrhea)이란다. 마시는 물이 바꿨기 때문이다. 대장균이나 노로바이러스가 매개체이다. 받은 항생제를 먹으니 금방 효과가 나타나는 듯했다.

곧바로 짐을 꾸려 숙소에서 1월 19일 오전 10시경 나섰다. 아디스에서 남동쪽으로 120㎞ 떨어진 아셀라가 최종 목적지다. 도로로는 169㎞다. 하이웨이로 직접 달리면 서너 시간 거리다. 비쇼프투, 아다마, 이테야를 중간 기착지로 왕복으로 나흘 일정을 잡았다.

▲ 레이크 비쇼프투 리조트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의 영어명은 Korean University Council for Social Service다. 일명 대사협이다. 현지에서는 쿡스(KUCSS)로 불린다. 이 단체의 운영위원장은 김한겸 고려대 의대 교수다.

김 교수를 단장으로 정주영 대리, 우민경 프로젝트 리더(PL)와 함께 A1 로컬 도로를 탔다. 막바지 봉사활동을 펼치는 국내 대학생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대사협의 월드프렌즈 청년 중기봉사단원이 오로미아 주에서 지난 5개월간 봉사활동을 했다.

대사협은 김영삼 정부 시절에 세계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1996년 9월 결성됐다. 단기파견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파견 기간을 반년 남짓으로 늘렸다. 대사협은 2018년부터 파견단원의 활동과 성과를 봉사현장에서 체계적으로 평가한다. 국내 대학생에게 해외봉사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의 견문을 넓혀서 21세기 지구촌 사회를 이끌도록 육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매년 청년 150명 정도를 선발해 지금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개발도상국에 파견했다. 봉사지역은 아시아 국가로 베트남, 미얀마, 몽골, 캄보디아와 아프리카 국가인 마다카스카르, 에티오피아, 우간다, 그리고 남미의 파라과이로 8개국이다. 김한겸 운영위원장은 마다카스카르에 파견된 봉사단을 점검한 후 이틀 전에 에티오피아로 왔다.

평가단에 우리가 합류했다. 첫 번째 기착지는 비쇼프투다.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37㎞ 떨어진 관광지다. 철제 대문이 두껍고 철조망이 높은 집에서 세 명의 봉사단원이 우리를 맞았다. 원래는 다섯 명이었는데 두 명은 조기 귀국했다. 팀장은 안주형 씨(서울시립대·회계 겸함)다. 팀원은 박준형 씨(순천향대·서기)와 1인 3역의 한나례 씨(평택대·교육, 홍보, 보급)다.

▲ 비쇼프투팀 단원. 왼쪽부터 김한겸 위원장, 정주영 대리, 안주형 박준형 한나례 팀원, 우민경 PL

박준형 씨는 관광학을 전공한다. 복학 후 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파견됐다. 그에 따르면 선발된 후 국내에서 1박 2일의 1차 교육과 18박 19일의 2차 교육을 받았다. 아디스에 와서는 현지 적응 교육을 2주간 받았다. 그 후 비쇼프투로 파견됐다.

그는 “관광학을 전공했기에 관광도시로 파견된 듯싶다”고 말했다. 이들 팀 이름은 비쇼행쇼이다. 여기서 행쇼는 ‘행복하십쇼’를 줄인 신조어다. 비쇼프투를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작명이다.

이들 팀과 협력하는 현지 기관은 비쇼프투의 직업훈련학교와 관광청이다. 그들의 요청으로 비쇼프투 관광지도를 현지어와 영어로 만들었고 AIDS 예방과 HIV 알기 캠페인을 펼쳤다.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실패전시회도 열었다. 또 현장 프로젝트로 직업학교에 화장실 건물을 따로 만들었다.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도 옆에 세웠다.

평가단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 장애인 화장실이 열쇠로 잠겨있었다. 수혜자가 이용하기보다는 종종 전시용으로만 이용돼서 평가단은 항시 열어 놓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열쇠 관리자가 현장에 없어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급기야 쇠톱으로 자물쇠를 잘라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런 와중에 통역을 하던 현지어 교사가 울음을 터뜨렸다. 화장실 개방 건을 두고 입장이 다른 학교 관계자가 현지어 교사를 닦달했기 때문이다. 봉사에서도 상호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 비쇼프트 화장실. 왼쪽 장애인 화장실이 자물쇠로 잠겼다.

놀라운 점은 현지어 교사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에티오피아에서 KBS월드의 국내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우리말을 깨쳤다고 한다. 파견된 팀원은 생활비로 매달 512달러를 받는다. 화장실 프로젝트에는 8542달러가 들었다. 대사협이 코이카를 통해 전액 지원했다.

비쇼프투는 아디스 근처의 유명 관광지다. 백두산 천지와 같은 분화호수가 7개나 있다. 그중에서 호라(Hora) 호수는 에티오피아의 최다 종족인 오로모족의 성지이다. 으레차(Irreecha)라는 9월 축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우기가 끝날 때 열리는데 100만 명 이상이 모이는 오로모족의 최대 축제다.

봉사단원이 자주 방문하는 곳은 키로프트 호수가의 쿠리프투(Kuriftu) 리조트다. 지난해 5기 단원의 마무리 평가와 뒤풀이가 이곳에서 열렸다. 우리는 또 다른 호수인 레이크 비쇼프투의 피라미드 리조트에서 봉사단원과 오찬을 했다. 그곳에서 오후 2시 13분에 다음 방문지로 출발했다.

두 번째 기착지는 아다마다. 비쇼프투에서 남서쪽으로 42㎞ 떨어졌다. 팀 이름은 다담아. 팀원이 전부 여성이다. 서채은 팀장은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다가 단원으로 선발됐다. 2017년 4기로 미얀마에 파견됐는데 “너무 좋았고 아쉬운 점이 남아 다시 6기로 지원했다”고 한다. 팀원은 김나희 씨(선문대·서기 담당), 김수영 씨(강남대·홍보), 두현지 씨(선문대·회계), 서승화 씨(경희대·교육)로 구성됐다.

▲ 아다마팀. 오른쪽부터 서승화 김나희 서채은 김수영 두원지 단원

아다마는 오로미아 주의 주도였는데 해발 1700m로 한라산보다 다소 낮다. 인구는 33만 명 정도로 에티오피아에서 아디스 다음으로 큰 도시다. 아다마팀은 여섯 명으로 시작했다. 한 명이 중도에 귀국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과의 적응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다마 2번 스쿨과 베텔 오티즘(Autism) 센터에는 6세부터 36세까지 각각 33명과 30명의 자폐아 학생이 있다. 이들이 처음에는 단원의 “팔을 물어뜯고 얼굴을 할퀴고 물건까지 던졌다”고 한다.

서 팀장은 이들 장애 학생과 “소통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뒤돌아본다. 단원 다섯 명이 서로 껴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어려움을 극복해 가며 이들 자폐아와 다섯 달을 생활했다. 헤어질 때가 되니 정이 들어 “다시 엄청 울었다”고 한다. 서 팀장은 두 번의 봉사단 경험을 살려 “앞으로 국제협력 개발기구에서 커리어를 쌓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다마에서 하루 자고 20일 오전 이테야로 향했다. 곧바로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최대 축제인 팀켓(Timket) 행렬과 마주쳤다. 우리가 탄 자동차는 행렬 중간에 파묻혔다. 그들은 개의치 않고 손뼉을 치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지나갔다.

팀켓은 에티오피아식 주현절(Ephiphany)이다. 에피파니는 그리스어로 “귀한 것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예수가 태어날 때 동방박사가 베들레헴을 내방했듯이 팀켓은 에티오피아식 예수 공현을 축하하는 의식이다. 이때를 맞추어 세례식이 거행되며 전통의상인 흰옷에 노란색 모자를 쓰고 울긋불긋한 빨간, 파란, 하얀 색의 우산을 높이 쳐들고 퍼레이드를 한다.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십계명이 새겨진 돌을 옮겼듯이 이들도 궤를 들고 행진한다. 간간이 인디언과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기도하며 박수치고 흔들흔들 춤을 추면서 느릿느릿 걸어간다. 평가단 일정이 사흘간 열리는 팀켓 축제와 겹쳤다. 아셀라까지 이런 행렬과 서너 번 마주쳤다. 다음 편에서는 이테야와 아셀라 방문기를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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